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엄지라는 아이가 살았답니다. 엄지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알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크기가 엄지손가락만큼 작았죠. 꼭 그것 때문에 이름이 엄지인 건 아니에요. 최고가 되라는 의미도 있답니다. "최고!"라고 말할 때 엄지를 내밀잖아요.
아빠는 엄지를 '엄지 장군'이라 불렀어요. 비록 작지만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랬거든요. 아빠는 직접 나무를 깎아 철봉과 골대를 만들어 엄지 방을 꾸며 주었어요.
하지만 엄지는 운동보단 엄마를 따라다니길 좋아했어요. 특히, 엄마와 함께 식탁 위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죠. 그날도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에서 나온단다."
그날따라 엄지는 궁금했어요.
"그럼 좋은 재료는 어디서 나오는데요?"
"그건 자연에서 나오지!"
엄마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창밖으로 햇살이 온 세상을 반짝반짝 비추고 있었어요. 너무나 아름다웠죠. 엄지는 말했어요.
"엄마, 저도 집을 떠나 바깥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
사실 그때까지 엄지는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어요. 엄마 눈엔 늘 작은 엄지였지만 엄지는 처음 태어났을 때 보다 엄지손가락 두 마디만큼이나 더 자라 있었지요. 엄지의 부모님은 엄지가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다음 날 아침 엄지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났어요.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검고 긴 행렬이 보였어요. 개미 무리였어요. 이른 아침부터 검은 옷을 입고 매우 분주히 이동하고 있었죠.
"너희들은 어딜 가는 거니?"
"우리는 지금 일하러 가. 너도 우리 무리에 들어올래? 일자리를 하나 줄게. 열심히 일하면 먹을 걸 구할 수 없는 겨울에도 안심할 수 있어."
엄지는 개미 무리에서 일하기로 했어요. 개미가 엄지의 머리에 페로몬을 묻혀 주자 다른 개미들도 엄지를 일개미로 여겼어요.
개미들은 모든 일을 나누어서 했어요. 그래서 한 가지 일만 하면 됐죠. 개미성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여왕개미는 계속해서 알을 낳았고 유모 개미는 계속해서 아기들을 돌봤죠. 그리고 일개미들은 먹이를 찾아 창고로 옮기는 일을 했어요. 엄지도 그랬답니다.
엄지가 개미성에서 일꾼으로 일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엄지는 너무 지쳤어요. 열심히 일해 미래를 준비한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개미의 일은 엄지와 맞지 않았어요.
엄지는 함께 일하던 동료 개미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났어요.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엄지는 바위틈 그늘에서 잠시 쉬기로 했어요. 그때, 엄지의 머리 위에서 붕붕 소리가 들렸어요. 위를 보니 노랑, 검정의 얼룩덜룩한 옷을 입은 한 무리가 긴장된 얼굴로 서성이고 있었어요. 꿀벌들이었죠. 엄지가 물었어요.
"너희들 무슨 일 있니?"
날고 있던 벌 한 마리가 엄지를 발견하고 내려왔어요.
"우린 내일 아침에 말벌 군이 습격한다는 소식을 입수했어. 지금 막 성에 전달하러 가는 중이야."
그때 다른 꿀벌들이 엄지 곁으로 내려왔어요.
"왠 녀석이야? 이 녀석 덩치도 크고, 힘 꽤나 쓰게 생겼는데 여왕님께 데려가자."
"아, 아니. 난 싸움 같은 건 못하는데!"
뒤따라온 꿀벌들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엄지를 데려갔어요.
꿀벌 성에 모여있던 백성들이 엄지를 보고 웅성 거렸어요. 여왕은 백성들을 조용히 시켰어요. 엄지를 데려온 벌은 여왕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어요.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더니 엄지를 찬찬히 살폈어요.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어요.
"엄지군, 우리 군사들의 무례함을 용서하세요. 하지만 이렇게 엄지 군을 보니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군요. 내일 싸움의 선봉에 서 주실 수 있을까요?"
"여왕님, 저도 돕고 싶지만 저는 싸움을 해본 적이 없는 걸요."
