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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선 썬 May 11. 2022

메리다는 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을까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1)

 2019년 6월에 개봉한 <토이스토리 4>는 개봉 전부터 ‘페미 논란’에 휩싸였다. 캐릭터 중 하나인 ‘보핍’이 이전 작에서 입고 있던 원피스를 벗어 던지고 바지를 입고 나온다는 이유였다. 몇 달 후 개봉한 <겨울왕국 2>에서도 주인공인 ‘엘사’가 원피스가 아니라 레깅스를 입은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같은 논란이 일었다. 이른바 ‘작품에 PC가 묻었다’는 주장. 여기서 ‘PC’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한다. 말 그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을 지향하는 행동과 그러한 운동을 이르는 말로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편견이 담긴 표현을 쓰지 않는 것 등으로 실천한다. 

 몇 십 년 전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하는 히어로 영화에서도 PC 요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파이더맨> 속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가 더 이상 백인이 아니고, <어벤져스>를 이끌어 지구를 구하는 ‘캡틴 마블’은 여성이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실사 영화화한다고 발표했을 때, 인어공주 역에 할리 베일리가 선정되자 일부에서는 ‘흑인이 어떻게 인어공주 역할을 맡을 수 있냐’고 반발했다. 디즈니는 인어도 존재하는데 흑인 인어공주가 존재하면 안 될 이유가 뭐가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잘못된 것은 우리의 편견과 차별, 배제, 혐오임을 다양한 문화 콘텐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PC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을 보며 그 시작, 분기점을 찾으면 2012년 개봉한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나온다. 영어 원제는 용기라는 뜻의 ‘Brave’다. 이른바 ‘디즈니 프린세스’ 영화 중 처음으로 공주가 ‘왕자는 필요하지 않아(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공주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

 던브로 왕국의 공주 메리다는 어릴 때부터 말타기를 좋아했고 활쏘기에 관심이 많았다. 10살 생일 선물로 아빠 퍼거스 왕은 딸에게 활을 선물한다. 엄마인 엘리노어 왕비는 메리다가 ‘여자애lady’인데 활을 쏘게 만들었다고 왕을 나무란다. 악동인 메리다의 남동생 셋은 식사 시간에 뛰어다니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어도 용서받는다. 하지만 메리다는 그 어떤 작은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엘리노어 왕비는 메리다를 24시간 따라다니며 ‘공주수업’을 한다. 공주로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으며 기대를 떠안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왕비가 될 것이기 때문에 메리다는 예술을 잘 알아야 하고 깔깔대고 웃지 않아야 하고 인내심이 깊어야 하고, 숨이 찰 정도로 많은데 하여튼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 타고 다니며 활쏘기는 해선 안 되고. 메리다는 자신이 공주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여 운명을 자기 스스로 바꾸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말한다. “공주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 “이게 다 너를 사랑해서 하는 거야.”

“공주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

 자신의 뜻대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중에 결혼마저 메리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웃 왕국과의 동맹 강화 차원에서 진행된다. 법에 따라 각 왕국의 첫째가 신랑 후보로 경연에 참가하며 공주가 정한 종목으로 겨루어 우승한 이가 메리다와 결혼한다. 메리다는 활쏘기를 경연 종목으로 정한다.

 드디어 경연의 날, 세 왕국의 첫째 왕자들이 한 명씩 활을 쏜다. 셋 중 한 명이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쐈고 이로써 메리다의 신랑이 정해졌나 싶을 때, 메리다가 자신의 활을 들고 경연장으로 내려온다. 자신도 한 왕족의 첫째이기에 이 경연에 참여할 수 있다며 붉은 곱슬머리를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고서, 숨도 쉬기 힘들 만큼 꽉 끼는 드레스를 찢으며 세 개의 과녁판 모두 정중앙에 화살을 쏘아 ‘텐 텐 텐’을 성공시킨다. 메리다는 자신의 결혼 상대는 스스로 정하겠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말리는 엄마에게 “난 엄마처럼 되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며 자신을 옥죄는 엄마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그 길로 말을 타고 숲으로 향한다.

“난 엄마처럼 되진 않을 거야.”


엄마미안해다 내 잘못이야 

 메리다는 신비로운 도깨비불을 따라가다 마녀의 집에 들어서게 되었고 엄마와 자신의 운명을 바꿀 마법을 주문한다. 마녀는 운명을 바꾸는 마법이 담긴 케이크를 만들어준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성으로 돌아온 메리다는 엄마를 찾아가 화해의 선물이라며 마법 케이크를 내민다. 엘리노어 왕비는 메리다의 마음에 고마워하며 케이크를 한 입 먹는데, 아뿔싸. 엄마가 어마어마한 큰 덩치의 곰으로 변해버린다. 이때까지도 메리다는 몰랐다. 메리다가 떠난 후 엄마는 메리다를 위해 결혼 결정을 무르겠다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성 안에 곰이 침입한 것으로 착각한 아빠 퍼거스 왕은 물론 성에 있는 모든 이들이 칼과 화살을 들고 메리다와 왕비를 좇아오자 둘은 숲으로 도망친다. 메리다는 다시 마녀를 찾아가지만 “두 번째 해가 뜨기 전에 사람이 되지 못하면 영원이 곰으로 남는다.”는 경고와 함께 “운명을 바꾸려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찢어진 조각들을 연결하라.”는 말만 듣는다.      

