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바다

입춘

by 아옹다옹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고요하고 평범한 아침이었다. 휴일을 스쳐 보내고 다시 출근해야 되는 월요일 아침의 기상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아옹이가 이른 새벽부터 가느다란 야옹 소리로 잠을 깨우는 일이 잦아졌다.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표현해 준다면 뭐든 다 들어줄 텐데, 고양이의 속셈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곁에는 아내가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아옹이는 불 켜진 거실로 나를 안내했다.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낮잠이 과해 밤에 못 자고 내내 깨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는 말에 짜증을 조금 싣었다. 아내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여보, 이상해. 분비물이 너무 많이 나와." 바로 산부인과에 가보자는 내 채근에 아내는 양수가 터진 것 치고는 양이 적다고 했다. 하필 다음날 진료가 잡혀 있어 내일 가도 충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설마 별일 있겠어."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일에 과하게 낙관적이었다. 불행이 자석의 같은 극처럼 우리를 알아서 밀어낼 거라고 터무니없는 긍정으로 여유를 부렸다. 수없이 빈번한 비극을 필연적으로 경험하며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것이, 아니 무뎌져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고난은 가벼이 망각하곤 했다. 출근했다가 점심시간에 제육볶음을 포장해 집에 갔을 때까지도 아내는 병원에 갈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두 시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집을 나선 아내는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아내는 흐느끼고 있었다. "양수 터진 게 맞대. 지금 응급으로 대학병원 가서 애 낳아야 된대." 훌쩍이는 아내의 말에 순간 온몸이 얼음처럼 딱딱해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짜증 냈던 게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용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으라는 말에 공황에 빠졌다. '세면도구와 속옷, 핸드폰 충전기, 기저귀와 물티슈, 또 뭐가 필요하지.' 생각과 행동이 하나로 엉겨붙지 못하고 발만 동동대다가 이십여 분이 그냥 흘러갔다. 뭐가 뭔지 도무지 분간이 안 돼서 아기 속싸개와 배냇저고리까지 닥치는 대로 일단 가방에 담았다. 출산 예정일이 사십 일이나 남아 있었기에 짐도 싸지 않았고 아기 방도 정리가 덜 된 상태였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일이 닥치면 그제서야 허둥대는 삶을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것인지. 두 달 전에 오키나와에 가느라 비행기를 타지 않았더라면. 한 달 전에 거제도로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전날까지 거실에서 스쿼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밤에 충분히 자고 생채 리듬을 잘 조절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침에 바로 병원으로 달렸더라면 좀 더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 긴박한 순간에도 만약 뒤에 놓인 자책할 것들을 꼼꼼히 찾아내고 있었다. 병원에 함께 가지 못한 나는 양수가 터진 것이 생물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몰랐다. 양수는 태아의 체온을 유지해주며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분만 시 윤활제 역할을 하고 소화 기관의 성숙을 돕는다. 뱃속의 태아도 육 개월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하나의 생명체로써의 기능이 갖춰져서 먹고 싸야 한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는 먹을 게 없기 때문에 양수를 먹고 그걸 소화시켜서 배출한다. 그 과정에서 미숙한 위, 소장, 대장 등이 기본적인 소화 기능을 익힌다. 양수는 외부 충격과 세균으로부터의 보호막이 되며, 성장과 분만을 돕는 양분의 역할을 한다. 작은 욕조 안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다가 수채 구멍으로 물이 몽땅 빠져나가 바닥으로 철퍽 쓰러지는 열매를 상상했다. 졸지에 집을 잃어버린 열매가 메말라버린 바다의 황량한 바닥에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는 캐리어에 고개만 처박고 있던 나를 쓱 한번 보고는 빠진 것들을 챙겨 넣었다. 황망히 집을 나서며 아내를 먼저 안아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천안에 위치한 대학 병원으로 향하며 성마르게 자동차 액셀 페달을 밟았다. 그 순간 열매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발가락에 마구 힘을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게 분하고 억울해서 운전이 자꾸 난폭해졌다. 삐쭉 튀어나온 아내의 입술과 눈물이 맺힌 눈가를 흘깃거렸다. 아내는 아마도 나처럼 자책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어제까지 아무런 징조도 없이 평온했는데 난데없이 무슨 일일까. 위로와 안정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꺼내야 되는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 표현력과 감수성이 그것밖에는 안 된다는 사실에 절망해야만 했다. 아내는 가장 친한 친구 셋과의 단체 카톡방에 기도해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절친인 지수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아내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지수는, 엄마가 빨리 보고 싶어 서두른 열매를 축복하고 기쁘게 맞이하고 오라고 담담한 인사를 남겼다.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만남에서 아이를 힘껏 안아주라고 말했다. 그녀의 담대하고 당당한 목소리 톤은 뻔한 위로문 없이도 왠지 모를 안심을 품게 만들었다. 왜 나는 지수처럼 확신을 갖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버버했을까. 차창 밖으로 아름답게 핀 보라색 라일락 꽃이 지나갔다. 평소였다면 누가 돌보지 않아도 산중에 초연하게 자신만의 집을 지은 라일락 나무에 대해 대견하다고 말했을 텐데. 봄이 다 지나가는데도 꿋꿋하게 연보랏빛을 내는 그 기개를 칭찬했을 텐데. 라일락꽃의 향기에 대해 떠올리다가 문득 한로로라는 가수의 입춘이란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이 마음 저무는 날까지 푸른 낭만을 선물할게 초라한 나를 꺾어가요


겨우내 언 눈이 녹아 바다에 스며들기 직전, 계절이 바뀌는 봄을 포함해 모든 시작에는 죽음과 생명의 기운이 동시에 서려 있다. 작자가 자신의 발화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노래의 가사를 되뇌며 열매의 봄이 만개하기를 빌었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몸으로 받아내고 기어이 라일락 꽃 같은 지독한 향기를 뿜어내길 기도했다. 음지에서 태어나 햇볕을 향해 자라는 라일락의 생명력처럼 꼭 살아내라고. 제발.


https://youtu.be/kIiW3XRP7bU?si=X08jp6Ze-J8X45aG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