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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Jun 11. 2019

하염없이, 오카야마에서.

둘째 날 - 오카야마(2)

https://youtu.be/05BWsYqMiYE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Shining Road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고 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조급함은 더해졌다. 이곳에서나 한국에서나 똑같은 24시간의 하루여도 실질적으로 쓰는 시간은 달랐다.


한참을 앉아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이라도 하면 정체라도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좀 더 접근하기 편하지 않을까. 여태 많은 감정을 나의 작은 수첩에 적어왔다. 사실 지금의 내 심정이나 예전의 내가 적었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릴 찾아왔던 수많은 쓴 감정들을 각기 다른 모습이라 착각했다. 나는 우습게도 같은 기출문제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정원의 후문으로 향했다. 건너왔던 다리를 가로지른다. 울창한 나무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던 까마귀 성이 보인다.

맑은 하늘 아래 까만 오카야마 성이 보였다.

하얗디 하얀 히메지 성의 별명이 백로 성이라면, 까맣디 까만 오카야마 성의 별명은 까마귀 성이다. 쾌청한 하늘 아래 두드러진 검은색 판자. 오카야마가 그렇듯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이미지에서 묘한 조화감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카야마가 국내 관광객들에게 더욱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참 많은 사람들이 왔다.

뜨거운 햇살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꼬마들이 줄을 지어 내려온다. 표정에는 지루함이 묻어있어 보였다. 하긴 어렸을 때는 유적지만큼 지루한 곳도 없었다. 나는 어땠을까. 나도 불국사를 내려오며 저 아이들과 비슷한 표정이었겠지.


오카야마 성의 관람은 엘리베이터로 최고층에 올라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으로 이뤄진다. 내부에 전시된 관람물 일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지 않아 금방 내려올 수 있었다.


참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일본의 전통 갑주, 주요 성들의 사진과 정보, 주요 인물들의 글귀 등등. 사실은 일본어를 몰라 90%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쳐다만 보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더니 나 역시 이 꼬마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구나, 웃음이 나왔다.


날이 무척이나 좋았다. 대충 사진을 찍어도 그럴싸한 느낌이 났다. 짙어지는 하늘의 파란색 그라데이션이 제법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트램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포근한 곳에서 나와 안락한 트램을 탄다. 시작과 과정이 하나같이 일관성 있는 하루다.


날이 많이 더워 입맛이 없었다. 시원한 커피나 맥주는 마시고 싶었기에 역 근처에 있는 이온몰로 향했다.

오카야마의 맨홀에는 모모타로가 참 많았다.

트램에서 내리고 지나가는 거리의 맨홀은 우리 것과 사뭇 달랐다. 구라시키에선 포도가 그려져 있었고 이곳엔 모모타로와 친구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오니를 경계하고 있었다. 오카야마에 있어서 모모타로는 친근한 수호신의 모습이었다.


이온몰에 도착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고 가끔은 짜증을 부리고,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다. 그나마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영어뿐이 없기에 이해 못할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저 사람의 하루는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오늘의 오카야마가 끝나간다. 내일의 이곳은 오늘과 비슷할까. 날씨며 사람들이며,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딱 이 분위기 같았으면. 아니 이 공기 속에서 시간이 멈췄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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