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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Dec 31. 2020

나를 쓰게 하는 이야기

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 1화

  

01.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월요일마다 은유 작가가 온다. 오디오 콘텐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가 크리스마스 이브 2월 24일에 선물처럼 시작되었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쓰기의 말들> 등 글쓰기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담긴 책을 여럿 펴냈다.

 저 두 줄을 마치 광고 카피라이터처럼 썼지만, 나는 정말 선물 같았다. 선물이긴 선물인데 2021년 하루 전에 발견한 선물이었다. 은유 작가는 이전부터 좋아했다. 그녀의 칼럼 중, '비밀글은 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글에 대한 회의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자기 혐오하며 글을 숨기고 싶으면서 블로그와 브런치와 같은 오픈된 곳에 글을 올렸으니까. 바람이 등을 가볍게 미는 기분 좋은 떠밀림같은 칼럼이었다.



*


 한달 글쓰기 프로젝트와 몇 번의 오프라인 독서 모임, 그리고 온라인 독서 모임과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알아갔다. 내 스타일은 정형화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무엇보다 글쓰기는 더더욱. 삶도 계획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데, 온갖 단어가 휘몰아치고 넓은 세상만큼이나 다양한 글이 나오고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 강요에 의한 압박(Pressure)이 아닌 해보라고 등에 손을 얹어 밀어올려주는(Push)가 좋았다. 이야기로 밀어 올려주는 다독임은 원룸방에서 잠을 못 이루는 한 명의 개인과 또 다른 개인에게 닿아 세상과 사회에 닿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에 대한 정체성을 쌓아왔다.

  이 시기를 거치며 알게 된 것은 이야기를 먼저 해주는 선생님은 이 시대에 희귀하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커녕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후 당신은 어떤가요라고 귀기울여주는 사람, 그것도 아무 편견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더 많아져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내어 놓으며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한 한다. 이야기를 듣고 조롱하고 힐난하고 이용하고 왜곡하지 않는, 안전한 환경. 이 환경은 '듣는 태도'가 기저에 깔려있다. 무척이나 어려운 환경이다. 세상은 닫혀가고 있었다. 이분화되어가고 나쁜 사람, 착한 사람의 서사가 천지를 지배하고 있다. 나를 힘들게 했으면 무조건 나쁜 사람, 나를 즐겁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서사 이외의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점[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는 닫혀가는 세상의 문을 잡아보는 손짓이다. 목소리로 우리에게 '온라인 글방 선생님'이 되어주는 손길이라 부르고 싶어졌다. 그의 마무리 멘트를 듣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화의 제목은 '나를 쓰게 하는 것들'. 그는 1화 말미에 말한다. 아이의 머리를 정갈히 빗어주는 것처럼.

"무엇이 나로 하여금 쓰게 하는가.
글쓰는 내 모습에 익숙해지는 것이 나를 쓰게 하고, 또 내 글을 읽어주고, 기다려주고, 좋아해주는 남이 나를 쓰게 하고. 마감과 원고료라는 외적 보상, 강제 장치가 저를 쓰게 한다, 라고 말했는데. 여러분도 어떤 상황에서 글쓰는 내가 가장 활성화가 되는가,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관찰해보시고 자기한테 맞는 상황을 설계하고 그 동력을 만들어보는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오늘부터 글을 한 편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 멘트를 들으면서 '네, 선생님' 했다. 그렇다. 선생님. 온택트 시대의 은혜로 매주마다 목소리로 와주시는 선생님. 라디오를 끝까지 '듣는 태도'로 만날 수 있었던 선생님. 이슬아 작가가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에서 느꼈다고 했듯이, 아이들이 글을 쓰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얼만큼은 내어 놓는 선생님의 존재가 선물처럼 왔다. 오디오로 매주 월요일마다 오신다. 안전한 공론장이길 기다리기보다 그의 떠밀림에 발걸음을 떼는 이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오신다.

  눈이 왔다. 한파가 시작되었다. 등과 귀에, 작고 따뜻한 떠밀림이 닿았다.





02.



