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의 삶

내 절규가 그들에겐 흥미로운 비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by 스프라이트

2015년에 나는 해외로 떠났다.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돌아올 생각이 없으니 전 재산을 욱여넣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수속은 쉽지 않았다. 나는 수화물 부치는 게이트 앞에서 황망해졌다. 승무원 선생님께서 상냥한 목소리로 32kg 이상은 수화물에 넣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게가 더 나가면 1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해요.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의 논리 안에서 가난한 내가 거기다 더 쓸 돈은 없었다. 당장 비행기 시간이 코앞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짐을 풀었다. 짐 중 반 이상을 공항 쓰레기통에 버렸다. 제일 먼저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버렸다. 잊을 수 없는 누군가의 선물을 버리고, 몇 년 동안 가지고 싶었던 신발을 버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추억을 다 버리자 얼추 32kg가 맞춰졌다. 남은 건 노트북, 책 몇 권, 옷가지 몇 벌, 신발 한두 켤레 정도가 전부였다. 그때 깨달았다. 한 사람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건 거의 없구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낭만이 아니구나. 정말로 사람에게 중요한 건 생존을 위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치약과 칫솔 같은 것. 나는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그때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일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확히 5년 뒤 나는 다시 모종의 이유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다고 내 짐이 32kg에서 크게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내 소유물을 더 만드는 일을 병적으로 피해왔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피로함이 쌓였다. 이후 나에겐 다른 병이 생겼다. 물건을 살 때 기준이 생겼다. 마음이 동하는 물건을 손에 쥐고 혼자 되묻는다. 이 물건을 사지 않으면 죽는가? 다시 한번 묻는다. 죽는가? 죽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의 앨범은 안 사도 내가 죽지 않지만 치간 칫솔은 사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치간 칫솔을 산다. 나의 물건들은 생활감으로 가득 찼다. 나는 분명 그날 공항에서 소중한 마음을 버렸다. 이후로 추억이나 선물, 사랑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안다.


이후로 나는 무언가를 아끼는 일을 힘들어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내 범주 안에 존재하면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주의 깊은 사랑을 주는 일을 힘들어한다. 대신에 언제든지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우울한 날이 오면 내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서 이민 가방에 담고 짐이 32kg를 넘는지 재보곤 한다. 일종의 의식이다. 언제든지 내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안심하고 잠에 든다.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건 나의 병이다. 나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에 맞고 뭔가 더 성숙한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철이 들어 식물을 잘 키우는 종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서른일곱이 된 지금, 나는 천성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트북 하나와 옷가지 몇 개만 들고 훌쩍 외국으로 떠났던 몇 년 전 나처럼 철없이, 낯선 외국어가 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나는 32kg짜리 가벼운 삶을 사랑한다. 그 이상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어라 외쳐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몰이해를 사랑한다. 내 절규가 그들에겐 흥미로운 비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한다면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일들은 지겨운 매일매일의 업무, 가족과의 다툼과 같은 허드렛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라이킷, 구독,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