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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Sep 18. 2020

어쨌거나 글을 씁니다

 주방 홈바 뒷편 구석,  안방의 좁게 마주 본 벽과 벽사이 화장대 의자. 그 곳이 나만의 쉼의 공간이다. 나는 종종 그곳에서 불을 꺼둔채 젤리푸딩을 퍼먹기도 하고, 드라마짤을 보기도 하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글을 끄적이기도 한다. 사실, 지금도 그곳이다.


 아이들과 생활한지 어언 8년여가 되어가니 이 공간에서야 비로소 혼자가 될수 있는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남편과 대학에서 만나 4년여를 연애하다가 남편이 취직해 자리잡으며 결혼을 하자고 했다. 당시의 나는 아직 하고픈게 많은데 너무 이르다 했으나, 당시 남편은 결혼에 적극적이었고 이 사실을 안 우리 부모님도 적극적이셨다.

 사실 나도 시기적으로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 남편에 대한 마음은 확고했기에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곧 첫아이가 생겼다. 첫직장에서 1년 남짓 일했던 때였는데 계약직이라 오가는 길에 까는 시간과 돈 대비 월급과 처우를 생각하니 직접 아이를 키우는게 더 낫겠다는 판단하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편도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기를 원했고.


 나도 나의 인생이 이런 방향으로 흐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중고생때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었고 꿈도 많았다. 초등학생때 꿈은 시인, 중학생때 꿈은 국어선생님, 고등학생때는 PD나 방송작가, 대학생때는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생각한 내 미래는 항상 커리어우먼이었다. 결혼은 서른살이 넘어서해서 아이는 딸로 하나쯤? 있는 그런 설정이었다.

 웃기는 인생이다. 지금의 나는 스물다섯에 결혼해 세명의 아들을 키우며 살림을 하고 있으니.   


 첫아이를 낳고는 이 아이를 키우는 게 내 삶의 이유요, 목표가 되었다.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에다가 육아가 이제 나의 일이라는 사명감이 더해져 정말 열심히였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보람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내가 꿈꿔온것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배워온 것들은?

 하는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가정에서 좋은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것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한쪽은 자아실현에 의한 성취감이 있지만, 새로이 도전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이 큰 일이었다.

 다른 한쪽은 보람있고 안정적인 일이었지만 자아실현이나 성취감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었다.

 그 끝없는 줄다리기 에, 나는 마침내

안정적인 편을 선택했다.


 그리고 기왕에 엄마로 살 거 남편의 꿈이었던 셋째를 갖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육아와 살림을 내 평생 할 일로 삼자면 셋도 가능하겠다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래서 계획 임신을 한건 아니고, 둘째를 키우며 그런 생각을 할즈음 셋째가 깜짝 선물처럼 우리에게 왔다.


  셋째의 등장은 내 삶에서 실로 놀라운 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 인생 최대의 고난의 서막이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나의 날것들이 많이 드러난 시기였다. 사람이 힘에 부치다보니 천성적인 온순함 같은 것도 다 깨부수어졌다.

 십대 때에도 바른 말을 구사하던 내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욕을 입에 담기 시작한 것도 이쯤부터였으니.

 그 시기를 겪고 나니 별로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쯤되면 눈치를 채주었으면 하는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글쓰기가 되겠다.

 나는 매일 내가 느낀 것들을 글로 써왔다.

 로는 일기로, 때로는 시로.

 꼭 특정한 무엇이 되어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나의 글이 나 자신에게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필요한 것이 되길 바래왔었다.


 그런 내가 둘째를 출산 한 후로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 당시의 나는 어리석게도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꿈으로 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다시 글을 쓸 수 있기 위해서 셋째가 필요했단 생각마저 든다. 그 전의 나는 겁쟁이였으니.

 이제 내가 두려울 게 뭐란 말인가. "아님말고" 정신을 이길게 뭐겠는가. 나는 이제 그냥 글을 쓴다. 싫어지면 관두면 그만이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 심플해지는 것.

 그걸 위해 난 그 8년을 겪었나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finally!
 난 지금 펜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홈바 뒤에 쪼그리고 앉아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난 그런 내가 썩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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