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글방 첫번째 글감: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깊이, 차분히, 그리고 세심하고 꼼꼼히 사랑하는 것이 글이라면,
강렬히, 뜨겁게, 온 세포를 태워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것은 춤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사랑이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였다는 것만 시기상 파악할 수 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체계가 잡히기 전, 다음카페에 이런 저런 동영상들이 올라오던 시기였다. 새로 나온 아이돌의 신곡이나 뮤직비디오 등등, 지금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화질이었지만 그 당시엔 어느 영상을 가지고 화질을 따질 정도의 특권조차 없었다. 여담이지만 이 시절 잘못 클릭했다간 야한동영상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무렵,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며 느끼던 외로움과 심심함을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글이나 영상을 정독(!)하며 달랬었다.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느때나 다름없이 그 글들을 하나둘씩 클릭하던 중, ‘위너스 크루’라는 유명한 팝핀 댄스 크루의 어느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 전에 얼마나 춤에 관심 있었는지는 사실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이제 와서 한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그 순간이 내가 최초로 ‘음악성’이라는 것을 접한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때부터 배웠던 피아노로는 왜 음악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흥미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영상이었을텐데, 그 영상을 본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표면적으로는 바뀌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나는 매일 밤 방문을 잠그고 그 영상을 몇번씩 다시 보며 따라했다. 방에 큰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창문을 거울삼아 이런 저런 음악을 틀며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런 음악엔 어떤 안무가 어울릴지 상상했다. 엄마아빠는 굳게 잠겨있는 방문을 보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사춘기인가’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미국의 대부분의 중학교 및 고등학교는, 일년에 4-5번정도 댄스파티를 연다. 한국에 비교적 잘 알려진 ‘prom’이라는 큰 졸업 댄스 파티 외에도, 여러 댄스 파티가 열린다. 9월에는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고 해서 가장 먼저 ‘homecoming’이 열리고, 몇달 뒤 겨울방학이 시작 되기전 여자들은 드레스와 가운을 입고 남자들은 턱시도를 입는 ‘winter formal’이 열린다. 학교마다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먼저 같이 가자고 물어봐야 하는 의례가 있는 ‘sadies’가 있고, 봄에 열리는 ‘spring fling’이 있다. 한국에서 미국에 가지고 있는 인식들과 다르게, 이런 파티에 술이나 마약은 없다. 힙합 음악과 중/고딩 남녀의 풋풋한 감정만 가득한 곳이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파티가 달아오를 즈음에 춤을 특출나게 잘 추는 친구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추다 보면, 곁에 있던 학생들이 그 학생을 둘러 싸며 자연스럽게 원을 만든다. 그러다가 DJ가 다음 곡을 틀거나 음악의 흐름이 조금 바뀌면 원래 춤을 추던 학생이 원을 나가고, 다른 학생이 들어와서 춤을 춘다.
그 원 안으로 처음 들어갔던 순간은 안타깝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나는데, 공부만 하게 생긴 조그만 동양인 여자가 힙합 음악에 춤을 추니 모두 놀랐던 것 같다. 그 이후도 나는 school dance에서 항상 거론이 되었었고, 내가 댄스파티에 참석을 할 때마다 내가 원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에는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며, 다들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나는 처음 댄스파티가 열리는 순간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전교 1등을 하고 공부만 하는 나에 대해 대부분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이 부서지는 날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내가 ‘진짜로’ 누구인지 보여주는 순간 - 그게 바로 내가 춤을 추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일단 원으로 들어가기 전, 원의 가장 안쪽 테두리에 가기 위해 인파를 조금 뚫어야 한다. 그래야 이미 단독으로 춤추고 있던 학생이 나오면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서 춤을 이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추고 싶은 음악인지 파악해야 한다. DJ가 어셔의 ‘Yeah’ 같은 음악을 틀다 갑자기 알리샤 키스의 발라드를 틀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안으로 들어가기 가장 좋은 시점은 이미 흐르고 있는 음악 중간에 기존 댄서가 빠져 나오고 있거나, 다음 곡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비트가 강한 곡인 경우가 좋다. 어쨌든 앞의 댄서가 춤을 추다보면 그 다음 댄서가 예열이 되는 느낌은 그 공기로 원을 둘러싼 모두가 알 수 있다. 앞의 댄서가 나오자 마자 바로 몸을 던진다. 이 때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면, 몸이 알아서 움직여 줄것이라는 확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되었을 때, 내가 무언가 ‘보여줄 수’ 있을거라는 확신.
물론, 나는 이런 댄스파티에 갈때마다 옷을 최대한 춤추기에 돋보이거나 편한 옷으로 맞춰갔다. 그런 디테일한 사전(?)준비가 모이면, 그 순간에 내 몸을 원안에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중, 고등학교 내내 그렇게 춤을 추던 나는 대학교에 가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과 케이팝 댄스 동아리를 만들었다. 나와 비슷하게 춤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비보잉을 할 줄 아는 오빠들도 있었고, 현대무용을 좋아하는 언니도 있었다. 팀 내 나의 별명은 ‘에이스’였고, 우리는 매년 1,000명 정도 되는 관객 앞에서 공연을 했다. 불이 꺼진 상태에서 내 실루엣만 희미하게 보이고, 음악이 나오기 직전에 나는 그 때 그 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감정으로 되돌아갔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상황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한다. 나머지는 내 몸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춤을 알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한번도 춤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중학교 때 그렇게 혼자 창문 앞에서 춤추는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주변에 ‘저는 춤은 정말 못춰요’라고 얘기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춤이라는 것은 추기 전에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서. 대부분 사람들은 춤을 춰보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 시도해보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춤이라는 세계는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이 즐거움은 나와 나의 몸만 알고 있어도 넘치고 충분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관심있는 것, 그리고 세상이 필요하는 것의 합의점을 찾아 지금은 변호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춤은 내가 하는 일 안에서도, 일 밖에서도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 나이가 들며 감정은 잠잠해지고 뜨겁게 사랑하던 것도 어느새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겠지만,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90살이 되더라도 음악이 흐르는 순간에는 상상속에서 한 몸 불태우며 춤을 추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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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글방에서 첫 글감이 공개 되었을 때, 나는 너무 사랑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 잠깐 행복한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5분안에 든 생각은, 드디어 오랫동안 미뤄왔던, 나의 뜨거운 사랑 '춤'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자리에 앉아서 2-3시간 안에 쓰고 거의 한 번 다시 읽으며 빠르게 다듬은 상태라, 아직 만족스러운 형태에 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주 수요글방에서 피드백을 얻고 다시 한번 수정해서 브런치에 재업로드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