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재 Oct 01. 2019

판의 미로 리뷰

잔혹한 세상 속 아름다운 동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먼저 관람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영화는 주인공인 오필리아의 죽음으로 시작하면서 영화의 결말을 알려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오필리아에게서 나오는 피가 다시 오필리아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고 나레이션을 통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 영화는 오필리아를 위한 영화인 동시에 동화이자 우화임을 밝힌다. 오필리아를 현실에서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오필리아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작은 위로를 주기 위한 영화인 것이다. 오필리아는 현실에서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엄마 카르멘의 재혼으로 비달 대위와 함께 살게 되었고 새 아버지인 비달에게는 천대받는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프랑코 내전이라는 불행한 시기에 태어났다. 그렇기에 오필리아는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는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내며 위안을 얻는다. 스스로 만들어 낸 판타지 세계에서 오필리아는 사실상 스스로 임무를 부여하며 자신이 만든 지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 낸 동기에는 현실에 대한 원망과 그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투여되어 있다.


2. 이 영화에서 메르세데스는 사실상 오필리아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오필리아가 메르세데스에게 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자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은 어릴 적에 엄마가 판을 조심하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두 인물 모두 현재 비달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가 페레이로 박사와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난 뒤 메르세데스가 공화파 반군의 첩자임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도 오필리아이다. 이렇게 판의 미로는 메르세데스의 이야기와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으면서 진행된다. 그렇기에 오필리아의 이야기는 곧 메르세데스의 이야기이고 오필리아가 지향하는 판타지 세계는 곧 메르세데스가 지향하는 공화파 반군의 세계이다. 공화파 반군의 세계는 군부 독재를 상징하는 비달의 세계와 대비된다. 아버지 비달의 학대와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오필리아의 세계는 프랑코 정권의 독재를 반대하는 공화파 반군의 세계와 일치한다. 그러나 메르세데스의 세계는 비현실적인 오필리아의 세계와 달리 철저히 현실적이다. 당장 비달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연인이 있는 반군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우선은 비달의 밑에서 그에게 복종한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오필리아의 판타지 세계와는 대비된다. 그렇게 현실에 순응한 메르세데스는 결국 자신의 이상 세계에 도달한다. 반군에게로 도망치다가 비달에게 잡혀 온 메르세데스는 평소에 자신이 쓰던 칼로 비달의 입을 찢고 자신이 그토록 가고자 했던 반군 진영으로 완전히 도망친다. 그리고 메르세데스가 칼에 묻은 피를 습관처럼 앞치마로 닦을 때 카메라 역시 그 모습을 전에 그랬듯이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3. 비달은 영화에서 시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계는 연속성의 상징이다. 비달은 자신의 자식에게 자신의 역사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비달은 아버지의 시간은 물려받기를 거부한다. 비달의 아버지는 전사하기 직전 시계를 깨뜨려 자신이 죽은 시간은 비달에게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비달은 아버지의 시계를 고쳐 다시 시간이 흐르게 한다. 자신의 역사를 승리로만 채우고자 하는 비달에게 패전한 아버지의 역사는 수치인 것이다. 그래서 면도를 하던 중 시계 소리가 들리자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면도칼로 그어버린다. 자신에게 아직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죽이기 위해서이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메르세데스에게 입이 찢어지게 되는 장면과 연결된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수치를 지우고자 했던 그 칼은 역설적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오로지 승리만으로 자신의 역사를 장식하고자 했던 그의 야망은 오필리아와 같은 아이들의 불행이 되었고 메르세데스는 이에 대해 심판한 것이다. 비달은 오필리아가 아기를 데리고 도망가자 오필리아를 쫓아가 그녀를 죽이고 아기를 되찾아 온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패전한 상태이다. 아버지와 같이 자신의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 자신이 죽은 시간을 알려달라고 반군에게 요청하지만, 이는 단칼에 거절당하고 아이에게 이름조차 알려주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4. 오필리아의 임무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죽은 무화과나무 뿌리에 사는 황금 두꺼비에게 안에 있는 황금 열쇠를 찾아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필리아는 판에게 세 개의 마법의 돌을 받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반군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시점이다. 오필리아가 첫 번째 임무를 위해 무화과나무 뿌리에 들어가고 난 뒤 다음 장면은 비달이 반군을 수색하러 갔다고 돌아오는 장면인데 여기서 영화상에서 처음으로 반군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오필리아의 판타지 세계가 오필리아에게 점점 드러나듯이 반군의 모습도 점점 드러나는 것이다. 오필리아가 받은 세 개의 마법의 돌은 사실상 오필리아의 세 가지 임무로 볼 수 있고 황금 두꺼비는 비달과 프랑코 정권, 죽은 무화과나무는 오필리아와 반군의 이상 세계이다. 오필리아가 세 개의 마법의 돌을 두꺼비에게 먹이고 황금 열쇠를 찾아오는 것으로 무화과나무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므로 반군이 영화상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편집은 오필리아의 두 번째 임무에서도 나타난다. 오필리아의 두 번째 임무는 판에게 받은 마법의 분필로 문을 만들고 그 문을 열면 나타나는 비밀스러운 통로 끝에 있는 칼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 통로 끝에는 괴물이 살고 있으며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지만, 판은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칼을 찾고 돌아오다가 오필리아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음식을 먹게 된다. 그러자 움직이지 않던 괴물은 손에 눈을 붙이고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요정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괴물은 아기 울음소리를 낸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타협한 순간 이상은 현실이라는 괴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함께 이상을 추구한 사람들의 희생이 따르게 된다. 그리고 괴물이 가장 순수한 영혼인 아기의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먼저 희생된 사람들의 원망이 내는 울음소리로 볼 수 있다. 이 시퀀스 이전의 신은 반군의 진영에 간 페레이로 박사가 부상당한 반군의 다리를 자르는 것이다. 이 또한 함께 이상 세계를 추구하던 사람의 희생으로 오필리아로 인한 요정의 희생과 같다. 통로를 빠져나온 뒤 오필리아가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판은 “당신 역시 인간처럼 늙어가고 죽을 것이며 우릴 잊을 것”이라고 말한 뒤 떠난다.