만나고 나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들, 순간들, 사람들이 있다. 스크린 세계 속과 몸이 먹고 산책하는 세계 속에 있다.

스크린 세계 속에선 어딘의 연연과 이슬아 작가의 글, 유튜버 김사슴의 도담도담한 라이브가 그렇다. 어딘의 연연에서 메일함으로 글이 도착하면 마구마구 글이 쓰고 싶어진다. 사자 성어를 두 단어로 쪼개는 모세의 기적같은 글을 읽고 나면 막 달리기를 하고 온 것 같다. 펄떡이는 심장 같은 감각으로 그가 여행에 대해 말한다면 여행에 대해, 성에 대해 말한다면 성에 대해, 환경에 대해 말한다면 환경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그의 이야기에 감화되고 감응하여. 온기가 스며든 문장이 등을 토닥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모세의 기적같이 강력하고 온돌 바닥으로 달궈진 아랫목같은 글을 읽었잖은가.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손 끝의 힘이 온전히 타자에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손톱을 깎는다. 정갈히 갈아놓은 손톱을 가지고 글을 쓴다.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면 실패와 사랑과 세상의 복합성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학원에서 채점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던 경험 속의 죄책감과 미안함, 다시 아이들을 맡게 된다면 과연 호통 없이 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 진심이 담겼으나 전해지지 못했던 칭찬의 언어들이 실패의 언어로 각인되었던 것이나 애증하는 이들과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좌절, 그리고 용기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다. 하나하나의 스토리가 개인적이며 구체적이며 용기를 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용기를 내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글을 오래 또 자주 쓰는 것으로 근력을 키우고 싶어진다.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편지를 쓸 용기도 난다. '나'를 지울 수 있는 가장 큰 형식은 편지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그들의 몸짓과 표정과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이슬아 작가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여섯 통의 편지를 보냈다. 등기 우편으로. 잃어버릴까봐 불안하니까! 편지는 잘 도착했다.



*



스크린 속 세계를 나와 몸이 현존하는 세계로 가보자. 그곳에서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고통을 지나던 와중에 만나면 꼭 기록해지고 싶어진다. 사진과 글로.

기록에 대한 욕구가 살을, 사랑을, 재미를, 신중함을 붙이고 싶어질 만큼 팽창한다. 기록에 대한 욕구가 군더더기를, 증오를, 구구절절을, 자기 연민을 떼고 싶어질 만큼 단단해진다. 유튜버 김사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랑을 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새삼 피부로 느끼게 되고, 그에 대한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는다. 위로가 따뜻한 떠밀림으로 변화한다. 지인들에게 꿀밤을 먹이고 싶은 얄미운 심술로 납작해진 마음이 입장을 한 번 더 이해하고, 고민하고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대체로 게임보다는 책 혹은 영화로 이어져 그가 올리는 콘텐츠와도 결이 잘 맞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은 이야기였다.

새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외로움과 고독, 두려움과 불안과 상처가 일상적인 삶에 찾아오는 파랑새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온택트 시대의 친구와 구글 미트에서 만나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친구의 누워있는 모습이 거북이 같던 모습. 2020년 12월 31일, 친구와의 연말, 아니 소소하고 기쁘고 충만하고 행복했던 추억 정산. 눈이 많이 오던 29일에 만난 언니와의 강렬한 연결감까지. 또 다른 친구 덕분에 싼 값에 살 수 있었던 블루투스 키보드, 그의 운전면허 시험 도중 있었던 웃기고 안쓰러운 이야기까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나의 글로, 나의 공간으로 가져오는 것이 과연 기만과 오만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깊이 했다. 결론은,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잘 쓰는 것은 곧 기죽지 않고 씩씩한 것이며 신중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담긴 몸짓와 마음을 곡해하지 않고 납작하게 만들어 억누른다던가 갈라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고통을 부르짖는 이들을 멀찍이서 유추하는 것이 아닌 곁에서 들을 각오. 언제든 힘들면, 잠시 듣는 것을 멈추고 쉬어도 되니까. 사랑을 되찾을 희망을 가지고 반짝이는 눈을 맞출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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