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보내며

조금 늦은 연말인사

by 이민재

웃으면서 인사를 드리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한 해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난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연말과 연초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만 같습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역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우리의 손아귀를 한참 벗어난 거대한 비극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전해 들으면서 나의 사소한 일상 안에서 웃으며 행복을 느끼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저 자신이 보낸 한 해를 되돌아보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라는 믿음을 가진 채 글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에게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당연히 미국 유학일 것입니다. 미국 내에서 도시를 옮겨 본격적으로 유학 생활을 시작할 때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한 편으로는 기대가 되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가장 큰 원인이 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제 부족한 능력, 제 나약한 의지만으로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랜 고민과 대화 끝에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 자신을 향한 증오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저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저를 곁에서 묵묵히 지원해 준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한 죄책감은 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저의 다짐은 저 자신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넘어서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세상과 작별을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저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아닌 죽음과의 만남을 계속해서 유예하는 두려움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저는 가끔 죽는 꿈을 꾸고는 합니다. 어쩌면 불안과 자기혐오는 저에게 있어 극복의 대상이 아닌 운명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볼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글도 계속해서 쓰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원하는 만큼의 글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저는 영화 앞에서 한없이 무능한 관객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영화 비평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분명히 영화를 사랑하고 비평을 사랑하지만 내가 이것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영화와 비평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만 같은 불안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한다면 언젠가 무능한 저조차도 품 안에 안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영화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는 결국 영화를 보고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저에게는 많은 것을 깨달은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언제나 고립되어 살아가기를 선호하던 저에게 있어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삶은 고독한 것이고 근본적으로 홀로 살아가는 것이라 믿지만 홀로 살아가는 개인들이 모였을 때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광장과 거리로 나서 공동체를 지켜낸 연대뿐만이 아니라 저 개인에게 있어서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의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한없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 일부를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과분한 축복처럼 느껴집니다. 올 한 해의 목표를 굳이 정하자면 그분들에게 있어 조금이나마 더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3>는 많은 픽사 팬들에게 <토이 스토리> 시리즈 중 최고작으로 뽑히는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의 감동적인 엔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조금 다른 장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우디와 장난감 일행들은 쓰레기 처리장의 용광로에 빠질 위기에 처합니다. 우디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버즈는 조용히 손을 내밉니다. 그렇게 장난감들은 용광로의 불길을 향해 다 함께 손을 잡고 내려갑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니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함께 몰락하는 것. 파국이 다가올 때까지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의 세계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 자명해 보입니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며, 수많은 형태의 갈등과 분쟁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 안에서 희망과 낙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를 짓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거대한 절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지금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는 것, 몰락하는 자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는 것, 그러면서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굳이 세계의 차원에서 보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단일한 종결어미를 향해 하루하루 전락하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에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을 구해준 구원의 손길은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하늘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가 지상으로 내려와 십자가를 짊어진 이후에 비로소 인간에게 구원이 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광장으로 나선 연대의 손길과 거대한 참상 앞에서 조금이나마 슬픔을 나누기 위해 함께한 애도의 손길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이번 새해는 그러한 손길이 주는 온기를 더 많이 느끼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 역시 그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