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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Jun 12. 2019

여유롭게, 오카야마에서.

셋째 날 - 기비쓰(1)

https://youtu.be/VY6yYIvoBqU

다섯(Dasutt) - Camel

이런 소도시로의 여행을 동경해왔다. 붐비는 사람들이 불편했고 유명한 관광지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접했으니 큰 감흥이 안 느껴질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곳을 설명할 때, 나의 이야기가 그 사람에겐 처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생각했다. 북적북적거리는 도심 관광지가 아닌 그 나라의 시골 같은, 말 그대로의 '小도시'를 들르고 싶다고. 그래서 기비쓰로 향하는 소자행 전철을 탔다.

기비쓰 역까지의 요금만 지불하고 표를 끊었으면 됐지만, 실수로 소자 역까지의 요금으로 표를 끊었다. 누군가와 왔더라면 머쓱하고 민망했겠지만 다행히 나 혼자여서 아무도 몰랐다.


지나가는 전철들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보다 드문드문 구름이 낀 하늘이 좋다. 사람도 그렇다. 늘 해맑고 웃는 사람보다는 조금의 고민이나 생각들이 일부를 이루는 사람이 좋다. 너무 우중충해도 별로지만 조금의 티끌은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라는 걸 일깨워주는 느낌이다. 고민들을 마주하며 나라는 존재를 알아갈 때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지 않을까.


고양이가 말했었다. 아무리 무사태평해 보이는 사람들일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리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고. 어쩌면 약간의 구름 낀 화창한 날씨가 좋은 이유는 우리들과 가장 비슷한 모습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20여분이 흘러 기비쓰 역에 도착했다. 예전 짱구는 못 말려에서나 봤던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역에는 역무원도 없고 전철 티켓을 반납하는 기계마저 고장 나있었다. 나의 500엔짜리 표는 고이 지갑에 모셔두고 천천히 들어갔다.


시골 특유의 포근함. 비가 오면 언제든 쓰고 가라는 친절함이 돋보였다.

옛날 제주도의 정낭 이야기가 생각난다. 3개의 통나무를 걸쳐놓는 방식에 따라 그 집주인이 자리를 비웠는지, 길게 어디를 갔는지, 재실 해있는지를 표현한다던 그 이야기. 하지만 요즘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람을 믿고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건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너무나 빠듯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군대에 있었을 때, 아침 구보 9바퀴를 뛴 적이 있었다. 원래는 5바퀴지만 어떤 이유로 4바퀴를 더 뛰었다. 평소 같았으면 5바퀴 뛰고 나서 헉헉거리기 바빴는데 그 날엔 정말 9바퀴를 완주했다. 내가 어떻게 뛰었지? 생각해보니 내 앞, 뒤, 좌우 모두가 뛰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열 밖으로 이탈하는 게 눈치가 보였었나 보다. 내 주변이 바쁘게 달려가니 나도 같이 흘러갔던 것 같다.


언젠가 친한 친구가 자극적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던 친구가 점점 귀를 닫아버리던 때가 있었다. 욕도 나날이 늘어갔다. 어쩌면 그 친구도 나처럼 바쁘게 뛰느라 그리 변한 게 아니었을까. 주변의 자극적인 환경이 그 친구를 변하게 한 건 아니었을까, 조금의 여유만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도시의 친절이 '서비스' 라는 느낌이라면 이곳의 친절은 '여유로움' 이었다.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잠시 내비게이션을 깜빡했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찾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안내판 하나가 서있었다. 대충 신사로 향하는 화살표라 생각하며 안심하고 마저 걷기로 했다. 하염없이 생각에 빠져 걸어도 친절히 나를 이끌어주는 이곳의 여유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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