딸내미는 가끔 집에 있는 책을 학교에 가져가서 읽고 오는데
얼마 전에는 사인까지 받은 나의 은사님 동시집을 가져가 놓고
한동안 가져오지 않는 것이었다.
일주일인가 만에 가져와서는 울먹이며 쭈뼛대는데,
물을 쏟아서 책이 꽤 망가져 있었다.
아마 놔 두면 말라서 티가 안 날 줄 알았던 듯한데
오히려 퉁퉁 불어서 더 이상해졌으니 걱정이 많았던 모양.
"이래서 빨리 안 가져왔구나"
하고 웃으며 딸내미를 꼭 안아주었다.
딸내미도 그제서야 굳은 표정이 풀리며
"아빠 미안해" 한다.
5학년 때인가, 놀이터에서 친구 안경을 깨먹은 적이 있다.
우리집은 가난했으므로 물어주는 일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는 말도 못하고,
전화벨만 울려도 울고 싶었던 그날.
다음 날은 꾀병을 부리며 결석을 했고 그 다음 날 학교엘 갔다.
그 친구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새 안경을 쓰고 있었고
내가 안경을 깬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길었던 하루가 갔고.
그 친구네 집이 부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나는 그저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새삼 친구 어머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스친다.
그 시절 친구 어머님이 지금 내 나이쯤이셨겠지 싶다.
사람이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어른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 22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