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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Sep 21. 2019

친정과 우리집 사이

-딸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어른으로 성장일기


어제 막차 기차를 타기 위해 부산역으로 달려가는데 역 앞에 '빈차'라고 빨간불을 켜놓은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차를 타러 달려가는 와중에 나는 지금 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 집에 갈 수 있을 텐데, 엄마 아빠에게 출장 온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그냥 현관 도어락 비밀번호를 띠띠띠 누르고 들어가도 엄마 아빠는 놀라지 않고 나를 반겨줄 텐데.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나는 결국 서울행 막차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정신없이 기차에서 자고 내리니 새벽 1시가 넘었다. 기차 플랫폼에는 운행 열차가 없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승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나는 마지막 승객이 되어 사람들이 줄을 따라 묵묵히 걸었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밤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출장으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6시쯤 집을 나섰다. 이후 나는 하루 종일 밖에 있었고 회사의 대리 생활이 시작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나. 공동 현관문 앞에 세워져 있는 딸아이의 유모차를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 하루 끝났구나. 하루를 잘 마쳤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치마에 넣었던 블라우스도 치마 밖으로 내고, 양말도 벗고, 반쯤은 이미 집에 도착한 행색이었다.


집에 와서 영화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나는 "유나는 몇 시에 잤어?" " 밥은 뭐 먹었어"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뭐라고 그래" 하는 등 궁금했던 딸아이의 하루를 체크 체크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데 문득 만약 내가 친정에 갔다면, 엄마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은 먹었니.

오늘 회사는 힘들지 않았니

내일 기차는 몇 시니.


아마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겠지.

이제 친정은 우리 집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사는 집이 되었고, 지금 이곳이 내가 사는 집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딸아이의 밥을 신경 쓰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처럼 딸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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