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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Dec 19. 2022

인생은 타이밍

인연도 타이밍

이제는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나에게도 이 것을 처음 생각하게 한 계기가 있었다.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때였다. 중국에서 여름 동안 이 도시, 저 도시를 돌며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영어캠프 프로그램 안에서 선생님이 되었었는데, 각 학교에서 영어 강사진을 여름캠프로 '모셔오는' 프로그램이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날아온 우리가 중국어를 할 수 없으니 학교 측에서는 주변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대학교를 갓 앞둔 학생들이 통역사로 지원하게 해 우리를 옆에서 도와주게 준비를 해놓았다. 두 번째 도시에서 나와 함께 일하게 된 통역사는 "Bill(빌)"이라는 학생이었고 대학교 입학 전 마지막 여름을 소위 말하는 '해외 명문대생'들에게 통역을 하고 싶은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우리와 보내기로 했다고 얘기하는 학생이었다.


빌은 항상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만사가 귀찮은 듯한 분위기도 가끔 냈는데, 우리 반 초등학생들이 빌을 꽤나 무서워했던 것 같다. 빌은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나이와 학번인 다른 학생들과 굳이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웃음도 자주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빌은 나와 함께 대화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내가 묻는 질문들을 흥미롭게 여기며 나에게는 자신을 살짝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빌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렇지 잔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빌이 다른 통역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빌에게 물었다. 


"넌 왜 쟤네들이랑은 대화하지 않는 거야?"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빌이 나에게 말했다.


"너랑 하는 대화는 다른 사람들이랑 하는 대화랑은 달라. 쟤네들의 대화에는 깊이가 없어. 내가 관심 없는 것에 대한 것만 얘기해."


이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며 여름에 잠깐 틈을 내어 중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온 나는, 빌과 4살 차이가 났었다. 4년 전, 내가 대학교를 시작하기 바로 전 여름으로 돌아가면 빌이 말하는 "쟤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빌이 4년 전의 나를 만났으면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빌이 지금 이 여름에 만난 게 된 내가 딱 2013년 여름의 나라서 빌은 이렇게 자신을 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거겠지.


어떤 사람의 인생이 지금 '이런 시기' 일 때, 내가 그 사람을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타이밍'이구나.


***


그 이후로 종종 이런 타이밍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내 인생에 다른 의미로 타이밍이 좋거나 안 좋게 적용한 적도 많다. 대학교 가기 바로 직전에 영주권이 나왔어서 '좋은 타이밍'을 경험했다거나, 혹은 내가 졸업한 뒤에야 대학교 입시 시험이나 로스쿨 입시 제도가 느슨해진 까닥에 나에겐 '나쁜 타이밍'을 경험했다거나. 최근 가장 속 쓰린 타이밍은 바이든 정부의 student loan forgiveness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걸로 계산해본 나의 손해만 1억이 넘는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크게 와닿는 것은 사람과의 인연에서의 타이밍이다. 10년 전 나를 힘들거나 아프게 한 사람들도, 이젠 많이 바뀌고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사람들도, 나도 예전의 그 마찰 없이 지금 이 순간 만났다면 정말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서로의 궤도에 돌고 있다는 뜻은, 그 사람도 인생의 수많은 모습들을 거친 후 '지금의 나' 그리고 나도 인생의 수많은 모습들을 거친 후 '지금의 그' 혹은 '지금의 그녀'와 딱 맞는 타이밍에 만났다는 것이니. 어쩌면 나의 우주 안에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이란 이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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