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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Mar 25. 2022

15일차_관심분야 : 빈티지 편

빈티지도 제 짝이 있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3년 전부터 빈티지의 매력에 푹 빠졌다. 퇴사 후 부산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구매하게 된 빈티지 원피스와 가디건 덕분이었다. 오래된 책방 골목, 빈티지 상점 주인의 개성과 애정이 물씬 드러나는 가게의 외관에 홀린 듯 들어갔다. 그 중에 눈에 띄는 빨간색 꽃무늬 원피스와, 같이 전시되어 있던 살구색 가디건을 보고 한 번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전혀 도전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걱정했지만, 막상 입어보니 옷이 나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안녕? 나를 선택해주지 않을래?" 같이 갔던 친구와 빈티지 상점 주인장도 옷을 입은 나를 보더니 '이건 완전 니꺼다'라고 했다. 가격대가 제법 나갔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큰 맘 먹고 데려왔다. 



이때까지 수집한 빈티지들 중 일부. 오른쪽이 맨 처음 구매한 원피스인데, 디테일이 매우 돋보인다.



그 날, 구입한 원피스를 입고 부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정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지나가다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나보고 예쁘다고 해준 것이다. 마치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는 내친 김에 꽃집에서 꽃다발도 사주었다. 들고다니는 내내 사람들이 쳐다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두려웠던 내가 그 순간만큼은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시선을 즐겼다.


뒤로 나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의욕이 없을 때마다 그 원피스와 가디건을 꺼내 입곤 했다. 특별히 외출하는 게 아니더라도 입고 있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마 부산여행의 추억이 담겨있는 옷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제까지 물건을 사고 애착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빈티지의 특이한 위로법(?)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훗날 빈티지를 하나씩 공부하고 수집하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공감가는 말이 있다. '빈티지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고. 나는 그 말에 정말 공감한다. 




그 물건의 추억까지 내게로 온다


많지는 않지만 하나씩 빈티지 아이템을 수집하면서 빈티지의 매력을 많이 발견했다. 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나,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이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나, 패션에 소비되는 환경을 조금이나마 보호할 수 있다거나 하는 점도 매력이다. 


빈티지는 섬세하고 유니크하다. 팔 이음새 부분 무늬도 이어지게 신경써서 만든 옷,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악세사리 이음새까지.



그 모든 매력들을 제쳐두고 내가 요즘 크게 의미를 느끼는 면은 '그 물건의 추억까지 온다'는 점이다. 가끔 빈티지 셀렉샵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그 물건에 담긴 히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물건을 세탁하는 중 이국의 지폐가 나왔다던가, 놀러갔던 영수증이나 티켓 혹은 열쇠 같은 게 나왔다던가, 외국에서 들여온 80년대 물건인데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적혀 있다던가, 엄마가 자식에게 입히려고 직접 만들어준 고급 원단과 자재의 핸드메이드 의류라던가, 심지어 옛날 구매자의 엄마가 아가씨 때 쓰던 가방을 이사하면서 버렸는데 오랜 시간을 돌아 빈티지 매장에서 다시 재회했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다. 이 얼마나 애틋한 사연인가!


단순히 물건만 구입하던 초기와 다르게 지금은 그 물건의 역사나 추억에 집중하다보니 하나하나 더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물건을 쓸 때마다 '이 친구의 전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하고 유추해보기도 한다. 생활 스크래치, 이염자국, 핸드메이드 의류의 엉성한 박음질 자국, 구멍이 나거나 뜯어진 부분, 수선자국 등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글을 쓰는 나에게는 좋은 영감이 되어주는 고마운 친구들인 셈이다.




부여된 의미는 버려지지 않는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새 물건을 살 수 있다. 나 역시 새로 만들어진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편이다. 인터넷 최저가를 주로 뒤적거리지만, 품질이 썩 좋지 않아 오래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소비할수록 많이 느꼈다. 세월이 지나고 살아남은 물건들은 빈티지로 훗날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빈티지로 세월을 건너온 빈티지를 만나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셀렉샵의 주인장이 구매마다 보내주던 작은 엽서들. 이런 것도 하나하나 추억이 된다.


물건을 최대한 깨끗하게 쓰는 편이지만 특별히 애착을 가져본 적은 없었는데, 빈티지를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가끔은 시간이 부여된 물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손에서 쓰여지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쓰여지고, 수명을 다 할때까지 여행하는 물건 하나하나의 역사는 단순히 돈으로만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곁에서 함께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나와의 추억을 품고 긴 여행을 떠나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최대한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언젠가 내가 수집한 빈티지들을 다시 세상에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자신에게 부여된 의미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로 갔으면 좋겠다. 버려지는 게 아니라 여행의 과정이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에게로 간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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