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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12. 2020

매일이 마감이라 달린다

욕심쟁이의 달리기

매일이 마감이라 달린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루 열 시간을 자야하고 취업 준비를 위한 자기소개서도 써야하고 그림도 그려야한다. 책도 읽어야하고 영화도 봐야하며 음악도 들어야한다. 나라는 '자신만의 세계'로써는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쟁이라 그렇다.


욕심쟁이는 오늘도 달렸다.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고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니 7시 30분이었고, 이자카야에서 나오니 10시 30분이었다. 매일의 마감 타임라인은 11시 59분. 욕심쟁이는 영화 세 편이 날아가지 않도록, 또 소소한 행복을 채우기 위해 이자카야에 들렸다. 이자카야에 가보면 알 것이다. 주인장이 바쁘게 요리를 하고 술을 준비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긴 테이블을. <심야 식당>의 그것에서 일방적이고 지극한 그 테이블을 알 것이다.


앉자마자 <도망친 여자>,<남매의 여름밤>,<후쿠오카>에 대한 글을 적기 시작했다.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며 써댄다. 오로지 영화에 집중한 자료 조사라는 것은 영화의 이미지가 날아가기 전에 쓰는 것이 제일 생생하다. 무엇보다 당시 느낀 감정이 휘발되어버리면 허탈하다못해 비통하다. 난 열 시간 잠을 채우는 자신보다 그 당시 생생한 느낌을 메모해두지 않은 내게 게으르다고 소리친다. 게을렀어! 그렇게 게을러서 무엇을 더 배우겠다는거야!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푹 자야하고 밥도 잘 먹어야하며 건강해야한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멋있고 싶다. 멋있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고 싶다. 말수가 적으면서도 잘 추천하는 사람이고 싶다. 영화에 대한 나의 목소리를 듣고 한 사람이라도 그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어물쩡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떤 귄위의식과 특권주의에 물든 글보다 술을 한 잔 마시고 가감없이 써내는 글이 그러리라 믿는 것이다. 날카롭고 즐거운 글! 함께 푸하하 웃게 되는 글! 무엇이 그렇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소맥이 딱 좋다. 맥주 정도의 도수인 줄 알고 마셔서 붉게 오른 뺨에 차가운 바람이 닿았을 때의 기분이 짜릿한 것처럼. 날 것이지만 비리지 않고 생생하다.


달렸다. 술을 마시고, 매일이 마감이라. 매일을 마감으로 엉망진창의 글을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잘 포장해서 쓰자고 화이팅하며 달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하철에서 집까지 미친듯이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아 작가님은 그래도 쓰기 싫어하는 시간과 집중해서 쓰는 시간, 파워 글 마무리 시간을 나누신다는데. 이럴 때 사람마다 정말 다름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슬아 작가님은 존경하지만 쓰기 싫어하는 시간따위 정해두지 않는 나. 공부하기 전 책상을 주구장창 깨끗이 치우는 학생같은 나. 수기로 쓴 공책은 빽빽하지만 공개적인 블로그 글은 몇 번이고 타자 치기를 망설이는 나.


그래도 달려야지 별 수 있나. 매일이 마감인 욕심쟁이는 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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