5. 판은 오필리아가 엄마 카르멘의 병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자 맨드레이크 뿌리라는 것을 준다. 맨드레이크 뿌리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뿌리이며 신선한 우유에 담가둔 뒤 매일 피 두 방울을 주라고 말한다. 맨드레이크 뿌리가 우유에 들어가자 침대에 누운 카르멘의 움직임과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우유는 아기가 먹는 젖이고 오필리아의 피는 가장 순수한 자의 피이다. 맨드레이크 뿌리가 인간이 된다면 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아기는 가장 순수한 인간이다. 맨드레이크 뿌리가 카르멘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카르멘이 아직 간직하고 있는 순수성이기 때문이다. 카르멘은 현실 중심적이면서 오필리아의 판타지에 냉소적이다. 오필리아는 그러한 카르멘이 어린 시절 순수성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맨드레이크 뿌리를 비달에게 들키고 난 뒤 카르멘은 이를 불태운다. 맨드레이크 뿌리는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카르멘은 진통을 느끼며 출산을 시작한다. 출산 후 아기는 살게 되지만 카르멘은 죽게 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두 존재가 충돌한 것이고 카르멘이 진 것이다. 현실을 대변하는 카르멘의 죽음은 비달의 몰락과 반군의 승리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고 더욱 커다란 불행에 빠지게 된다.


6. 두 번째 임무 이후 사라졌던 판은 다시 오필리아의 앞에 나타나 세 번째 임무를 준다. 바로 갓 태어난 오필리아의 동생을 데리고 미로로 오라는 것이다. 이전에 오필리아와 함께 반군 진영으로 도망치다 비달에게 잡혀 돌아온 뒤 비달에게 고문당할 뻔한 메르세데스는 비달의 입을 찢어버리고 무사히 반군 진영으로 도망친다. 이와 더불어 오필리아 역시 방에 갇혀있던 중 판이 찾아오고 판이 건네준 분필로 방을 빠져나온다. 아기를 데리고 비달에게서 도망치던 중 정부군은 반군의 습격을 받게 되고 비달은 오필리아를 뒤쫓는다. 미로에 도착한 뒤 판은 지하 세계 문을 열기 위해서는 순결한 피가 필요하다며 아기를 죽이려고 하지만 오필리아는 거부한다. 판이 사라지고 비달이 아기를 빼앗은 뒤 오필리아는 비달에게 죽는다. 미로에 들어온 메르세데스 앞에는 죽은 오필리아가 있고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에게 가사를 모르는 자장가를 들려준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피가 문으로 떨어지고 오필리아는 상상으로나마 지하 세계의 공주로 돌아가게 된다. 오필리아의 판타지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현실적이다. 그러한 비현실적인 판타지 세계는 오필리아에게 도피처를 제공해 줄 수는 있지만,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결국, 오필리아가 자신의 판타지 세계에 온전히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다. 그렇기에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에게 판을 조심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메르세데스에게 오필리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마찬가지이다(메르세데스는 성인이 된 오필리아로 볼 수 있다). 이미 어린 시절에 오필리아처럼 순수한 판타지 세계를 지향했던 메르세데스 역시 그러한 판타지는 결국 실현 불가능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오필리아가 메르세데스에게 요정을 믿느냐는 질문에 자신도 어린 시절에는 믿었지만, 지금은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판타지를 잃지 않았던 오필리아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메르세데스는 그런 오필리아의 편안한 죽음을 위해 자장가로 오필리아의 판타지를 완성 시켜 준다.


7. 판의 미로는 오필리아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다. 오필리아처럼 시대적으로 불행한 시대에 불행한 삶을 살았던 아이들에게 판타지를 만들어주며 위로를 주는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 중간중간에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판타지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필리아와 같은 아이들이 아니라 메르세데스와 같은 어른들인 것이다. 오필리아의 순수한 판타지는 자기 자신도, 세상도 구원하지 못했다.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오필리아의 판타지는 메르세데스와 같은 어른들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순수한 이상이 없었다면 메르세데스 역시 비달에게 복종만 했을 수도 있다. 오필리아의 이상은 나무는 되지 못할지언정 나무를 장식하는 작은 꽃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하사탕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