굠? 곰!

by 오징어별

나는 초등학교의 교무부장이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설명하면 학교의 여러 가지 행사들을 계획하고, 학교의 여러 가지 업무들을 조율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고 거창하게 말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은 "선생님 오늘 하루 고생 많으십니다. 학교에는 오늘 이렇고 저런 일들이 있답니다. 시간 되시면 좀 도와주세요." 이런 아침 메시지와 부탁을 하는 자리라고 간단히 설명도 가능하겠다.


출근하면 먼저 메신저 게시판에 오늘 학교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를 적어서 올린다.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은 이 게시판에 올리는 글도 평화롭게도 짧다. 하지만 어떤 행사나 일들을 앞두고 있을 때에는 관련 계획과 함께 자질구레, 자세한 전투적인 글이 된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께 정말 죄송스럽지만 잔소리도 수없이 올린다.(올라가는 글을 읽어보면서도 잔소리하시는 선생님께 잔소리를 드리다니...)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교무실로 오는 전화 응대다. 대부분의 전화는 실무사 선생님께서 해결해 주시지만 해결이 되지 않는 최상위 수준, 경시대회급 문제는 내게 넘어온다.


이렇게 교무부장은 학교라는 시곗 속의 여러 태엽들이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윤활유이기도 하고, 태엽이 돌아가게끔 닦달(?)하는 탄성에너지를 숨긴 스프링이라고 할까. 학교라는 시계가 평화롭게 째깍째깍가면 보람이 느껴지지만, 그 평화로움 안에는 교무부장의 애환과 열정이 녹아있다.


교무 부장을 맡은 지는 2년 차다. 교무 부장의 업무 범위를 생각한다면 햇병아리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햇병아리가 어떻게 업무를 하느냐? 선배 선생님들의 도움도 있지만 이런 아픔을 함께 하는 교무 부장들의 단체대화방이다. 대화방에서는 교육청에서 온 공문을 처리하는 방법과 학교의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 모든 학교와 관계된 궁금증을 물어볼 수 있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이다.


여기를 자주 이용하며 <굠>이라는 낱말을 처음 봤다. 뭐야 했다가 금세 교무를 한 글자로 나타낸 것이구나 알았지만, 또 그 말에서 학교에서 곰처럼 일하는 교무의 모습이 그려졌다. 동굴 속에서 마늘을 까먹는 곰처럼 컴퓨터 자판을 누르며 화면 가득 글자들을, 먹은 마늘 껍질 마냥 생산해 내는 그런 곰!


학교에는 이렇게 마늘대신 컴퓨터 화면 속 글을 까먹는 굠이 한 마리씩 살고 있다. 가끔 그 굠을 만나면 표정을 알 수 없어도 가슴속 반달이 빛바래지는 않았는지 살펴주시면 좋겠다. 절대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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