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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살인마 잭의 집 리뷰

타협없는 예술가의 뻔뻔하고도 강렬한 블랙코미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살인마 잭의 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작 님포매니악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선, 형식적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또한, 주인공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고 주인공은 그러한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러한 주인공이 님포매니악에서는 색정증을 지닌 여성이고, 살인마 잭의 집에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남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주인공은 모두 자신의 행위에서의 통념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님포매니악에서 조는 섹스에서 감정과 사랑을 제거하고 살인마 잭의 집에서 잭은 살인이 죄악이라는 통념을 제거하고 예술 행위라고 주장한다. 잭의 직업은 기술공이자 건축가이다. 그는 집을 짓고 싶어 하지만 만족할만한 재료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살인을 통해 건축 재료를 얻고 싶어 한다. 이때 잭은 인간에게서 영혼을 제거하고 육체만을 남긴다. 육체만이 남은 인간은 잭의 의사대로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마치 사냥하기 전의 동물은 하나의 생명체이지만 그 시체를 박제하게 되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듯이. 하지만 잭은 단순히 살인의 결과만이 아닌 과정 역시 중요시한다. 같은 살인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따라 다른 예술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님포매니악에서 조가, 섹스의 다양성을 중요시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섹스를 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2. 하지만 흥미롭게도 살인마 잭의 집은 님포매니악과 정반대의 관점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님포매니악을 포함한 우울 3부작(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은 모두 역사적으로 억압받아온 여성의 이야기를 뒤집어 만들었다. 이때 여성은 광적이지만 숭고하고 남성은 이성적이지만 오만하다. 또한, 여성은 남성이 정한 특정한 통념과 틀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살인마 잭의 집에서 여성은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잭이 고백한 5가지 사건 중 마지막 사건을 제외하면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다. 심지어 잭은 네 번째 사건 직전에 피해자인 심플에게 “왜 여자는 항상 피해자고 남자는 항상 가해자야?”라는 식의 말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여성은 주로 피해자였고 남성은 그러한 여성에 대한 가해자였다. 우울 3부작이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뒤집어 여성은 위악적으로, 남성은 위선적으로 묘사했다면 살인마 잭의 집은 그러한 위선과 위악을 제거하고 남성(잭)은 악으로, 여성(피해자)은 선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선은 악에 대해 철저히 무기력하다(“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모른다.”-카프카). 그렇기에 피해자인 여성들은 이상하리만큼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나온다. 네 번째 피해자인 심플은 잭이 스스로 살인마라고 고백했음에도 이를 믿지 않다가 살해당하게 된다. 잭은 심플을 살해하기 전 그녀의 유방을 칼로 도려낸다. 이는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여성이 자신의 음핵을 스스로 도려낸 것과 대비된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여성이 음핵을 스스로 도려낸 것은 쾌락을 거부하고 고통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살인마 잭의 집에서 잭이 심플의 유방을 도려낸 것은 피해자로 규정되어 온 여성의 상징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선에 대한 악의 조롱을 담고 있다. (잭은 심플의 도려낸 유방 한쪽을 자신의 지갑으로 개조하여 사용한다). 영혼과 생명이 제거된 인간의 육체는 잭에게 그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에 불가하다. 심플은 살해당하기 직전 도와달라고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잭 역시 이를 알고 있다. 살인마 잭의 집은 선이 악에 대해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지한지를 일깨워준다.



3. 잭은 버지와의 대화에서 “어떤 사람들은 허구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은 작가가 통제된 현실에서 자신의 욕망을 예술의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죠. 저는 그에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천국과 지옥은 하나라고 믿어요. 영혼은 천국의 것이고, 육신은 지옥의 것이죠. 그리고 영혼은 승천하고 육신은 우상과 예술 같은 모든 위험한 것들이죠.”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가 나올 때 화면에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의 장면이 몽타주로 이어져 나온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항상 극단적이고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라스 폰 트리에 본인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육신을 대표하는 잭이 우상과 예술을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험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잭은 곧 라스 폰 트리에 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잭의 말을 들은 버지는 그를 ‘안티크라이스트’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육신을 대표하는 잭조차도 영혼이 존재한다. 잭은 낫으로 풀을 베는 소리를 통해 풀의 생명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즉 생명의 죽음을 통해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잭은 살인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생명력과 영혼을 느끼는 자이다. 그렇기에 천국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플래시백으로 잭이 저지른 살인들과 그 시체로 완성한 집이 나온다. 살인을 저지를 수 없는 잭은 이제 육신만이 남았을 뿐 영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영혼을 되찾고자 이승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실패하면 지옥의 최하층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이미 육신만이 남은 자에게 지옥이 무슨 의미일까. 역시나 잭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고 이때 카메라는 네거티브 필름으로 바뀌게 된다. 잭은 네거티브 필름이 빛 속의 어둠을, 어둠 속의 빛을 볼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잭이 지옥에 가는 것을 잭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으로 보지만 잭에게 지옥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육신만이 남은 잭에게 지옥은 자신의 집을 마음껏 지을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엔딩에서 네거티브 필름으로 찍힌 지옥을 보여주면서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한번 우리를 조롱한다. 그리고 나오는 엔딩 곡 “Hit The Road Jack”. 어쩌면 살인마 잭의 집은 그동안 자신의 예술을 비난해온 이들에 대한 블랙 코미디이자 자신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요청이 아닐까.


4. 살인마 잭의 집은 개략적으로 이러한 주제와 내러티브를 가지고 진행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내용만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살인마 잭의 집은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논쟁거리와 의문점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작품이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보고 라스 폰 트리에답게 허장성세와 사기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어떤 허장성세와 사기도 발견하지 못했고 오히려 참신하고 과감하며 지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 걸작이라고 확신한다. 흔히 좋은 영화는 극장 밖에서 시작하는 영화라고 한다. 살인마 잭의 집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 스스로 하여금 질문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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