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고독의 풍경

샹탈 아커만-<집에서 온 소식>, <안나의 랑데부>

by 이민재


샹탈 아커만의 영화는 고독하다. 물론 나는 내가 본 샹탈 아커만에 한정해서 얘기하고 있다(특히 1970년대). 샹탈 아커만의 영화를 보다 보면 단순히 그녀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고독한 것을 넘어 그녀의 영화 자체가 고독하다는 인상이 든다. 그것은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해있는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의 형식 자체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좀 더 정확하게, 샹탈 아커만의 영화에서 고독한 것은 인물이 아닌 이미지이다. 그녀의 영화 속에서 이미지들은 서사의 운동 안에서 상호작용하지 않고 고독하게 존재한다. 이 말을 잘 음미해 주기를 바란다. 고독의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의 고독함.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화에서 이미지의 상호작용이란 곧 이미지의 변증법을 말한다. 이미지는 영화 안에서 충돌과 봉합의 연속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를 생성하는 운동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영화의 변증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샹탈 아커만의 영화가 거부하는 영화의 관습이다. 그녀의 영화에서 이미지들은 서사 안에서 단일하고 안정된 체계를 이루는 대신 스크린 위에서 즉자적으로 존재하며 서사와 불협화음 한다. 운동하지 않는 이미지는 고독하다. 그리고 이미지가 그렇게 고독하게 존재할 때 우리는 이미지에 즉자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얻게 된다. 샹탈 아커만은 관습적인 드라마 안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를 즉자적인 층위로 끌어올려 우리의 인식과 직접적인 대면을 하도록 만든다. 여기서는 샹탈 아커만의 그러한 이미지의 고독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 두 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집에서 온 소식>은 단순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화면에서는 샹탈 아커만이 머물고 있는 뉴욕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한편 화면 밖에서는 샹탈 아커만과 그녀의 어머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샹탈 아커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시각과 청각의 불일치. 샹탈 아커만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그녀의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 샹탈 아커만은 둘 사이를 봉합하기 위한 어떠한 미학적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미지와 사운드는 고독하게 스크린 위에서 존재한다. 이들은 영화 안에서 어떠한 내러티브도 생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의 실패가 아니다. 왜 이들은 고독하게 존재해야만 하는가?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사에 의존하지 않은 채 즉자적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샹탈 아커만의 시각과 마음을 그대로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시각이라는 감각. 사운드라는 마음. 육체와 정신. 이 둘이 만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샹탈 아커만의 실존 그 자체, 더 나아가 그녀의 영혼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영혼의 변증법. 모든 서사를 거부하고 세계에 던져진 존재를 그려내는 영화. 서사 안에서 그려진 존재가 아닌 낯선 세계 안에 고독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초상. 이때 운동하는 것은 영화가 아닌 우리의 마음이다. 존재자에 다가서는 운동. 영혼을 찍고자 하는 영화. <집에서 온 소식>은 영화가 영혼을 찍을 수 있다는 하나의 강력한 증거이다.



<안나의 랑데부>는 정반대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감독인 안나는 독일과 브뤼셀, 파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중 누군가와는 성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고 누군가와는 오랜만에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만남의 연속. 그러나 안나는 이들 중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관계의 실패. 실패의 연속. 샹탈 아커만은 <안나의 랑데부>에서 실패의 이유를 탐구하는 대신 고독의 풍경을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집에서 온 소식>이 이미지와 사운드의 고독함을 그려낸다면 <안나의 랑데부>는 서사의 고독함을 그려낸다. 서사는 왜 고독한가? 안나의 만남은 계속 실패한다. 만남의 실패는 곧 서사의 창조가 실패한다는 뜻이다. 서사가 창조되지 않을 때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안나의 이미지는 관계 안에서 규정된 대자적 존재가 아닌 모든 관계에서 배재된 채 존재하는 즉자적인 존재의 이미지다. 그것은 곧 고독의 이미지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집으로 돌아온 안나는 침대에 누워 전화기에 녹음된 음성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 안에는 미처 자신이 확인하지 못한 수많은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안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메시지를 듣기만 한다.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이미지. 모든 메시지가 끝났을 때 비로소 안나는 완전히 고독한 존재가 된다. 절대적인 고독의 풍경. 단언컨대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를 그려낸 고독한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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