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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Dec 08. 2020

입맛이 돈다

2020 마지막, 이슬아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입맛이 돈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다시 펼쳤다. 해(年)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올해의 마지막이라는 이벤트성으로 해를 마무리 했는데 아쉬운 이별 같은 해는 처음이었다. 올해가 너무 재밌었던거지. 알아보게 된 것이 많아진거지. 구름을, 꽃을, 고양이의 홀쪽한 배를 알아차리게 된 거지. 그리고 자아에서 멀어지는 즐거움도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혹은 '예전에 내가' 라는 말을 하길 그만두고 다른 이들의 '나는'과 '예전에 내가'를 들으면서 너무 재밌어진 것이다. 더 듣고 싶은데 벌써 2020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고 동지가 다가오고 있다. 나 혼자 두고 여행가지마, 엄마. 하는 아이처럼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으로 읽지 않은 책을 독파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견되고 급작스러운 재앙이 닥친 요즘처럼 계획은 무용지물이 될 때도 있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펼쳤다.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때 읽었던 책을. 시작의 책을.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시작의 3월에 <깨끗한 존경>과 함께 들고 온 책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는 이슬아 작가의 서평집이다. 서평집이면서 편지이다. 편지이면서 단편 소설이다. 서평집이면서 에세이이고, 자유로운 글이다. 지고의 자유와 사랑이란 이런 걸까.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담백할 수 있지. 무엇보다 지난 9개월의 시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말을 기억하고 다시 상처받는 나의 내면의 등을 살포시 쓰다듬는 손길 같은 책이다.



괜찮아, 괜찮아.


이 책들을 봐.


이 언어를 우리에게 보내는 사람들을 봐.


이들의 사랑을 봐.


괜찮아. 괜찮아.



   시작의 시기에 지표 혹은 표지판 같았던 책이 제목따라 가는 경험을 한다. 새로운 책처럼, 다시 태어난 것처럼. 시작의 시기, 책 속의 사랑이 낯설고도 새롭게 느껴졌다. 의기소침한 겨울에 읽으니 다시 한 번 더 해보자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어 가슴을 크게 오르내려보자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 않은 말에 대한 후회와 했던 말에 대한 후회를 확대하는 겨울에 읽으면 다시 사랑해보자고 다가오는구나. 무릎이든 바닥이든 짚고 한 번 더 일어나보자고 하는구나. 분명 잘했다고 괜찮다고 해줄 사람들이 있구나.



   염세적인 몇 주를 보낸 후 신뢰가 옅어지고 있었으나 다시 믿어보고 싶어졌다. 또 태어나고 싶어졌다.






*



   챕터 2에서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를 언급하는 부분을 몇 번이고 읽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아무것도 상관이 없다며 우주와 지구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태어난 아이와 그 엄마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태어나고 싶어하는 이야기다. 남에게 있는 아름다운 것을 저도 좋아하기로 하는 이야기. 질투를 넘어 나도! 하며 욕망하기로 하는 이야기. 그것이 태어남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읽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난 아이를 물었어. 그 애는 엄마에게 달려가 울었어.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달랬어.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난 아이를 총총 따라가봤어. 그 애 엄마가 깨끗이 씻겨주고 약을 발라주고 반창고를 붙여주었어. 그러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졌어. 그는 "반창고! 반창고!"하고 외쳤어. "엄마!"라고도 외쳤어.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태어났어.

-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26~27p






   입맛이 돈다. 태어남이란 첫 울음을 터트리는 신생아의 탄생이기도 하며 살아있음을 새로 감각하게 됐을 때이기도 하다. 겨울밤에 전기 장판으로 배를 덥히면서 따뜻한 몸을 느낀다. 어느새 자란 손톱을 깎으면서 느껴지는 손 끝의 가벼운 충격. 세포들도 열심히 분열하고 있고 시간은 버려지는 손톱처럼 몸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다른 신체가 떠올랐다. 거뭇한 다크서클 눈 밑. 말아들어간 입술. 술을 쥔 손. 무지개 사진을 찍는 검지. 빨개진 귀와 코를 떠올렸다. 어제라는 요람에서 다시 태어나는 신체를.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 이들을 떠올리며 부엌으로 갔다. 돌아온 입맛은 매운 것을 먹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연두 청양을 뿌린 카레밥을 한껏 입 속으로 넣는다. 샤인 머스캣을 꺼낸다. 상추를 씻고 가스 불을 켜 된장을 끓인다. 맛있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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