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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Jul 28. 2021

옷 입은게 궁녀같다니!!!!

전하, 말을 삼가십시오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지난번에 입은 롱스커트가 잘어울린다고 한게 생각나 이번에는 퍼지는 스타일의 남색 롱스커트를 꺼냈다. 그리곤 어울리는 상의를 찾으려 서랍장을 뒤지다 기장이 짧은 흰색 브이넥 티를 꺼냈다.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남편이 나를 위아래로 훝는다. 그리곤 입꼬리를 씰룩인다. 불길하다.

뭐냐고, 또 뭐 같냐고 물었다.


 남편은 전력이 화려하다. 내 카키색 반팔티를 보곤 군대 내복같다고, 내 보라 원피스를 보곤 마녀같다고, 하얀 루즈핏 원피스는 예수님같다고 잘도 닮은 걸 찾아내곤 했다.


 난 주로 인자하게 웃어 넘겼지만, 오늘은 마녀가 되어 남편을 추궁했다. 남편은 얼버무리려다 대답하고 말았다.

 "ㄱ...궁녀!"

 궁녀라고? 순간 안면근육들이 오류를 일으켰다.  

 열받는 건 무슨 느낌인지 나도 알겠다는 것이었다. 하얀색 브이넥 크롭티는 저고리, 남색 퍼지는 롱치마는 한복치마. 색 조합도 그럴듯 하고. 확실히 아씨 한복은 아니고, 중전도 아니고, 그래, 궁녀네.


그런데 왜 내가 남편한테 궁녀라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하지? 다른 남자들은 나를 무수리로 보든 향단이로 보든 상관없지만,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해석이 너무 간거겠지만, 빈정이 팍 상했다.


 안다. 이 인간과 살아온 날으로 미루어 보아, 또 그의 맑고 투명한 뇌의 생각이 깔대기 없이 입으로 내려 온 결과라는 거.

 남이 느낄 감정을 놓친 건 개그욕심이 앞서서 일거다. 또 내가 빵터질 줄 알았겠지.

 그래도 궁녀는 아니야. 그냥 한복정도로 순화했어야지. 기분 나쁘다고 정색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누가 궁녀차림으로 산책 나가고 싶겠는가.


 남편도 고집이 있어서 뭐 그런걸로 정색하냐는 식의 일말의 화해용 멘트없이 둘다 냉기가 흐르는 채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분이 이지 않아, 내가 속한 카페에 남편에게 망언 들은 썰을 풀었다. 그랬더니 실시간으로 댓글이 마구 달렸다. 50개가 넘는 댓글에 생생한 간증들이 넘쳐났다.


 카키색옷은 종류에 상관없이  뭇 남성들의 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게 분명하다.

 어그부츠는 영의정 신발, 초록원피스는 피오나, 베이지색 루즈핏 원피스는 쌀자루, 챙넓은 모자는 허수아비, 꽃무니 원피스는 할머니, 갈색 퍼 조끼는 곰, 호보백은 망태기 등등.


 보다보니 웃긴다. 다른집 남자들도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싶어 위안도 되고.

 같은 경험한 사람들과 공감하며 피식거리다 보니 화가 절로 풀렸다.

 남편한테 톡을 보냈다. 말하래놓고 정색해서 미안하다고. 남편도 톡을 보냈다. 말실수해서 미안하다고.


 더 심한 말을 듣고도 (스티븐시걸이나 원숭이 같은) 쿨하게 넘기는 뭇 아내들을 보고 오늘도 한수 배운다. 나도 누가 뭐라던 쿨해져야지. 

 그리고 나도 나중에 기회가 오면 꼭 "내시"같다고 말해 줘야지 다짐해본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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