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심플 Aug 13. 2021

미운 아기 백조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었어요. 시골 마을의 호숫가에 백조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어요.   백조의 알은 모두 세 개였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깨어난 첫째는 다른 아기 백조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유독 작고, 노란빛을 뗬죠.

 새로 깨어난 아기 백조들을 보러 다른 백조들이 다가왔어요. 그중 가장 나이 든 백조가 말했어요.
  "얘들아, 이 호수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태어난 걸 감사하렴. 그중에서도 너희 가족은 순수혈통의 명문가야. 언제나 명심하렴. 기품 있고 우아하게 행동해야 해."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백조도 한마디 했어요.
  "도련님들! 어디 볼까? 다들 아름답구나. 어머,  그런데 저 아이는 몸집이 너무 작은데. 막내인가요?"
 엄마가 대답했어요.
  "아니에요. 이 아이가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왔답니다. 조금 작긴 해도 정말 귀엽잖아요."
 그러자 모여든 백조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어요.
  "세상에. 작은 것뿐만이 아니야. 빛깔이 노란데? 하필이면 장남이 저 모양이라니. 안됐어."
 그러나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어요.

 며칠 뒤 엄마는 아이들을 물가로 데려갔어요.   그리곤 엉덩이를 쪼아 한 마리씩 물에 들여보냈죠.  초봄의 물은 아직 조금 찼지만, 전부 물에 곧잘 떴어요.
 엄마는 아이들이 헤엄에 익숙해지자 물고기 사냥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얘들아, 긴 목을 이용해서 물아래로 고개를 넣어 봐. 꽁지까진 넣지 말고."
 하지만 첫째는 동생들만큼 목이 길지 않았어요. 대신 물속으로 온몸을 쏙 밀어 넣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죠. 물고기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물고기만큼은 가장 잘 잡았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이웃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어머나, 꽁지까지 물에 넣어 잠수를 하다니.   저렇게 품위 없는 백조는 처음 봐. 그 아이는 당신 집안의 오점이 될 거예요."
 엄마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꾸했어요.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요. 이 아이는 이 집안의 무엇도 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이 아이가 그저 자기 자신이 되길 바라요. 그럼 이만."
 엄마 백조는 말을 끝내자 아이들을 데리고 물가로 이동했어요. 그리곤 첫째 백조의 눈을 보며 말했어요.
  "얘야, 보통의 백조와 다르게 생겼다고 무시하는 말들엔 전혀 귀 기울일 필요 없단다. 너는 존재 자체로 귀하고 소중한 아이야. 알겠니?"
 첫째는 다른 새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에 속이 상했지만,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기에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런데 헤엄 연습과 사냥 연습이 끝난 후가 문제였어요. 그다음은 비행 연습이었거든요.  아무리 엄마를 따라 날개를 퍼득여도 첫째의 몸은 공중으로 뜨지를 못했어요.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시 한번 해보자. 날개를 높이 들고 힘차게 흔들어! 다시! 오, 저런!"
 첫째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어요. 지나가던 또래 백조들이 웃음을 터트렸어요. 또래의 어미들은 짐짓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어요.
  "세상에, 아직도 나는 법을 못 익히다니! 계절이 바뀌면 먼길을 이동해야 할 텐데. 저 아이가 함께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어미 백조가 아이들을 데리고 뒤돌아 가려는데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 아이를 봐. 저렇게 다르잖아. 순수혈통이라더니 다 거짓말인 거야! 저리 감싸고도는 걸 보니 어미가 출신을 속인 거겠지."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안 좋은 이야기란 건 알 수 있었어요. 늘 평온했던 엄마 백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거든요.
 그날 밤, 첫째 백조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엄마의 눈물을 보았어요.
 첫째는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자신 때문에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게다가 이동해야 하는 계절이 오면 엄마가 자신만 홀로 두고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첫째는 알고 있었답니다. 자신 때문에 온 가족이 곤란해지는 건 정말이지 싫었어요.

 어스름한 새벽녘, 첫째는 백조 무리를 떠났어요. 호수의 한가운데쯤 왔을 때, 기러기 무리를 만났어요.
  "새벽부터 혼자 어딜 가니?"
  "난 이제 무리가 없거든. 어디든 떠나보려고."
  "그래? 너같이 생긴 새들은 다 호수 동쪽에서 살던데."
  "뭐? 나처럼 생긴 새들이 있다고?"
 첫째는 놀라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너무나 궁금한 마음에 호수 동쪽으로 헤엄쳐 갔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정말 첫째와 똑 닮은 새들이 가득한 게 아니겠어요? 모두가 같은 색이었고, 같은 소리를 냈어요.

 첫째를 본 새 한 마리가 다가왔어요.
  "못 보던 얼굴인데? 넌 어디서 왔니?"
 첫째는 그 새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아, 안녕. 난 호수 서쪽에서 온 백조야."
  "하하하. 무슨 소리야. 네가 백조라니. 넌 우리랑 똑같은 오리잖아!"
  "오, 오리라고?"
  "그래, 오리! 너 날 수 있어?"
  "아니, 연습해 보긴 했는데 잘 안됐어."
  "오리니까 그렇지! 오리는 못 날아. 대신 잠수는 끝내주게 하잖아!"
  '아! 내가 오리였던 거구나!'
 첫째 백조, 아니 오리는 이제 자신이 왜 달랐는지, 알게 되었어요.  
 첫째는 매일 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낮엔 헤엄치고 밤엔 오리 무리 틈에서 쉬었죠. 너무 행복했어요.