"그거라면 걱정 말아요. 우리 꿀벌들은 비록 작지만 충성스럽고 용맹해요. 그리고 말벌에 비해 수도 훨씬 많아요. 싸움은 우리에게 맡겨요. 엄지 군이 해줄 일은 전쟁이 시작되면 제일 앞서 나가 말벌들의 사기를 꺾는 거예요. 엄지 군은 말벌보다도 큰 데다 외모도 벌들과는 다르니 효과가 있을 거예요. 우리 꿀벌 군사들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격할 겁니다."
엄지는 꿀벌 여왕의 전략을 듣자 용기가 생겼어요. 엄지는 꿀벌들을 돕기로 했답니다. 여왕은 엄지에게 전투복과 무기를 하사했어요.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최상급 거미줄로 엮은 날개옷과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로 만든 창이었답니다.
다음날 아침, 꿀벌 성 밖에서 웅웅 거리는 말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엄지는 지체하지 않고 힘껏 날아올랐어요.
거미줄 날개를 달고 가시 창을 든 엄지의 모습은 정말 늠름했어요. 그 뒤로 꿀벌 군대 가 뒤따르며 크게 외쳤어요.
"엄지 장군 만세! 엄지 장군 만세!"
그 모습을 본 말벌들은 깜짝 놀랐어요.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벌이 꿀벌 군대 앞에 버티고 서 있었거든요. 물론 그건 엄지였어요.
말벌들이 놀라 흩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꿀벌 군대 가 공격했고, 결국 꿀벌 군대 가 승리를 차지했어요.
그날 저녁, 꿀벌 성에서 성대한 잔치가 열렸어요. 여왕은 창고의 꿀을 모조리 꺼내오게 시켰답니다. 모두들 신나게 먹고 마셨어요.
여왕은 엄지의 공을 높이 사, 명예 장군직을 주었어요. 그리고 계속 꿀벌 성에 머무를 것을 부탁했어요.
하지만 엄지는 정중히 거절했어요. 나라를 지키는 것은 멋진 일이었지만, 엄지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답니다.
다음 날, 엄지는 전우들의 환송을 받으며 다시 길을 떠났어요.
하루를 꼬박 걸은 엄지는 참나무 숲에 도착했어요. 오늘 밤은 흙 밖으로 뻩어나온 참나무 뿌리 사이에서 보내기로 했죠.
엄지가 몸에 꼭 맞는 참나무 이파리를 이불 삼아 누우려 할 때였어요. 마른하늘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더니 갑자기 비가 마구 쏟아졌어요. 이내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고 뒤에 있던 커다란 참나무 하나가 엄지 앞으로 쓰러졌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람쥐 가족이 헐레벌떡 뛰쳐나왔어요. 아빠, 엄마 그리고 삼 남매였어요.
"어머나, 세상에! 우리 집이 무너졌어!"
"엄마, 어떡해요! 엉엉."
한순간에 집을 잃은 다람쥐들은 어쩔 줄 몰라했죠.
"잠시만요, 제가 오는 길에 본 나무 구멍이 있어요!"
엄지는 얼른 일어나 빈 나무 구멍으로 다람쥐 가족을 데려갔어요. 다람쥐들은 비에 홀딱 젖어 오들오들 떨었어요.
구멍 밖으로 내리는 비를 가만히 보던 엄지가 엄마의 수프를 떠올렸어요. 비 오는 날이면 엄마가 늘 해 주시던 음식이었죠.
엄지는 구멍 한쪽에 불을 피우고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어요. 이내 따스한 공기와 고소한 수프 냄새가 나무 구멍을 가득 채웠어요.
어느새 아기 다람쥐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잊은 듯, 재잘대며 장난치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보는 아빠, 엄마 다람쥐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어요.
수프가 완성되고, 모두 둘러앉아 따뜻하게 배를 채웠어요.
아빠 다람쥐가 말했어요.
"엄지군, 정말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엄마 다람쥐도 말했어요.
"아까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엄지 군의 보살핌 덕분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어요. 고마워요."
아기 다람쥐들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말했어요.
"진짜 진짜 맛있어. 엄지 최고야!"
그 순간, 엄지는 깨달았어요. 자신은 이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요. 마침내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을 찾아낸 거예요.
사실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엄지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