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국어
아내의 직업은 수학 교사였다. 올해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업무량이 상당해서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고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 몸과 마음이 유독 지친 어떤 날은 문 열고 집에 들어올 때부터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짜증 낼 준비를 미리 하고 작정한 것처럼 내게서 이유를 찾았다. 나는 태생이 관대하다. 나는 화낼 줄 모르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며 아내를 안아주었다. 내가 아니면 저렇게 난폭하고 무례한 행동을 누가 받아주랴. 나 역시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면 다툼이 발생했겠지만 5시에 퇴근해서 연신 누워 있던 나는 자중해야만 했다. 그런 날엔 엘리베이터 앞까지 고양이를 데리고 마중 나가거나 문 앞에서 아옹이를 품에 안겼다. 그러면 피로에 문드러져 있던 얼굴 표정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마음에 생긴 크고 작은 생채기는 그냥 두면 언젠가는 곪기 마련이라 약 처방이 필요했는데 녀석들이 만병통치약이었다. 아내는 딱히 직업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가르치려고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키는 것을 좋아했다.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대놓고 노골적으로 시키지는 않았다. 내가 이름 붙였는데, 이른바 알림 화법이라는 것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여보, 아옹이 똥 쌌어. 이러면 가서 똥 치우라는 얘기였다. 여보, 다옹이가 요즘 털이 너무 많이 빠지는 거 같아. 그 말은, 소파에 자빠져 있지만 말고 가서 털 좀 밀어. 분리수거 바구니에 쓰레기 꽉 찼더라. 이런 식으로 아주 유익한 정보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나한테 알려줄 시간에 여보가 좀 하지,라고 받아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군소리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나는 관대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치가 빠르고, 언어적 감각이 부족한 편이 아니지만 가끔은 모른 척하고 엉덩이를 뭉갰다. 아내는 수학을 잘했고 나는 국어를 좋아했다. 수학과 국어는 전혀 다른 과목 같지만 국어를 잘하면 수학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한 예로 미분의 미(微)는 미세하게 작다,라는 뜻이었다. 미분은 작게 나누다,라는 뜻으로 작게 나눈 부분의 변화율을 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적분은 잘게 부순 것을 쌓는다는 의미였다. 용어 속에 담긴 의미를 알면 이해도 빨랐다. 아내와 나는 아옹이와 다옹이처럼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그 다름 속에서도 공통분모를 발견하며 동반자의 정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아내는 처음에 아옹이와 다옹이에게 훈련을 시도했다. 아옹이 훈련은 애석하게도 아주 빠르게 포기하고 말았다. 아옹아 너는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모든 고양이가 똑똑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고양이의 IQ를 인간과 비교해 수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2세 유아의 수준 정도라고 봤다. 다옹이는 손을 달라고 하면 줬다. 츄르에 '츄' 소리만 들려도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손가락으로 빵야, 하고 총을 쏘면 쓰러지는 시늉을 곧잘 했다. 더럽고 치사해서 하기 싫지만 간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같았다. 다옹이는 지능이 높아서 사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으로 보았다. 사람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훈련을 시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고, 앉고, 쓰러지고 소위, 개인기라고 하는 것은 고양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 한 가장 큰 결심은 녀석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양만큼 돌려받아야만 했다. 고양이가 사람의 소유물이란 개념부터 철저하게 내려놓아야만 했다. 구태여 서열을 매기면 와이프가 대장이고, 다옹이가 이인자, 그다음 아옹이, 나는 가장 아래였다. 여보, 만약 누가 당신을 그렇게 훈련시키면 기분이 좋겠어! 난데없이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목소리에 힘을 실어 집안의 서열 1위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대답 대신 갑자기 다옹이를 향하던 아내의 손가락 총구가 내 얼굴로 향했다.
고양이의 뇌 구조는 사람과 비슷하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잠자는 동안 복잡한 꿈을 꾼다고 했다. 이는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포함한다고 했다. 아옹이와 다옹이는 어떤 꿈을 꿀까. 아내를 피해 도망 다니는 꿈을 꿀까. 아니며 내 다리에 제 몸을 비비거나 맛있는 간식을 먹는 꿈을 꿀까. 나는 잠들기 전 가장 원하는 것을 갈망하다가 잠이 들었다. 녀석들은 어떤 것을 그리다가 꿈에서 접할까. 부디 아옹이와 다옹이가 꿈결에서 더욱 행복하길 기도했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내는 오늘도 야근이었다. 아내는 일은 몰아서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대체로 꼼꼼하고 성실했다. 군말 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했다. 체력도, 정신력도 나보다 훨씬 강해서 매년 힘들고 고된 강행군을 무리 없이 완주했다. 직업이 부여한 고독하고 고단한 여정 속에서 수없이 많은 적분 문제를 풀듯 자신의 땀과 정성을 켜켜이 쌓고 있었다. 아옹이와 다옹이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출동시킬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