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바람 Jan 03. 2023

일상적인 연말을 보낸 당신에게

연말은 우리에게 평소에 하지 않을 것을 하게 해주는 기간이다. 최근에 나는 낭만의 정의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연말은 우리에게 평소에 하지 않을 빨간색 네일을, 평소에는 챙기지 않아도 될 예쁘게 데코가 되어있는 케이크를, 평소에는 전달하지 않을 선물을 서로에게 하게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일상에 '낭만'이라는 것을 잠깐 가져보는 이유가 되어준다. 낭만이 세상을 뒤덮는 이 기간을, 난 참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한다. 혼자였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이번 해는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누군가와 같이 보냈다고 해도 - 이 순간 어느 곳에 혼자 있을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의 낭만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크나큰 공허함과 슬픔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실제로 비교적 조용하게 새해를 맞이했다. 함께 있던 이와 대화하다 보니 2023년 1월 1일이 되었고, 새벽 1시쯤 잠이 들었다. 케이크를 꺼낼 수도, 와인을 함께 마실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6시간 뒤에 맞이한 새해의 첫 아침은 그 전날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매일 있던 일상과 다를 것 없이 카페를 가서 책을 조금 읽고, 글을 조금 썼다. 오후에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2022년 12월 31일 오후 12:59분과 2023년 1월 1일 오전 12:01 사이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올려놓았다. 나도 인스타에 가끔 글과 사진들을 올리는 사람으로서,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들을 이해했지만 10개의 스토리를 연속으로 보자니 마치 서로 얼마나 특별하게 이 순간을 보냈는지 경쟁하는 듯했다. 인스타에 들어가면 항상 혼란스럽다. 내가 굳이 이런 걸 봐서 뭐 하나,라는 생각도 드는 반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던 사람이 가끔 무언가를 올리면 굉장히 반가울 때도 있고, 개인적으로 카톡을 하기보다 인스타에 답장하는 게 적당한 거리인 지인들이 있기 때문에 이 어플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손가락 한두 번만 움직이면 내가 빠져나올 수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인들의 수많은 낭만을 바라만 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 낭만을 기대했지만 케이크 하나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연말을 보냈었다면 - 괜찮다. 어쩌면 당신은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낭만이라는 것을 함께 만들만한 사람을. 그리고 함께 낭만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매 순간을 낭만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누군가 지정해주는 날들이 아니다.


31일이나, 1일이나, 흘러가는 시간 안에 있는 같은 24시간이다.


결국 연말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낭만을 만들 이유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들어버리면 된다. 연말이 지나간 시점에서 곧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또 일상에 낭만을 끌어올 것이다. 또 인스타그램은 핑크빛으로 도배가 될 것이고, 모두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과 선물을 올리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딱히 그 어떤 날도 아닌 날에, 누군가에게 꽃을 줄수도 있다.


"왜?"라고 상대방은 물을 것이다.


우리는 웃으며 "그냥"이라고 답을 하면 된다.


그 답이 다소 엉뚱할지라도, 우리는 오히려 세상 어느 누구도 낭만적이지 않을 때, 우리만의 페이스로 낭만을 찾은 것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타이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