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일본 교토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으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매거진 B 교토 편, 유홍준 교수님의 책, 임경선 작가님의 책을 읽었다. 알 수록 매력적인 교토의 매력에 설레었고, 기대되었다.
최근 우리 가족은 주로 휴양지에 가 쉬는 여행을 택했다. 아이가 아직 크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오랜만에 그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아가며 로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가까이 볼 수 있는 여행이라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기대는 커갔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일본이 처음이다. 나는 한 이십 년 전 전역하고 도쿄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사카로 입국해 열차를 타고 교토로 오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우리와 비슷하고도 다른 일본의 모습을 열심히 관찰하셨다. 가끔 잠시 기다리라고 말씀드린 후 열차표를 사 온다거나,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손녀 놀아주시거나 이곳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며 자리에서 기다리시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에어 비앤비로 일본, 특히 교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목조주택인 마치야를 예약했다. 자그마한 정원과 다다미방이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5일 동안의 교토 여행을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근처 니시키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로컬들에겐 더없이 평범한 교통수단인 버스조차도 우리 가족에겐 다른 나라에서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내버스가 운영되는 전반적인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것들이 다른 교토의 버스였다.
시장에 늦게 도착한 탓에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고, 음식과 주류를 파는 곳들만 열려있었지만 많은 볼거리들이 있었다. 길거리 음식들을 먹으며 서서 마시는 사케를 마셨다. 구경하는 내내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 가득한 엄마 아빠의 모습은 새로웠고, 함께하는 시간들이 소중했다.
다음날엔 오전에 아라시야마에 가기로 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숙소 근처의 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햇빛과 공기와 여유로움에 감정이 벅찼다. 한적한 플랫폼에서 할아버지와 달리기 시합을 하며 열차를 기다리는 딸의 모습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고였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였다.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대나무숲을 구경한 후 텐류지에 들렀다. 사찰과 정원이 멋진 곳이었다. 교토의 사찰 곳곳에는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교복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읽은 만화책들이 생각났다. 일본 만화에 등장하던 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반가웠다.
정원에 관심이 많으신 엄마는 정원을 한참 보셨다. 바위, 모래 등을 통해 표현한 가레산스이 정원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기도 했고, 한참을 관찰하시기도 했다. 교토에 여행오기 전부터 정원들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셨고, 기대만큼 멋진 정원에 감탄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식사 후 근처에 있는 스노피크 랜드스테이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마침 그곳에선 나무들의 가지를 치는 작업이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딸은 그분들을 한참 쳐다봤다. 휴식 후 일어나야 할 때도 더 보고 싶다며 조금 더 있다 가자는 딸이었다. 우리 딸은 이렇게 가끔 엉뚱하다. 이유를 물어보면 설명을 잘해주지 않아 이럴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딸이 이 순간들을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언젠가는 그때 왜 그랬는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그날 밤 세환이가 찾아왔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우리는 이제 나이가 사십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우리가 자란 곳을 떠나 인천에서 살고 있고, 세환이는 오사카에 살고 있다. 우리 가족이 교토에 놀러 왔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부모님께 인사도 드릴 겸, 그리고 나와 혜원이와 딸도 볼 겸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혜원이와 나는 세환이와 나와 술 한잔 했다. 세환이를 생각할 때마다 모질게 굴었던 기억이 많아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낯선 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성적이 되었다. 어릴 적 모질었던 나에 대해 사과했다. 갱년기냐고 되묻는 세환이었다.
다음날 아침은 스마트 커피였다.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사람들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 차례는 금방 왔다. 이곳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하우스 이면서도 일본의 커피문화 킷사텐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에그샌드위치, 프렌치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식사 하는 내내 엄마 아빠는 어릴 적 보던 음식, 컵, 크림 등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좋아하셨다.
일본의 전통적인 간식들도 부모님께 자주 향수를 일으킨 것 같다. 어릴 때 본 찹쌀떡과 같다, 팥이 진짜 팥인 것 같다. 달기만 한 디저트와는 다르다 등등의 의견을 많이 주셨다.
일본에는, 특히 교토에는 많은 것들이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건축물도, 거리도, 음식들도 그렇다.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도시의 난개발을 방지하는 여러 가지 정책 및 법안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요미즈데라 본당에는 기도 또는 절을 하며 소원을 빈 후 몽둥이로 항아리를 쳐 웅장한 소리를 내는 곳이 있었다. 여기서 딸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었는데 기도가 꽤 길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어떤 기도를 했는지 무척 궁금해 여러 번 물어봤지만 딸은 알려주지 않았다.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 가족은 버스만큼이나 많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일본을 상징하는 검은 세단의 택시를 타고 마치야인 숙소로 돌아올 때면, 이 정도면 짧은 여행 중에서도 이곳의 문화에 많이 녹아들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로컬이 바라보기엔 본인들과 완전히 분리되는 위켄더로 보였겠지만.
혜원이와 나는 거의 매일 아침 나가 동네를 달렸다. 오기 전 미리 알아둔 아침에 문 여는 커피하우스를 찾아 달리기도 했고, 목적지 없이 달리기도 했다. 달릴 때마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거리에 나와 빗자루로 집 앞을 쓰는 사람들, 등교하는 학생들, 오픈준비를 하는 상점들. 뛰다 힘들면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면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침을 먹거나 놀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딸을 부모님께 맡기고 혜원이와 나는 숙소를 나와 근처의 선술집을 찾았다. 우리 숙소는 교토의 중심지로부터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이 근처의 선술집에 외부인은 늘 우리밖에 없었다.
사케와 맥주를 마시며 그날의 여행을 회고하기도 했고,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모두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고, 모든 음식과 술은 맛있었다.
우리가 지내던 숙소 근처에는 류코쿠대학 부속 헤이안 고등학교가 있어 교복 입은 학생들이 자주 보였다. 그중 가끔 야구 유니폼을 입은 머리가 짧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야구부원들이었다. 이 학교는 야구 명문으로 과거 김성근 감독님이 어릴 적 진학하고 싶어 했던 학교였다.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가던 중,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청춘들이네 ‘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숙소에 있던 자그마한 정원을 좋아했다. 정원에 나가 햇볕을 받으며 앉아있는 시간도 좋았고, 다다미에 앉아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도 좋았다. 정원은 일본식 정원이었는데, 그곳에 게타가 비치되어 있어 일본의 느낌을 더했다. 늘 아파트보다는 정원 또는 중정이 있는 집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잠시나마 그런 곳에 머물 수 있어 행복했다.
교토 여행은 여러 가지 의미가 컸다. 즐거워하시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나도 즐거웠다. 새로운 나라에서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호기심 있어하는 딸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힘들었겠지만 항상 우리 모두를 챙겨주던 혜원이에게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