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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루 Feb 21. 2024

평행이론이 불러온 눈물바다

얼마 전 도련님이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형수님, 전 이제 세상에 평행이론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어요. “

도련님이 보내준 영상을 클릭한 후, 영상의 시작엔 놀라움을, 중간쯤엔 폭소를, 마지막엔 오열이 터져 버려 그 후로 내리 3일을 울었다.


영상의 처음은 이랬다.

나와 같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 익숙한 장소는 나의 시선을 더욱 붙잡아 두었다. 그녀는 나처럼 10여 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 후 주재원인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녀의 일상은 마치 나의 일상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이케아에서 산 그릇들, 코스트코 고기를 소분하고 요리하는 모습, 스콘을 굽는 모습까지. 심지어 스콘의 형태까지 같았다.

그녀는 곧 늘어나는 체중과 떨어진 자존감, 주변에 이야기 나눌 사람의 부재 등으로 영상 속에서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어? 내 이야기인가. 이미 터져버린 눈물을 더욱 멈추지 않게 했던 건 댓글들이었다. 세계 곳곳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버티자고 응원했다. 그 글들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을 짓누르던 그 무언가가 조금은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니. 참으로 간사한 나라는 인간은 내가 그 상황이 되고서야 비로소 그녀들에게 절절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들이 누군가에겐 투정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누가 알겠나, 그 뻥 뚫린 것 같은 마음을.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낯선 땅에 오게 된 우리들은 무엇이 힘들까.


첫째, 직업이 없다.

내 친구는 말했다. 내가 요즘 가장 부러운 건 너라고. 육아와 가사, 회사일까지 시달리는 그 친구는 죽고 싶어도 죽을 시간이 없단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쉼을 준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생 때부터 약 20여 년간 내가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생활했고, 졸업 후에는 바로 취업해 14년간 한 직장을 다녔다. 그렇다. 나는 쉬어본 적이 없다. 머리를 싸매며 일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볼 때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몇 달 전의 나도 내 분야의 전문가로, 리더로 일하던 시간이 떠오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순식간에 여유로워진 나의 일상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지만, 하루는 참 길다.

둘째, 돈이 없다.

그동안 내돈내산의 삶을 시전 하던 나는 넘치진 않았지만, 부족하진 않게 살았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일들에 투자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옷 한 벌 쯤은 고민 없이 사 입고, 친구들과 만나면 기분 좋게 밥 한 끼 사줄 수 있는 삶.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만들어 준 신용카드를 쓸 때마다 어딘지 모르는 불편함이 든다. 남편에게 카드 말고 매달 생활비로 현금을 주면 어떻겠냐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100불이든 200불이든 정해진 생활비가 있으면 그 안에서 아껴서 살아보겠다고. 그러나 남편은 현금을 쓰는 건 현재 우리에게 아무 혜택이 없으니 비행기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 신용카드를 쓰는 게 더 합리적인 소비 인 것 같다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내 계좌에는 퇴직금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잔액이 있지만, 난 커피 한 잔을 사 먹기까지 몇 번의 고민을 거듭한다.

셋째, 친구가 없다.

남편의 직장동료들, 직장동료의 가족들, 남편의 동생이 이곳에서 나의 유일한 인간관계이다. 한국에선 직업적 특성상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회사에는 항상 선배와 후배가 가득했으며, 쉬는 날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사실 그때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밝은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피로도가 높은 일이다. 또한 여자들이 많은 직장에서 너무나 내밀한 서로의 속사정까지 알아가는 것이 다소 버거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나와 직업적 경험을 공유하고, 추억을 공유하고, 생활을 공유하는 친구를. 나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할 필요 없는 사람들이 그립다.

넷째, 엄마가 없다.

30이 훌쩍 넘은 나이까지 엄마와 함께 살던 나는 그렇다. 엄마 빠순이다. 함께하는 동안에는 정말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낼모레 마흔인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밤 9시만 되면 어디니, 언제 오니, 왜 안 오니를 달고 살던 우리 엄마.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두 손 두 발 들어 가장 환호하던 사람이었고, 눈물범벅을 예상했던 결혼식에서조차 나에게  엄지척을 해 보이며 나오려던 눈물도 쏙 들어가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밴쿠버 도착 후 며칠 뒤 영상통화를 하며 펑펑 운다. 집을 치우는데 구석구석에 내 물건이 너무 많다며, 이제 진짜 내가 간 것 같다고. 낼모레 마흔인 나는 지금도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다섯째, 그러나 남편이 있다.

모든 것이 없는데, 그런데 남편이 있다. 나의 새로운 가족, 나의 일상을 나누는 사람. 매일 보고 싶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를 만난 게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하는 사람. 작은 것 하나에도 고맙다고 말하고, 모든 게 내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 이 사람 때문에, 아니 이 사람 덕분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두고 여기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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