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 업무로 인해 "모든 일에 상당히 부정적인 편"이다.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에 익숙해져서이기도 하다. 휴직 전까지도 "이보다 더 안 좋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밖으로 표출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최대한 "티"를 내진 않았다.
여하튼 "부정적인 편"이라는 것이, 내 생활 전반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휴직 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 낯선 땅에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아들은 항상 나에게 "아빠는 왜 그렇게 말해?", "하지마, 불편해!"라는 말을 한다. 습관처럼 부정적인 말을 하다 보니 아들도 꽤나 불편했나 보다.
며칠 전, 아들과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똥꾸멍(아들 애칭), 넌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 어땠어?
좋았어? 안 좋았어?
라고 물었는데,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좋았어? 안 좋았어? 가 뭐야!, 즐거운 날과 더 즐거운 날만 있지!
나는 이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정과 긍정으로 물어보는 질문에 긍정과 초긍정만 존재할 뿐 부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즐거운 날과 더 즐거운 날에 대해 물어보았다.
즐거운 날과 더 즐거운 날의 차이는
내가 기다리는 날이 더 즐거운 날(예: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이고
나머진 즐거운 날이야
라고 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잠시나마 초라했고, 아들이 더 어른 같았다. 이 대화를 저녁에 아내에게 이야기했을 때, "너만 몰랐어, 너만 그렇게 부정적이야, 똥구멍도 아는 거야.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개과천선 좀 하자"라고 한 소릴 들었다.
언어도 습관인데,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일 것이라고는 아들과 대화하기 전까지 인지조차 못했다. 게다가 영국에서도 나는 "I don't like it"과 같은 말을 종종 쓰는데 아들은 이 말조차도 "I don't enjoy it"이라고 하니 나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쉽게 바뀌기 힘들 상이 었나 보다.
그래도 이제나마 이 사실을 깨닫게(?) 돼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