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림잡아 초등학교부터라고 생각했을 때 나의 영어학습 기간은 무려 30여 년이다. 3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한국인이 그렇듯 영어란 나에게 크나큰 짐이자 숙제이다. 유튜브엔 수많은 영어 학습 채널들이 있다. “영어 이것만 알면 원어민같이 말할 수 있다”, “기적의 100 문장 반복 쉐도잉”, “틀어놓기만 하면 입에서 줄줄 영어가 나와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알고리즘에 이끌려 계속 이곳저곳 유튜브 채널들을 헤매고 있지만 아직 영어로 가는 지름길은 찾지 못한 듯하다. 아니, 아예 그런 게 없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은, 영어회화 나처럼만 하면 이만큼 할 수 있다!라는 기적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영어회화 방랑기이다.
잠시 외고의 꿈을 꾸던 중학생 시절, 외고준비반이 있는 한 영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성문기초영문법>을 기본으로 영어를 가르치던 곳이었는데, 한 달 만에 난 그 학원을 뛰쳐나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영어를 싫어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도 문과, 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이과에 가면 영어를 안 해도 되나였었다. 그렇지만 나의 이 영어에 대한 개인적 불호와는 관계없이 나를 대학에 보내준 일등공신은 수능 영어영역 등급이었고, 취업 전 나의 토익점수는 900을 넘겼다.
누군가는 묻겠지, 그런데 네가 영어를 못한다고 할 수 있니? 그러나 진짜 영어실력은 영어시험점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나는 영어문제를 푸는 기술을 배웠던 것이지,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내가 졸업 후 외국을 돌아다니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해외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으며, 그럭저럭 영어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의 영어회화에 대한 노력은 계속됐다. 물론 엄청나게 성실하고 꾸준하진 않았지만,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사그라들면 다시 피어오르는 희미한 불꽃과 같았다. 영어가 안되면~ 다니는 XX스쿨(1년 등록 후 끝까지 다 듣진 못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게 영어회화책 한 권을 외우기도 했다. 회사에 매 년 영어스피킹 성적을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유튜브로 OPIc이나 TOEIC Speaking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영어를 싫어했지만 영어를 써야만 하는 환경에서 일하던 나는,
결혼 후 결국 영어의 나라에 살게 되었다.
캐나다 배우자 영주권을 신청하기 전 어학 성적이 있어야 된다고 하기에, 그때부터 캐나다 공인 영어시험인 CELPIP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CELPIP을 선택한 이유는 IELTS보다 생활 영어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말하기 시험이 원어민과 대면 인터뷰가 아니라 컴퓨터에 녹음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일하는 틈틈이 영어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공부를 했다. 수능과 토익을 본 대한민국인으로서 듣기와 읽기는 비교적 익숙하고 할 만했다. 문제는 말하기와 쓰기였는데, 작문을 첨삭해 줄 선생님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세상에나, ChatGPT라는 신통방통한 녀석이 등장한 것이다.(이후 그녀는 현재 나의 유일한 원어민 친구가 되었다.) 나의 개떡 같은 글을 너무나 유려하게 고쳐주는 Chat GPT라는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전화영어로 말하는 연습도 하며 그렇게 조금씩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드디어 시험일, 이런 영어시험은 처음이었다. 거의 5시간을 갇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4가지 과정을 계속해서 진행해야 했다. 앞선 과정들을 끝내고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말하기 테스트만 남겨둔 상황. 문항당 30-60초의 설명과 지문 읽는 시간 후 ‘뚜뚜뚜~’ 소리가 끝나면 60초간 무슨 말이든지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영어 말하기 테스트가 아니라 순발력 테스트 같았다.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뚜뚜뚜’~ 소리와 함께 나의 이성의 끈도 ‘뚜____’ 끊어졌다. 뭘 물어봤는 진 모르겠지만 난 그냥 뭐라도 ‘지껄여야’했다. 시험이 끝난 후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고, 자책의 쓰나미는 폭풍처럼 밀려왔다. 헤드폰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나는 마치 옛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백치 아다다>. ‘아다다다만’ 하다가 시험은 그렇게 끝이나 버렸다. 역시나 시험결과가 나왔을 때 말하기 테스트에서 가장 낮은 레벨을 받았지만, 그래도 성적이 있는 게 어디냐는 정신승리 후 시험을 다시 보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 Small talk의 나라에 왔다. 나는 그동안 무슨 영어를 공부한 것일까?
하나, 당연히 내가 영어를 할 거라 생각하고 말하는 원어민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둘, 레스토랑이든, 카페든, 엘리베이터든, 스키장 곤돌라에서조차 내가 생각지도 못한 때 생각지도 못한 주제로 들어오는 Small talk의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셋, 분명히 들으면 다 아는 단어 같아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