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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Mar 07. 2022

니트컴퍼니에 첫 출근 합니다

사진출처 : 픽셀스



니트컴퍼니에 입사한 백수


백수 기간 중에 제일 힘든 건, 소속감을 느낄 매개체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적이 처음이라서 이 순간을 어떻게 견뎌야 좋을지 막막했다. 혼자라는 외로움, 뒤처지고 있다는 두려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공황 상태. 이 상황에 더 이상 나를 방치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궁리 끝에 도전하게 된 것은 '니트컴퍼니 입사지원'이다. 


유튜브 영상으로 우연히 '니트생활자'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니트족에 대해서는 뉴스나 신문에서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전적 정의는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라고 하는데, 니트생활자에서 정의하는 니트족은 좀 다른 것 같다. '니트'를 하나의 상태로 보고 '니트 상태'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일할 의지가 없어서 탱자탱자 노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사정에 따라 아직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인 것이다. 


니트생활자의 이런 새로운 정의가 마음에 들었다. 니트족이라고 정의하고 계속 그렇게 명명하다보면 영원히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 같은 낙인이 찍힌 기분이 드는데, 니트 상태라고 한다면 잠시 머무를 뿐이고 언젠가는 다른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의미 같이 느껴진다. 사회가 마음대로 붙인 라벨에 내 인생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 이 상태를 최대한 슬기롭게 보내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하며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백수가 출근을 하나요?


니트컴퍼니는 '니트생활자'에서 진행하는 가상 회사놀이다. 현재 직업이 없는 무직자, 소속감 없이 일하는 프리랜서 등이 주로 지원하여 실제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처럼 출근을 하고, 업무 인증을 하고, 퇴근까지 한다. 활동은 모두 온라인에서 진행하며, 간혹 사내활동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꾸려서 진행한다고 한다.


입사 지원과 입사 과정도 여느 회사와 동일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회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먼저 공지가 올라왔을 때 입사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후에 선정 여부를 알려준다. 선정 기준은 '선착순'이다. 선정이 되고 나면 날짜를 정해서 면접을 진행하는데, 면접은 '거꾸로' 진행된다. 무슨 말이냐면, 지원자들이 니트컴퍼니 임원들(?)에게 니트컴퍼니에 대해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는 방식이다. 거꾸로 면접이 무사히 끝나면 오리엔테이션도 진행을 하고, 최종적으로 입사일에 입사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실제로 '가상의 회사에 입사'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거꾸로 면접이지만 나름대로 신중하게 질문을 고르게 되었고, 진짜 면접보는 것처럼 차려입고(?) 줌 면접에 임했으며, 진짜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신입사원처럼 업무 환경을 공부하며 적응해나갔다. 



니트생활자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는 회사소개(?)




첫 출근 했습니다



3월 7일, 오늘부터 입사해서 업무를 시작한다. 백수가 된 지 3년째라 회사생활을 어떻게 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첫 출근 때 어땠더라? 그냥 멍때리고 있다가 사수가 업무 전반에 대해 설명을 하면 고개를 끄덕거리고 받아적고 했던 것 같다. 인수인계 자료만 지겹게 쳐다보다가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8시 30분부터 사람들이 일찌감치 출근해서 출근도장을 찍고 업무 인증을 시작했다. 나도 출근을 했지만 아직 모든 게 생소하다. 다른 점은, 첫날부터 내가 정한 업무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 같다.


내가 정한 업무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브런치에 글 1개씩 올리기'다. 진행할 업무는 알아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기상미션을 정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는 미션을 정하기도 한다. 공부를 해도 되고, 운동을 해도 되고, 글을 써도 되고, 필사를 해도 된다. 무엇이든지 하기로 정한 일을 꾸준히 하고 인증하면 된다. 


니트생활자 홈페이지 메인화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백수가 된다'



내 목표는 현재의 상태에 좌절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현재에 임하는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뭐라도 될 것 같다. 좌절하고 있다고 해서, 자책한다고 해서 현재의 상태가 달라지지 않는다. 변화는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일조차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개중에는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낙오자들의 정신 승리라면서 폄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혼자였다면 나한테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사람의 말에 쉽게 기죽었을 지 몰라도, 이제는 내게도 동료들이 있다. 



니트컴퍼니의 사훈을 외치며 첫 업무를 마친다.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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