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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03. 2020

댄스, 댄스, 댄스!

후끈한 목덜미를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어루만진다. 달이 휘영청 떠서 어두운 동아리 방을 비추고 창문 밖은 달밤 산책 나온 사람들의 말소리로 정답다. 춤을 추고 나니 도파민도 마구 분비되고 아름다운 것들이 눈과 귀에 저절로 들어온다.


숨이 가쁘다. 방금까지 춤을 췄다. 춤을 추고 나면 꼭 실없이 웃음이 난다. 흐흐, 히히. 글로도 표현하지 못할 감정을 표현해내서 만족스러운거지. 억울한 감정은 가슴을 치고 머리를 헝크리고 김연아가 회전할 때처럼 턴을 몇 번이고 돈다. 달이 아름다워 미치겠는 감정은 곧 닿을 것처럼 손을 뻗는다. 허릴 오므려 다리 속에 머릴 박거나 뮤지컬 주인공이 등장할 때처럼 온 몸을 활짝 피기도 한다. 이 순간, 나는 누구든 된다. 나이면서 내가 아니고 나이면서 또 다른 내가 된다. 상상의 변주를 놓치지 않고 표현해냈을 때, 짜릿한 쾌감에 허벅지가 벌벌 떨릴 정도다.


춤을 추기 전에는 육상을 했다. 멀리 뛰기와 높이 뛰기처럼 단거리 종목이었다. 단거리 종목은 근육에 열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는 종목이다. 훈련 이외에는 숨이 가쁠일도 없다. 여유로운 코치님 아래에서 훈련을 받아 고생한 기억도 없다. 도대회에서 만난 언니들과 합숙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그런데 춤을 추고, 내 허벅지가  벌겋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간질간질하고, 뜨거웠다. 다음 날은 묵직하고 더럽게 아팠다. 허벅지가 허벅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감각이 얼마나 반갑던지!

 

몸으로 이루어져 몸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란 어찌나 애달픈가. 손 마디 하나 접을 때조차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했던 어린 시절은 미련한 시절이라니.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서글프다. 나의 호흡과 길어지는 목과 찌릿찌릿한 허리와 뜨거워진 허벅지를 모른다는 것은 큰 손해다. 다리를 얼마나 뻗을 수 있고 발 끝이 하늘을 향할 때 유리 천장을 부수는 강렬한 느낌을 알고는 이전의 나로 있을 수 없다. 태어날 적 벌러덩 넘어져 발 끝을 차고 손을 휘두르던 시절부터 몸을 열렬히 표현했다. 태생부터 몸은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것. 질질 끌고다니길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두는 것이 있으면 시작하는 것도 있는 법. 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몸은 몸이라는 전체주의 안에 섬세한 개인이 모여있다.  손가락, 팔꿈치, 어깨, 가슴팍, 목, 머리, 정수리, 배와 배꼽과 골반, 엉덩이와 허벅지와 무릎, 오금과 종아리, 발바닥, 발등, 발가락. 표현하려는 모든 것을 이 섬세하고 삐걱이며 유연한 것들로 빚어 만든다. 막춤으로! 발레, 현대 무용, 힙합, 왁킹, 어반, 하우스, 라틴! 아무것이나 끌어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끌어다 쓴다. 한 문단에 소설, 수필, 시나리오 대본, 시, 자기개발서가 섞여있는 해괴한 글보다 낫다! 어떤 장르의 춤을 끌어다 추든 얼굴은 벌게지고 숨은 가빠지는 것을.




 


댄스동아리에 들고 6년, 춤을 출 때마다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자유롭게 춰. 넌 자유로워. 다 해도 돼. 애드립도, 표정도, 분노도, 기쁨도, 유혹도 모두 허락 돼. 다 해.'


나의 글도 그만큼 징그럽고 거침없고 사랑스럽고 해괴하면서도 매력있었으면. 나쁜 것 좋은 것 따지지말고. 돈만 쫓지 말고. 명성만 쫓지 말고. 자유롭고 싶어서 자유를 강요하다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지 말고 별 걸 다 써야지. 오만 걸 다 써야지. 쓰고 나서 춤추고 났을 때처럼 실 없이 웃는다면 성공한 거겠지?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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