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재 Oct 01. 2019

박하사탕 리뷰

영화가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법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박하사탕은 역순행적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에는 순수한 청년의 영호가 아닌 이미 타락하고 무너져버린 영호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영호는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몸을 던진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그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면서 최후를 맞는다. 역순행적 구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건을 통해 영호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영호에게 감정이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구조는 다시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영호에게 영화가 보내는 하나의 위로같이 보이기도 한다. 각 챕터는 거꾸로 가는 기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각 챕터에는 한 번씩 기차가 등장한다. 기차는 그 자체로 시간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이미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마지막 챕터에서 기차는 소리로만 등장한다. 그리고 영호는 강가에 누워 지나가는 기차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챕터는 사실상 영호의 꿈처럼 묘사되어 있다. 영호는 이 꿈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2. 영호는 모순에 가득 찬 인물이다. 이러한 모순은 주로 94년도와 87년도에 극대화된다. 외도한 아내를 찾아가 폭행을 가하지만 정작 자신 또한 외도를 저지른다. 순임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 중 증권 회사 직원을 언급하지만, 94년도에 사업을 할 때는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87년도에 경찰로 근무할 때는 청년들을 고문하지만, 동시에 술집에서 일하는 미성년자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에게 손가락 욕을 날린다. 영호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자기혐오와 자기 환멸에 빠지는 인물이다. 영호가 개를 싫어하는 이유도 경찰 시절 자신의 별명이 ‘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은 영호의 순수했던 시절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시작된다. 영호는 원래 공장 노동자 출신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사회에 물들기 시작했다. 점차 사회에 물들어져 가면서도 자신의 순수했던 이상을 되찾고 싶어 하는 욕구 사이의 괴리는 영호를 모순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영호가 가장 타락했다고 볼 수 있는 94년도와 87년도에 극대화된다. 이는 단순히 영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체험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영호가 될 수 있다. 79년 가을은 1026사태가 있었다. 그때 많은 청년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이 산산 조각난 80년도, 원치 않게 국가의 부름을 받은 청년들은 원치 않게 사회에 물들어져 가기 시작하고 우발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이상을 포기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 성장과 함께 타락해가던 청년들은 중년이 되고 97년도 IMF 사태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 다시 순수했던 시절을 그려보지만, 한번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영호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체험한 모든 청년을 대표한다.


                                                               

3. 박하사탕이 영호 개인의 이야기를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방식은 단순히 스토리 적인 면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영호가 동료 형사들과 김원식을 잡으러 갔을 때를 떠올려 보자. 김원식이 나타나고 동료 형사 둘이 뒤를 쫓는다. 그러다가 김원식과 충돌한 영호는 과거 군인 시절 다친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게 되고 김원식을 잡은 동료 형사들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이때 3인칭 시점이었던 카메라는 영호를 앞서가더니 어느 순간 영호의 시점 쇼트로 전환된다. 그리고 형사 한 명이 카메라를 보면서 소리치고 해당 신이 끝나게 된다. 이러한 쇼트의 전환은 영호의 이야기에 보편성을 더해주는 효과를 낳는다. 영호가 트라우마를 간직한 군인 시절 다치게 된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는 순간부터 관객의 시점과 영호의 시점이 하나가 되는 것은 비슷한 트라우마를 공유한 관객들과 영호를 하나로 합쳐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 보편성을 더해주며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흔히 이창동 감독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영화가 지나치게 문학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화에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러한 영화적 요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이다. 박하사탕뿐만이 아니라 밀양과 시와 같은 작품에도 이러한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창동 감독 영화에 문학적이라는 비판은 어불성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4.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영호는 명식을 심문하던 중 이렇게 묻는다. 명식은 자신의 일기장에 그러한 말을 적어놓았다. 명식은 과거의 영호처럼 순수한 꿈과 이상을 지닌 청년이다. 영호가 명식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그러한 시절을 겪어본 영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려는 조언인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섞인 질문이다. 과연 우리의 삶은 아름다울까? 영호의 관점에서 대답하자면 답은 “내 삶은 아름다웠다”일 것이다. 영호의 삶도 한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기에 그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락으로 떨어진 그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것뿐이다. 박하사탕은 20세기 대한민국의 끝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되돌아본다. 이 영화를 보는 현재의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지금은 21세기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