 곰으로 변한 엘리노어 왕비는 자신의 새로운 몸에 영 적응하지 못한다. 딸의 도움으로 숲길을 찾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낚시하고 먹는 방법을 익힌다. 자신은 해본 적 없는 일을 잘 해내는 딸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왕국과 동맹을 걱정하고 왕국을 통치하겠다는 결심과 왕국의 미래를 말하는 메리다를 보며 ‘진정한 공주’로서의 딸의 모습에 감동받는다. 

 엘리노어 왕비와 메리다는 서로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엄마도 왕비가 되기 전에, 엄마가 되기 전에는 한 왕국의 공주였으니까. 왕비로서 엄마로서 힘들고 어려운 점을 참고 견뎌 왔기에 자신의 딸은 자신처럼 힘들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라는 것을. 

 메리다는 성으로 돌아와 모든 이들 앞에 전통을 깨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앞으로는 이제와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말한다. 왕은 “엄마 딸 아니랄까봐.”라며 메리다의 고집을 존중한다.      

 메리다는 곰으로 변한 엄마를 되돌릴 방안으로 ‘찢어진 조각을 연결하라’는 마녀의 말을 떠올리며 엄마가 만든 태피스트리를 찾는다. 엄마와 싸우다가 홧김에 칼로 찢어버린 바로 그 태피스트리. 메리다는 자신의 방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꿰매어 찢어진 부분을 연결하여 엄마에게 덮어주지만 엄마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왜 안 바뀌는 거지?” 하며 엄마가 영영 곰이 될까봐 걱정하며 메리다는 울면서 말한다. “엄마,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그때 태피스트리가 떠오르는 해를 받으며 반짝이고 엄마는 인간의 모습을 되찾는다.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

 공주가 왕자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여자도 뭐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는 것을 잘 보여준 <메리다와 마법의 숲>. 그런데 왜 메리다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을까. 메리다가 엄마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마법이 풀렸던 것일까. 영화를 몇 번 봐도 의문이다. 그런데 나도 종종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엄마가 집안의 일로 속상해 하면 괜히 내가 미안했고 곁에 없어서 엄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나 역시 뭐가 그렇게 엄마에게 미안할까. 엄마가 답답한 적도 제법 많다. 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지, 왜 엄마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내가 독립할 때 마지막 짐까지 가져간 후 엄마가 오열했다고 아빠에게 들었다. 몇 해 전 동생이 타지에서 일하게 되어 독립하게 되었을 때는 울지 않았던 엄마가 왜 그랬을까. 버스 타고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에, 1~2주 간격으로 주말마다 본가에 가고 있는데 엄마는 무엇이 서러워서 울었을까. 그것이 한국 사회 중년 여성이 흔히 느끼는 ‘빈둥지증후군’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두 딸을 키우고 아빠 일을 돕고 집안을 꾸려가는 것이 엄마의 일이었고 인생이었다. 딸들 모두 집을 떠나니 엄마는 자신의 인생에서 목적이 사라진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페미니즘을 접할수록 엄마의 삶, 한 여성의 삶이 안타까웠다. 중학생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집안을 먹여 살렸고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시부모님을 다 모셨다. IMF 여파로 아빠의 사업이 망한 후 식당이며 공장이며 가리지 않고 일하는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고생한 탓에 손목과 어깨 목 허리 몸에 성한 곳이 없다. 치료도 제때 받지 못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해도 MRI 촬영비, 약값이 많이 나올까봐 걱정되어 병원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라는 개인의 역사를 보며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가 여성을 얼마나 혹독하게 피해자로 만드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한 삶을 살아온 데에 자긍심을 가졌다. ‘사실 엄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야’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엄마의 지금까지의 삶이 부정당하고 무너져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엄마와 페미니즘을 해보기로. 엄마의 인생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재구성해보기로. 엄마를 이해하려면 엄마의 시대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딸이 그것도 엄마와 똑같은 ‘K-장녀’가 페미니즘이라는 바늘로 엄마 인생의 조각들을 꿰매보려고 한다. 엄마의 인생을 변화시킬 마법의 조각보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서.

 엄마는 때때로 ‘딸들은 엄마처럼은 살지 말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가 내게 어릴 때부터 한 말이 있다.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해.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네 말을 들어주지 않아.” 그래서 우리 집 홍 여사, 홍경애 씨의 큰딸은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크게 목소리를 내어보려 한다. 

홍 여사와 두 딸들(촬영_김봉진)


* 이 글은 『함께가는 예술인』 128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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