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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관찰일기 (4)

어쩐지 존댓말로 쓰고싶은 오늘의 관찰일기

어떤 갈증은 여름이 아닐 때 오기도 합니다. 수면양말 잔뜩 신어야 하는 추운 겨울에도 어쩐지 냉수를 마시고 싶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온 몸을 데우는 차(茶)도, 습도가 가득한 한여름에 생각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인체의 신비입니다.


얼마 전 오오츠카 구니아키 작가의 <컨디션도 습관이다>를 읽었습니다. 그 즈음 컨디션이 엉망이었거든요. 인정하지 싫지만 최악의 업무결과를 내고 있었거든요.. 읽기만 하면 컨디션이 호전될 것 같은 기복신앙에 기대어, 읽어야 하는 페이퍼들이 산더미인데도 대출 버튼을 눌렀습니다.


목차만 보아도 수면과 섭취, 활동이 생체 순환기제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지임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내 몸의 빅데이터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거죠. 그리고 이 데이터는 “내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메타인지(metacongnition)’로 직결되기도 합니다. 즉, 내가 내 몸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내가 내 몸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내 몸의 메타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인지(認知)’했다 치더라도, 이 지표들을 일정한 범주에서 성실히 관리하기는 너무 힘듭니다. 지표들이 만들어낸 생체의 리듬은 생활의 박자를 관리하고, 여기서 엇박자가 나면 몸이 아작나는 것이지요. 저는 일정부분 아작이 난 상태였습니다. 저의 자율의식은 이미 타율화되었고, 저의 리듬은 불협화음을 가진지 오래였어요.


내가 나를 지배하지 못한 상태는 유쾌하지 못한 컨디션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끈적거리는 정신으로 연결됐습니다. 정신이 끈적한 상태를 겪어본 적 있으신가요? 이건 마치 7월 정오의 볕 아래 한 시간가량 서 있다가 졸인 설탕물 그릇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해보진 않았지만, 그럴 것 같아요. 이 시기에는 얼음물을 들이켜도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이 있어요. 식도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를 채워야 할지 몰라서 더 화가 납니다. 그리고 화가 난 사람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할 것이 확률적으로 높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지도 못한 채 가장 나쁜 수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몇 개월째 방법론을 붙잡고 헤매며, 나는 재능이 없다를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줍니다. 자아는 그러한 ego와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생각조차 없는데 말이에요.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는 의심을 합니다. 의심해야 할 학문 분야에서는 의심하지 않으면서, 의심하지 말아야 할 신뢰를 의심하게 됩니다. 드라이브를 하러 차를 탔을 뿐인데, 병원에 끌고가려는 못된 인간같으니 하고 삐져있는 고양이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귀여우면 다니까 드라이브는 계속 시켜줍시다

     

제가 느끼는 갈증은 냉녹차를 마셔도 맥주를 마셔도 하이볼을 마셔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온갖 가설을 설정해놓고 최악의 수, 그리고 그 심연의 최최최악의 수를 공상하게 됩니다. 지난 일기에 언급했던 관계와 별자리의 비유(We were like two stars in the same constellation) 역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또 언급하면 지루하니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연인을 굳이 별에 비유해서 너 가까이 오지마 하고 지레 겁먹고 선긋기를 해버리는 사고결과입니다.


그런데요, 집사가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차에 태운게 아니더라고요. 옆에 있던 강아지가 고양이에게 알려줬거든요. “우선 즐겨.” 콧잔등을 창문에 얹고 가는 꼴이 웃겨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실을 사실로 바라보라고 속삭이니까 창문 너머 바람을 쐬고 싶지 뭐에요 글쎄. 라고 드라이브를 끝낸 고양이가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고 합니다.


최악의 수를 즙 짜내듯 짜내는 습관은 ‘재미있는’ 컨디션을 제조해냅니다. 어쩌면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요리 먹기, 잠들기 전 블루라이트를 최소화하여 수면의 질 높이기 같은 몸의 데이터를 상향평준화시키는 습관은 작업능률을 끌올하는 몸의 상태를 만드는 데에만 그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굳이 잘 지내고 있는 연인을 저 먼 별에 비유해버리는 무의미한 상상을 하지 않도록 정신머리를 잡고 있어주죠.


뭐 그래도,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양면이 있듯 바보같은 비유에도 이득은 있습니다.


그 어느날 비인지 상태의 인간1은 타는 목마름으로 연인에게 질문합니다. 

우리는 평생 가까워질 수 없는 두 개의 별과 같지 않아? 같은 별자리에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옆엔 갈 수 없는 별.

문과의 탈을 쓴 가상의 이과인이 답하였습니다.

a. 두 개의 별이 가까워지면 충돌하거나 질량이 큰 별이 작은 별을 흡수할 수밖에 없어.

a-1. 내가 가진 질량이 너의 질량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나는 나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관리할 거야, 우리가 잘못된 충돌을 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빛을 발하며 우리가 가진 별자리를 빛내일 때 가장 아름다울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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