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결벽증

해자를 쌓고, 벽을 올리고.

by 스프라이트

나는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도 사는 게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다. 세상에 다치기도 하고 누군가를 다치게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람이 태어나 인간 세상이란 걸 원체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젠슨 황이 모 브랜드의 치킨을 먹었다는 이유로 치킨 주식이 급등을 하는 세상이다. 철학도 윤리도 없는 허경영이 득세하는 나라다. 사람들이 따라가는 선택들엔 어떤 논리도 하다못해 생각도 뭣도 없다. 어느샌가 그런 모든 것이 진저리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싸구려 같고 값싼 세상이 너무 싫었다. 무지성주의에서 도망치듯 책을 읽었다. 나는 책이 좋아서 읽었다기보다는 도망치는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병보다 약이 독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두고 나는 삶에 대한 결벽을 외쳤다. 나는 옳아야만 했고 자연히 타인들은 틀린 선택지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나는 세상에 해자를 쌓고 거리를 두며 글에서 주는 무결성을 사랑했다. 이원성에 사로잡혀 성서의 시편만 열심히 읽었다. 그때의 공기는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가워 어떤 포유류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취향을 늘어놓고 그 취향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취향이 인간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바흐의 음악이 주는 숭고미와 절대미를 사랑했다. 어떻게 그렇게 지저분하게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었을까. 문학과 예술들을 보면 위안을 얻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나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조차 그 말이 닿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잠시 보여준 어떤 결, 어떤 결함, 혹은 어떤 문장 같은 것이었다. 나는 구체를 사랑하지 못했다. 손에 잡히는 것들은 너무 쉽게 변형되고, 너무 쉽게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형태가 없는 것들만 붙들었다. 사고, 관념, 소리, 어둠, 고독.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 것들. 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사랑해 준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만 내 곁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결국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것에게도 사랑받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이상할 만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사랑이란 지저분한 것이다. 합리의 영역이 아니다. 네가 내 살갗을 파고 들어오는데 당연히 피가 튀고 비명을 지른다. 모든 살인자는 성직자와 동일한 체온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체온이 몹시 그리워졌다. 나는 사실 인간을 깊이 사랑하고 싶었는데, 세상이 굴러가는 원리가 궁금했는데, 인간의 세계는 단순히 뇌의 전기 신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기적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세상은 깜깜하고 좀 더 나빠질 전망만 가득하다. 월가의 블랙먼데이처럼 나는 세상과 인류를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이 결벽은 계속되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첨탑의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악다구니를 지켜볼 것이다. 나에겐, 용기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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