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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초 Aug 23. 2023

마라롱샤 앤 칭다오(麻辣龙虾和青岛)

2. 유유자적 칭다오 여행

마실 나온 듯 편안한 여행


다음날, 나는 아침을 챙겨 먹고 정한 시간에 집을 나와 전날 검색했던 교통편을 참고하여 버스를 승차했다.


날씨가 아주 화창한 날 바깥 외출은 사소한 것들로 피로했던 정신에 부담을 지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을 달래줄 친구 한 명 없는 이곳이 왠지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사회적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지금 내 머리는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분리수거하고 난 뒤의 텅 빈 다락방과 같았다. 그 방에 요긴하게 쓰이는 가구를 고른 뒤 구색을 맞춰서 순서대로 채워 넣으면 될 일이었다.


버스 창가 너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았다. 한껏 멋 부린 옷차림을 한 아가씨, 늙수그레한 노인과 초라해 보이는 사내. 각기 다른 표정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들을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며 경험이 쌓인 탓일까. 언뜻 스치는 표정이나 근육의 떨림, 순간적인 눈빛만 봐도 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생각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만 같다.



버스를 하차하고 '54 광장(五四广场)' 주변에 도착하자마자 오랜만에 안락한 벤치에 편히 앉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바닷 공기를 들이마셨다. 스쳐 가는 향수는 흐릿하고 몽롱한 빛이 되어 새어 들어와 나의 다락방에 색조를 넣어주었다.


곧이어 거친 폭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시시콜콜한 하늘 위로 항공기 한 대가 비행운을 남기고 떠났다. 깜박하고 한국에서 카메라를 챙겨 오지 못한 것을 다시금 후회하며, 휴대폰을 꺼내 대충 찍어 저장해 두었다. 슬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겠다.


그나저나, 과거에는 관광 온 한국인들이 자주 보이곤 했는데 한 번을 못 마주쳐 소박한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솟아올랐다.


54광장(五四广场)과 그 주변


검색을 하지 않고 주변 아무 식당 또는 길거리 음식을 다양하게 먹는 것이 현지 플랫폼에 내 몸을 온전히 담그는 방법이라며 고수하던 나의 여행 스타일이었는데, 이왕 오랜만에 온 칭다오 평소 좋아했던 '마라롱샤(麻辣龙虾)'를 먹기 위해 검색을 통해 나온 맛집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식탁에 놓인 메뉴판을 훑어보곤 고민하지 않고 마라롱샤 30마리 대짜와 지단볶음밥(鸡蛋炒饭) 그리고 칭다오 생맥주 1000cc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맛본 마라롱샤의 자극적이고도 짭조름한 마라향이 곧 혓바닥을 마비시켰고, 담백한 지단볶음밥은 그 짠맛을 중화시켜 주었다. 마지막으로 칭다오 생맥주를 들이켜니 크나큰 행복감이 밀려왔다. 현지 특유의 감칠맛 나는 향신료는 시원한 칭다오 맥주와 참 잘 어울린다. 내가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창 운동도 열심히 했던 시기에 혈기왕성할 때라 생맥주를 포함한 3인분 수준의 양을 혼자서 해치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에서 계산 도중 한국인이시냐며 잘 드신다고 물어오는 종업원의 질문에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식당을 나섰다.



소화겸 걸으며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칭다오에 지하철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과거 칭다오에는 지하철이 존재하지 않았고 늘 공사 중에 있었는데 현재는 완공되어 운영을 하나보다. 안 그래도 시내로 나가려던 참에 좋은 소식이다.


저 멀리 익숙한 중국의 비포장도로에서는 선선한 바람과 동시에 작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처음에 그것은 지평선 위의 안개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 보였으나, 점점 높아지고 넓어지면서 아주 선명해졌다. 먼지구름이 점점 커지던 찰나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땐 잠시나마 고향 또는 이와 닮은 성질을 가진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장소에 들러 안도의 숨 고르기와 함께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는 것이 정서에 좋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음 관광지를 향해 나는 여유를 만끽하며 중국 특유의 광야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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