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홍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리조트 수영장에서의 시간들, 근방의 식당에서의 좋은 기억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한 멋진 장면들이 기억난다. 그 생각에 혜원이와 강원도에 쉬러 다녀오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했었고 혜원이는 여느 때처럼 빠른 속도로 여행을 계획했다.
이야기를 꺼내놓고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내다, 출발일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고, 차에 짐을 싣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자 혜원이에게 리조트 이름을 물었다. 소노델피노라는 대답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자 246km, 세 시간이 넘는 예상시간이 보였다. ‘홍천이 이렇게 멀었나’ 하며 지도 서머리를 보는데, 우리 집인 서해 끝에서 출발해 동해 끝까지 가는 경로였다. 목적지는 홍천이 아닌 고성이었다. 홍천에 있는 리조트 이름과 헷갈려 고성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한 혜원이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고성에 가게 되었다.
운동할 때 효과적인 근성장을 위해, 루틴에 익숙해져 있는 몸과 뇌를 속이는 개념으로 새로운 자극을 많이 줘야 한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되었는데, 이 여행에서 우리는 우리의 뇌를 완벽하게 속였다. 그렇게 우리나라 지도를 횡단해서 고성에 도착했다. 웅장한 울산바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멋진 리조트였다.
점심즈음 고성에 도착해 가볍게 식사하고, 리조트에 짐을 맡긴 후 곧장 수영장으로 향했다. 혜원이는 우리가 놀러 갈 때마다 짐을 언제 맡기고, 무엇을 하다 체크인을 할지 계획이 있다. 그 타임라인은 늘 효율적이다. 이번 여행도 도착과 동시에 계획에 맞춰 따라갔다. 서해에서 동해로, 긴 시간의 이동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지치기보단 들떠있었다. 오랜만의 여행이기도 했고, 당일 아침까지 생각하던 홍천이 아닌 새로운 고성이라는 곳을 여행하게 되어서이기도 했다.
밖은 아직 추워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방송으로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 안내가 들렸다. 거품을 만들어 뿌려주는 머신이 준비되었고 시간이 되자 거품이 날리기 시작했다. 수영장의 모든 아이들과 우리 딸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고 해맑게 놀기 시작했다. 딸의 이런 맑은 모습은 마주할 때마다 행복한 감정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진과 영상을 남겨 과거를 회상하며 잠재기억 속을 리마인드 해볼 수 있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당시의 감정을 기록하여 나중에 언제고 다시 느낄 수 있는 디바이스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은 막국수였다. 우리는 원주같이 강원도 초입에 있는 도시에 갈 때도, 이번처럼 강원도 깊숙이 있는 고성을 갈 때도 강원도에 오면 늘 막국수를 먹는다. 혜원이와 결혼하기 전, 우리가 연애할 때도 그랬다.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강원도 여행을 할 때마다 막국수를 먹었고, 내가 막국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니 혜원이는 강원도에 갈 때마다 막국수 이야기를 꺼내거나 맛집을 찾아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가 필요한 것들을 아는 혜원이에게 늘 고맙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리조트 안 카페에서 한가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울산바위 이야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딸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 후 스토리라인이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어 찾아보니 딸에게 해준 내 이야기는 대부분 틀린 이야기였다.
한동안 조잘조잘 떠들다, 한동안 주스를 마시고, 또한 동안 멀리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 눈썰매를 타러 갈 준비를 하며 눈썰매장 운영시간을 찾아봤다. 확인해 본 결과, 그날은 리조트의 눈썰매장이 문을 열지 않는 날이었고, 혜원이는 근방의 눈썰매장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곤지암 리조트의 눈썰매장으로 가기로 했다.
고성을 떠나기 전, 가족사진을 찍었다. 삼각대를 가지고 오지 않아, 찍어줄 사람을 찾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렌즈 화각을 최대한 넓혀놓고 셀카를 찍어봤지만 쉽지 않았다. 혜원이와 딸이라도 찍어주고자 했으나 요즘 딸은 사진 찍을 때 가만있질 않는다. 요즘은 움직이는 딸을 찍기 위해 보통 셔터스피드를 짧게 잡는다.
곤지암에 조금 애매한 시간에 도착해 이른 저녁을 먼저 먹었다. 그리고 신이 난 딸은 힘차게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눈썰매를 타기 위해 온갖 방한용품을 착용하고 들뜬 기분으로 썰매를 타러 가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혜원이는 행복했다. 딸이 커서도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여행 다니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눈썰매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한 딸에게서는 신나고 들뜬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와 긴 슬로프에 겁을 먹은 모양이다. 딸은 눈썰매를 포기했고, 친절한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다시 걸어 내려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눈썰매장을 구경만 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혜원이와 나는 딸의 성장을 더 크게 실감한다. 딸의 성장이 반갑고 기쁘기도 하고, 반대로 슬프고 아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