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부작,사부작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인생 3부작에서 각각의 영화들의 핵심 주제는 조금씩 다릅니다. 그레이트 뷰티는 '인생의 아름다움', 유스는 '젊음', 그때 그들은 '욕망'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다른 주제에도 명백히 보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들이 모두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는 점이죠. 노인이라는 존재는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도 살아온 날이 많고 조금씩 죽음을 염두해 둘 존재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과거에 대한 회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 영화 들에는 플래시 백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미장센과 이미지들을 통해 그러한 회상들을 시각화해서 보여줍니다. 예컨대 그레이트 뷰티에서는 물결과 비행운, 홍학 등이 있고 유스에서는 믹의 영화들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이 있겠죠.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찰자이기도 합니다. 그레이트 뷰티의 '젭'은 로마를, 유스의 '프레드'는 믹이나 레나 등의 인물들을, 그때 그들의 '실비오'는 세르조 일행의 관찰자가 됩니다. 그렇게 관찰되는 대상들 또한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말하자면 주인공들은 그러한 관찰을 통해 자신의 기억들의 조각을 맞추어 나가며 과거를 회상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기억이란 것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야 비로서 떠오르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때 주인공들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존재는 주로 어리고 순수한 존재들입니다. 이미 늙어버린 주인공들에게는 그런 존재만이 자신의 과거를 상기시켜 줄 수 있을 테니까요.
2. 세 영화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감상주의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시각화해 보여주면서 그것에 심취해 있는 주인공들을 보여줄 때가 많은데 그때의 분위기는 상당히 감상에 젖은 느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허무주의적인 면모도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회상하고 있는 시절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니까요. 그래서 주인공들의 나름의 방식대로 그 시절을 다시 되찾고자 합니다. 그레이트 뷰티의 젭은 다시 글을 쓰고자 하고 유스의 프레드는 심플 송을 지휘하고 그때 그들의 실비오는 환락적인 삶을 통해서 옛 시절을 되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주인공들의 시도를 냉소적으로 대합니다. 젭이 결국 마지막에 삶이 속임수일 뿐이라고 말한 것처럼 겉으로는 굉장히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는 삶이라도 그 안에는 공허함과 허무함만이 남아있게 되죠. 그래서 유스에서 프레드는 친구 믹이 눈 앞에서 자살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공허함과 허무함만이 남은 생애에서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니까요.
3. 영화는 종종 그러한 허무주의적인 면모에 빠진 주인공을 감상적인 터치로 그려낼 때가 있습니다. 감상주의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이 과용될 때이겠죠. 감상주의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아도취적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감상주의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과거의 추억과 기억만이 남아있고 그것에 대한 감정만이 전부일 수도 있으니까요(그래서 유스에는 “감정이 전부야”라는 대사까지도 나오죠). 다만 문제는 그것이 형식적인 것과 결합되어 너무 과용되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레이트 뷰티만 보더라도 중간중간 과용되는 느낌의 클로즈업 등으로 인해 이러한 감상주의가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 강해서 종종 몰입이 방해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3부작 중 유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그러한 형식적인 과용이 덜하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아도취적인 형식의 또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3 부작이 지니고 있는 또다른 핵심적인 주제인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풍자와 연결됩니다.
4. 인생 3 부작에서 유스를 제외하고 그레이트 뷰티와 그때 그들은 환락으로 가득 찬 그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이탈리아 상류층과 지식인들의 허례허식과 타락, 사치 등을 블랙 코미디적으로 풍자합니다. 3 부작의 주인공들은 모두 다 상류층에 속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들도 그 세계에서 환락과 사치를 즐기면서 살아가죠. 이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결국 돈이나 명예로는 채울 수 없는 삶의 공허함과 허무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블랙 코미디가 소렌티노의 감상주의적 색채와 만나면서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상류층의 허례허식과 사치를 보여주면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를 이를 단순히 묘사하는데 치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사치와 타락이 어떻게 문제가 되고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죠. 이러한 단점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작품이 그때 그들입니다. 이 영화는 심지어 풍자가 핵심적인 주제의식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단순하게 그들의 향락을 묘사하는데 치중되어 있습니다(그래서 그때 그들 만큼은 그다지 추천 드리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소렌티노 감독의 감상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풍자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냉철함과 이성적인 태도가 보여야 하는데 이를 감상주의적으로 접근하니 제대로 된 비판없이 그저 ‘저건 나쁜 거야.’라고 말하고 끝나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본인이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에 오히려 매혹되고 이끌려 다니는 느낌까지 들죠. 말하자면 사랑 영화에서 연인 간의 사랑을 묘사하는데 성적인 요소를 쓸 수는 있지만 성적인 요소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데 치중하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려는 영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영화적인 세계가 전혀 다르긴 하지만 이와 대비되는 감독이 있다면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들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들도 종종 형식적인 과용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특유의 냉철함을 잃지는 않고 블랙 코미디 본연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냅니다. 그래서 빅쇼트나 바이스 같은 좋은 영화들이 나올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 소렌티노 감독에게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는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5. 결론적으로 소렌티노의 인생 3 부작은 삶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상실감과 허무함에 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는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어하고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그러한 아름다움은 아주 잠시동안만 우리 곁에 있는 것에 불과하고 이미 지나버린 젊음은 돈과 명예로도 살 수 없다는 냉소적인 태도가 흐르고 있죠. 분명히 난해하고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영화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각적으로나 감정적으로는 황홀한 영화인 것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