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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Jun 15. 2019

아쉬움, 오카야마로부터.

돌아오는 길

굿가이 스미스 - 내마음속가득했던

술에 취해 부러뜨린 안경테를 부여잡고는 한숨이 나왔다. 하필이면 돌아가는 날에 말이다.


4시에 일어났다. 술을 마시면 오히려 일찍 깨는 버릇 탓에 비몽사몽한 채 눈을 떴다. 이제 가야지. 항공편은 10시 30분이지만 좀 더 걷고 싶은 마음에 일찍 거리로 나섰다.


첫 날을 제외하곤 모두 맑은 날씨였다. 내가 바라던 대로 구름이 얕게 낀 하늘이었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약간의 구름이 채 가시지 않았다. 모모타로 공항에 도착해 이곳으로 오는 버스를 타며 모든 게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5일이면 충분하지. 그 정도면 헤집어진 방을 정리 정돈하는 데에는 괜찮은 시간이지.


그런데 아직은 부족한가 보다. 정리를 하려 온갖 생각들을 펼쳐놓던 찰나였다. 며칠만 더 머무르면 차곡차곡 정리해 다시 책장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한 번 편안한 마음을 가지니 계속해서 여유를 부리고 싶은가 보다. 아쉽긴해도 내 생각들을 책장에서 꺼내 먼지 한 번 털어본 게 어디겠냐 싶어 부지런히 짐을 쌌다.


친절하게 한글이 적혀있던 오카야마 역을 지나쳐 간다. 아직 영업을 준비하지 않은 상점들이 즐비했다. 하긴 지금 준비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니까. 아직은 여유 부려도 될 시간대니까. 돌아가야 하는 게 아쉬워 부러운 마음만 들었다. 여기서 며칠만 더 여유롭게 있어보고 싶다. 가자, 가자. 이제 그만 가야 할 시간이다. 재촉하는 듯 드르륵거리는 캐리어의 바퀴소리가 시끄럽게 나를 보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육교에서 바라본 전철들의 엔진 소리가 울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무리했던 어제는 오늘과 같을까. 내일을 기약하며 어제를 털어마셨던 사람들의 속은 괜찮을까. 기쿠지로 씨는 잘 들어가셨으려나.

첫날에는 철조망에서도 낭만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나와 전철들 사이의 거리가 유난히 멀어 보였다. 물론 안전상의 이유라는 건 잘 알지만 떠나는 사람의 아쉬움에 단호한 듯 보이는 철조망이 조금은 서운했다. 오늘의 나는 이만 떠나니 그만 관심 가지라는 듯한 퉁명스러움이 더더욱.


돌아오며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봤다. 내 4일간의 발걸음이 그저 사진 몇 장으로 남겨졌다. 안경을 쓰지 않아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글자를 읽을 때엔 눈을 찌푸리며 째려보기 바빴고 몇 번은 카메라를 이용해 줌을 당기기도 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곳을 보자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내 눈보다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안경을 쓰고 제대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사진 한 장 남기기 급급했던 것 같다. 조금 더 눈에 담아둘 걸. 대충 몇 장 찍고 좀 더 바라볼 걸. 짜증을 부리던 나를 반성했다.


오카야마는 나름 국내 관광객들이 많은 터라 그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아름다운 광경이며 도심지의 공기를 풍기는 그런 곳들. 하지만 유명 관광지 별로 부럽지 않았다. 어쩌면 여행보다는 오히려 혼자 있을 시간을 바라며 여기에 온 게 아닐까. 그동안 내가 외로웠던 건 나의 빈자리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 했기에 그런 게 아닐까. 이곳에서처럼 내 빈자리에는 내가 들어가 있으면 됐을 텐데.


한산한 정류장에 도착해 공항버스 표를 예매했다.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의자에 앉아 그동안 끄적거렸던 내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 묵은 먼지는 털어내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다. 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부모님과 같이 온 저 꼬마는 재밌었으려나. 그들도 나름대로의 낭만을 충족하고 가는 걸까. 어쩌면 나처럼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을까.


버스가 도착하고 짐을 싣는다. 가벼워진 두 손으로 1인 좌석에 앉아 눈을 붙이기로 한다. 공항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내가 어떻게 있더라도 정해진 곳으로 향하는 버스에서의 안도감을 베개 삼아 본다.


공항에 도착해 몇 시간 대기를 하고 출국심사를 받았다. 공항 자체가 크기가 작다 보니 면세점도 크지 않았다. 조금 큰 편의점 정도의 규모였다. 짧게 둘러본 후 의자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린다. 같은 기다림이지만 올 때와 갈 때 느껴지는 거리감, 이런 감정도 여행의 일부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비행기가 도착하고 탑승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좁은 실내를 지나 창가에 앉는다. 인천의 날씨는 흐리다고 하는데 부디 나 또한 그 흐린 날씨에 잠겨지지 않길. 사소한 바람을 가지고 창가를 바라본다.


언젠가 이곳을 한 번 더 온다면, 그땐 나 혼자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고 싶다. 그리고 나중엔 나의 아내와 이곳을 한 번 더 오고 싶다. 다른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웃고 싶다.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소박했지만 풍부했던 오카야마를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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