 어느 날 첫째가 자려는데, 오리 두 마리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 호수는 우리 오리들의 터전인데 언제부턴가 백조 같은 철새들이 찾아와 제 집인 양 누비고 있어. 기다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기들이 마치 뭐라도 되는 것처럼 고상 떠는 모습이 아주 같잖아."
  "맞아. 처음엔 서쪽에서만 지내더니, 얼마 전에 백조 세 마리가 동쪽까지 넘어온 걸 봤어. 염탐하러 온 게 분명해."
 첫째는 듣고 있기가 힘들었어요.
  "저기, 미안하지만, 백조들은 나쁘지 않아. 이 호수는 많은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잖아. 사이좋게 나눠 쓰면 돼. 함께 살기에 충분한 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리 두 마리가 첫째를 노려보았어요. 그중 하나가 말했어요.
  "백조 무리에서 왔다더니 진짜였군. 겉모습만 오리지, 속은 백조야."
 다른 오리도 거들었어요.
  "제대로 된 오리 소리도 못 내는 데다 백조처럼 목을 빳빳이 세우는 꼴이라니. 혹시 지난번에 온 백조들처럼 너도 염탐꾼 아니야?"
 그들은 동시에 부리로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첫째는 괴롭힘에 못 이겨 오리 무리 밖으로 도망치고 말았어요.
 친구와 작별인사 조차 나누지 못한 채 다시 홀로 호수를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죠.

 첫째는 동쪽 호수와 서쪽 호수의 경계에 머무르며 물고기 사냥을 했어요. 밤이면 물 위의 조그만 갈대 섬에서 홀로 잠들었어요.
 어느 날 밤, 홀로 잠들려는 첫째의 귀에 낯익은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와 동생들 소리였어요. 첫째는 재빨리 헤엄쳤어요. 그곳엔 정말 가족들이 있었어요.
  "형!"
  "세상에, 첫째야!"
 엄마는 첫째를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버려두고 간 그물에 동생들의 발이 걸려 꼼짝 못 하고 있었거든요. 동생들이 벗어나려 날갯짓을 하면 할수록 그물이 더욱 엉킬 뿐이었요.
 첫째가 말했어요.
  "얘들아, 잠깐만 멈춰. 내가 물아래로 내려가서 풀어볼게."
 첫째는 잠수를 해서 물밑으로 들어가 엉킨 그물들을 부리로 풀어냈어요. 밖으로 나와 숨 쉬고 다시 들어가기를 몇 번, 드디어 동생들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제야 가족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울었어요.
  "첫째야!  도대체 어디 있었니. 너를 찾으러 온 호수를 뒤졌단다."
  "제가 달라서 엄마랑 동생들이 곤란해지는 것 같아 떠났어요. 죄송해요."
  "형! 형이 우리랑 같았다면 오늘 우릴 구해 줄 수도 없었을 거야! 우린 형이 자랑스러워!"
  "단 한 번도 너를 우리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단다."
 첫째는 다시 가족과 함께 서쪽 호수에서 생활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친구 오리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무거웠어요.

 어느덧 가을이 되었어요. 백조들은 저마다 이동할 준비를 하기 바빴죠.
 첫째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저는 날 수 없어요. 하지만 겨울을 이곳에서 날 수 있을 만큼 강해요. 그리고 동쪽 호수에 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를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건강히 지내시다가 내년에 다시 이곳으로 와서 만나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첫째를 꼭 안아주었어요.
  "그래. 너도 네 짝을 찾아야지. 내년에 건강하게 다시 보자꾸나."
 첫째는 엄마와 동생들을 배웅하고 동쪽 호수로 헤엄쳐 갔어요.
 동쪽 호수에 채 닿기도 전에 멀리서 오리 한 마리가 헤엄쳐왔어요. 첫째가 사랑한 친구였어요.
  "매일 아침 여기에 나와서 널 기다렸어! 널 괴롭힌 녀석들은 신경 쓰지 마. 우리 가족들은 다 네 편이야. 나랑 결혼해 주겠니?"
 첫째는 감격해 날개를 펼쳐 친구를 꼭 안아 주었어요.
 둘은 이듬해 봄, 돌아온 백조 가족과 오리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어요. 오리와 백조들은 직접 만나서 함께하며 서로가 다르지만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두 무리는 서로 왕래하며 사이좋게 지냈어요.

 또 한 번 계절이 지나고 오리 부부 사이에서 귀여운 아가들이 태어났어요. 하나같이 사랑스러웠죠. 첫째는 엄마가 했던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어요.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죠.
 평화로운 호수에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매일 봤던 광경이지만, 오늘은 달리 보였어요. 이 모든 아름다운 세상이 자신을 위해 준비된 선물 같이 느껴졌어요.
 그동안 첫째는 자신이 백조도 오리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해 왔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백조이자 오리이기도 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삶은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었어요. 첫째는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엄지 장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