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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14. 2020

고양이 밥 주는 이상한 누나


나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1화만 봤다. 손예진이 정말 예뻤고 정해인이 말끔하고 행복한 벨루가 같았다. 미간이 좁고 순하게 생긴 인간 벨루가. 정해인과 달리 손예진에게 왜 미사여구가 붙지 않냐면, 미사여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예쁘다. 제목에 찰떡이었다. 1화를 보고나니 충분히 배부른 느낌. 그러곤 나머지를 보지 않았다. 언젠가 배가 고플 때 허겁지겁 먹듯이 2화를 재생시킬지도. 웃을 때 예쁜 사람들을 보고 싶을 때. 허겁지겁.



밥을 잘 준다는 것은 어떤 걸까. 누군가 초라한 내 자취방에 놀러와 주린 배를 움켜쥔다면 어떤 밥을 줘야 잘 줬다고 소문이 날까. 소문날 필요는 없지만 입맛을 다시는 저 입을 만족시켜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음! 맛있다! 마트, 다녀오셨어요?라고 익살스러운 반응까지 나온다면 기분은 하늘을 뚫고 오존층을 찢을 정도로 날아갈 것이다. 특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이가 맛있게 먹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진 그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고양이들이다. 어떤 분은 습식은 먹지 않고 건식만 먹고 어떤 분은 참치는 먹지 않고 가다랑어만 먹는다. 나는 사람들 눈에는 단연 이상한 여자다. 특히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겐. 밤산책을 하고 있었더니 허리를 접어 거꾸로 보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하면 섬짓하지 않은가. 벤치 밑에 뭐가 있는 듯 걸터 앉아서. 아니면 골룸처럼 쪼그리고 앉아 뭐라뭐라 말하고 있는 나를 보면 어르신들은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하신다. 정작 내가 하는 말은 '오구오구, 맛있어? 맛있오오, 어이구, 맛있오!' 요런 것이다. 절대 친구들에겐 하지 않을 하이톤으로. 











유려한 앞발을 다소곳이 모은 분들도 있다. 그들은 앞에서 밥을 흔들어도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린다. 냄새를 맡느라 코는 바삐 움직인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도 다신다. 왜 다가오지 않으실까.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밥이 왔는데, 무엇이 그 분들의 털을 바짝 세우고 몸을 말도록 만들까.








밥을 잘 주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경계심이 강한 분을 만났을 때다. 접힌 귀, 동그랗게 뜬 눈, 바짝 앞으로 몰린 수염. 그런 분께는 절대 닭가슴살을 던지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조심 행동한다. '밥을 잘 주는 것'을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편하게 밥을 먹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정수. 












<남매의 여름밤>의 감독님은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밥 먹을 때 좀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밥 먹는 게 중요한 어떤 건데. 영화들에서 항상 중요한 얘기를 한다거나 누가 찾아와서 밥을 뒤엎는다거나 이럴 때 너무 이 사람들이 밥을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는 거예요. 이 영화는 무조건 밥을 먹을 때는 편안하게, 즐겁게 먹는 장면들로 만들어야 되겠다. 밥 먹는 장면들에서 긴장감 없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먹는 장면들로 연출했어요.

YTN 문화 2020년 9월 28일 기사 <식탁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다...영화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中









  먹고 사는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에게도, 그리고 고양이들에게도 그냥 먹고 사는 것이 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경계의 눈을 품고 편식을 하게 된 고양이 분들이 편하게 드러눕고 먹으면, 그것이 가장 '밥을 잘 주는 것'이지 않을까. '저 누나 고양이 만져! 병균 옮을 것 같애! 이상한 누나야!'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아이 아빠가 당황하며 사과를 한 적도 있었다. 난 그때 묘한 기분을 느꼈는데 속상하고 뿌듯한 감정이었다. 그만큼 고양이님들의 밥을 잘 주고 있었구나. 이 분들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다리에 비비면 손이 가버리는 것이 인지상정. 이 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 상을 받고 이상한 누나가 되었구나. 묘하다, 묘해.



이상한 누나면 어때. 밥 잘 주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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