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웠던 3월 필리핀 보홀 여행

by 우즈

친구가 메신저로 보홀 특가항공권 소식을 알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그날따라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지친 멘탈때문이었을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맘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혜원이에게 ‘보홀 갈까? 특가항공권이 있다네’ 짤막하게 보낸 후 연이은 회의에 들어갔다. 그동안 혜원이는 항공권 티켓팅과 숙소 예약을 마쳐두었다. 이틀 뒤 출국이었다. 나중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제와 예약들을 했는지 물어보니, 내 맘이 바뀌기 전에 모든 걸 확정 짓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부랴부랴 스케쥴러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주 중요한 미팅은 며칠간 없었고, 자리를 아주 잠시 비워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여행이 우리 가족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정신 차리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여행 가기로 한 후 단 이틀이 준비기간이었는데 혜원이는 모든 걸 준비해 냈다. 준비하는 내내 설레어 심장이 떨렸다고 한다. 모든 걸 깔끔하게 준비해 준 혜원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설렘과 흥분이 가득한 마음으로 어느덧 필리핀에 도착했다. 먼저 가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막상 떠나려 하니 ‘이 많은 일들을 두고 맘 편히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보홀에 도착하고 사라졌다.




짧은 준비기간 동안 혜원이는 항공권, 숙소, 그리고 액티비티들을 예약해 두었다. 이동경로를 염두에 두었고 날짜별 피로도도 염두에 둔 것 같은 일정이었다. 대단한 준비였다.


이튿날 우리 가족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갈 계획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타는 곳에 가 팀원들을 만났고, 어색하지만 낭만 있는 길을 지나 자그마한 배에 탑승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배를 타고 돌고래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었던 마음은 설렘이었다. 쉽게 보지 못하는 바다 동물을 직접 만난다는 마음으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우리 가족과 함께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이유가 더 컸다. 운이 좋게도 많은 돌고래들을 만났고 흥분된 마음은 더 커졌다.


그리고 우리는 거북이들을 만나러 출발했다. 공기는 따뜻하면서도 시원했고, 하늘은 맑았다. 일찍 일어난 탓에 딸은 조금씩 졸기 시작했다. 혜원이 무릎에 누워 잠이 들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딸이었고, 혜원이는 딸이 편안하게 눕도록 조심스럽게 있었지만 들뜬 마음은 숨길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곧 거북이들을 만날 수 있는 스팟에 도착했다. 딸도 함께 거북이를 만날 계획이었지만, 겁먹은 딸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딸을 돌보는 동안 혜원이가 먼저 바다에 들어가 거북이들을 만나고 왔다. 들뜬 마음으로 거북이를 만나고 함께 수영한 이야기를 해주는 혜원이 옆에서 나도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어렵지 않게 거북이를 발견했다. 놀라웠다. 바닥에서 평화롭게 먹이를 뜯어먹다 가끔 호흡을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다시 깊숙한 바다로 돌아가는 거북이를 가까이서 봤다. 함께 수영도 했다. 보홀에 가자고 하긴 했지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다시 한번 모든 걸 계획해 준 혜원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스노클링 스팟에 도착해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딸을 위해 로컬 팀원은 어디선가 투명 보트를 가져왔다. 다행히 딸은 그 보트에 올랐고 우리 가족 모두 바다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늘 이렇게 평화롭게 살진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가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살아가는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리조트가 있는 해안가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해안가에서 딸과 나는 보통 웅덩이를 판다. 특정한 형태를 만들기 위함은 아니고, 큰 이유 없이 웅덩이를 판다. 보홀에서도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근방에서 구매한 모래놀이 세트에 있던 삽들은 금방 부러져 꽃게모양, 물고기 모양 틀을 잡아주는 플라스틱 장난감으로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웅덩이로 올 수 있는 길을 내고 물이 고여있을 수 있게 웅덩이의 폭을 넓혔다. 이렇게 딸과 나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웅덩이 중 가장 크고 멋진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웅덩이를 만들며 딸이 이 순간을 되도록 오래 기억해 주길 기도했다.





혜원이는 가족사진을 위한 패밀리룩까지 준비해 왔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사진 찍기 싫어하는 딸의 모습이 찍혔다. 이 순간도 행복했다. 가족사진을 몇 장 더 찍고 딸과 나는 또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크고 멋진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이곳은 많은 곳을 걸어갈 수 있거나 로컬 교통수단인 툭툭을 타고 금방 갈 수 있었다. 이점이 마음에 들었다. 편하게 거리를 걷고, 힘들면 쉽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 우리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다니다 더우면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힘들면 앉아 쉬고. 어디를 가던 행복한 기분이었다. 예정 없이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하는 꽉 찬 시간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혜원이는 사람이 많은 식당을 피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적한 식당들을 잘 찾아냈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바다에서 만난 거북이나 물고기 이야기를 하다 한동안 바깥을 보며 각자의 생각을 하기도 했고, 다시 우리가 함께 만든 웅덩이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딸뿐만 아니라 혜원이와 나에게도 이 여행의 기억이 오래 남길 기도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은 아쉬웠다. ’ 며칠 더 있다 갈까 ‘ 하는 고민도 한참 했던 것 같다. 다가오는 중요한 미팅들, 쌓여있을 일들을 생각하며 짐을 싸고 길을 나섰다. 우리 가족 모두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가는 여행이었다.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고 회복의 시간이기도 했다. 왜인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된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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