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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봄 Oct 05. 2022

한여름 날의 농구공

내가 사랑하고 연대하는 여성들

몸이 성하지 않은 채로 어쩌면 무모하게 시작했던 농구는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여기서 더 뛰면 발목이 나가겠다 생각 들어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한 그 순간까지도. 농구는 내게 있어 새로운 세상과도 같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분을 선사해 주었고, 소중한 인연들과 나를 연결해 주었다. 회복을 위해 이번 훈련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농구와의 만남이 단기성 이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코트 안에서의 움직임, 단단한 농구공의 감촉, 체육관 안의 뜨거운 열기는 내 안에 오래도록 자리잡아 삶 속에서 기억될 것이다. 무더운 8월의 여름날, 땀 흘리며 했던 농구는 이제 낯설기만 한 존재가 아닌 내 인생에서 오래도록 함께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농구를 시작하기 전, 평소 지니고 있던 무릎 통증 때문에 방문한 병원에서 들은 말이 있었다. 꼭 하셔야 되는 거예요? 돈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소견서를 써 드릴 수도 있어요. 농구를 해도 괜찮을지 물어봤던 나의 질문에 나를 걱정하던 의사의 눈빛을 기억한다. 의사는 농구를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내게 있어 농구는 시작도 전에 포기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다. 선생님, 그런데 농구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 꼭 하고 싶어요. 공간과 대조되는, 의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렇게 나는 우려를 뒤로한 채 머지않은 농구 훈련을 위해서 튼튼한 운동화 한 켤레를 사러 갔다. 농구와의 아슬하고도 설레는 첫 시작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연대하는 여성들과 다소 생소한 스포츠를 함께 도전하고 즐기자는 취지는 시작부터 농구에 우호적인 느낌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다 같이 에어컨도 되지 않는 실내 체육관에 모여 아직은 손에 어색하게 감기는 농구공을 튀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기해서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 있는 여성들이 농구를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니. 누구는 헤어밴드로, 누구는 목에 건 손수건으로, 누구는 질끈 묶은 머리로, 각자 운동에 맞는 옷차림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모습이었다. 나 또한 저들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질 때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코치님의 지도하에 본격적으로 농구 훈련이 시작됐고 나는 넓은 체육관 곳곳을 누비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머리는 땀에 달라 붙어 진득했고 호흡은 쓰고 있는 마스크 때문에 배로 갑갑했다. 내 몸만 간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농구공과 한 몸이 되어 뛰어야 했기에 체력 소모는 더욱 심했다. 계속되는 훈련에 심장은 쿵쿵거리고 정신은 아득해져 왔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고, 멈추고 싶지 않았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코치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구령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순간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거세게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 몇 대밖에 없었지만 에어컨의 차갑고 인조적인 공기로 우리의 열기를 식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뜨거웠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더욱 소중해졌고 농구공의 감촉이 단단하고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농구공이 손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어색하던 움직임은 점차 과감해지고 골대에 공을 넣는 횟수는 늘어났다. 이제는 시간을 내어 개인 훈련까지 거듭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내 삶에서 별개의 것으로 느껴졌던 농구가 어느새 보편적이고 친숙한 행위로 자리잡았음을 느꼈다.


다가올 단체 훈련을 기다린 채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무심결에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는데 발목 안쪽이 마치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조 증상도 없었기에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훈련 하루 전 가볍게 뜀박질을 하는 순간 더 이상 뛰면 발목이 나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는 몸이 이처럼 원망스러울 수 없었고 내 앞에 놓인 상황이 좌절스러웠다. 결국 모든 훈련을 중단한 채 경기가 예정되어 있던 마지막 훈련도 응원만 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체육관을 자유롭게 누비는 여성들 사이에서 농구 코트 밖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내 모습은 그들과는 다르게 철저히 타인으로 느껴져 마음이 괴로웠다.


발목 통증으로 인해 훈련에 공백이 생겼던 사이, 팀원들은 놀라울 만큼 성장해 있었다. 실감나는 경기를 방불케 할 만큼의 신속한 움직임, 공을 익숙하게 다루는 태도, 열정이 끓어오르다 못해 넘쳐 흐르는 이 공간까지. 나도 저들 사이에서 있었다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경기를 보는 내내 나도 저렇게 뛸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쪽이 무겁고 갑갑했다. 그곳에 나의 농구공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있는 자리는 함께 뛰던 농구 코트에서 벗어난 가장자리 길다란 의자였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느끼는 속상함, 상실감, 외로움 따위의 복합적인 감정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되 이 공간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으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농구에게도, 함께 뛰던 여성들에게도 언제나 진심이었기에. 그래서 성장한 여성들을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코트 위에서의 뜀박질을 눈으로 좇으며 그들의 움직임을 조금씩 따라갔다. 늘 하던 것처럼 익숙하게 드리블, 패스, 슛까지. 마음만으로는 이들과 어울리며 열띤 경기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제서야 나는 한결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훈련이 끝났지만 농구는 내 인생에 있어 이벤트성 경험이 아니었다. 한여름 날의 훈련들을 통해 얻게 된 건 농구는 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확신이었다. 한평생 농구와는 별개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적절한 타이밍에 농구를 선물처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아프다고 해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한순간의 끊어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몸이 회복되는 대로 농구와의 만남을 기약할 것이다. 서툴고 어색한 몸짓으로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이번 여름 뜨거웠던 감각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망설임 없이 농구를 시작할 용기를 주겠지. 이 글을 마지막으로 움직이고 뛰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나와 무더운 여름을 함께해 준 여성들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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