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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는 날, 배꼽도 잡힌 날(스리랑카 Ep.1)

머리가 지독히도 간지러웠어.

by 박모씨

스리랑카에서는’이(උකුණා 우꾸나)’가 흔하디 흔하다.


덥고 습한 기후 덕분에 녀석들의 활동력은 거의 올림픽 선수급.

그러다 보니, 길거리에서 서로 머리를 들여다보며

이를 잡아주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오늘도 개똥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걷고,

쥐를 맛나게 해치우는 까마귀 떼를 지나,

드디어 친구 이노카 의 집에 도착했다.

집에 가면 늘 주는 달디단 밀크티를 한 잔 먹으며

한참을 떠들던 중,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머리 좀 숙여봐.”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좀 긁었다. 가려워서.

근데 그렇다고 이를 잡아주겠다며 자세까지 잡을 일인가?


이노카는 이미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능숙하게 나누고, 정교한 손놀림으로 머릿속을 샅샅이 뒤졌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녀는 마치 이 잡기의 장인처럼

완벽한 집중력과 기술을 발휘했다.


나는 점점 존경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이 잡기 장인 아니야?’


그런데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며칠 전, 캔디 가는 거리에서 본 원숭이 가족.

어미 원숭이는 아슬한 전기 줄 끝부분에 앉아 새끼의 머리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정성스럽던지,

새끼 원숭이는 반쯤 누운 채 눈을 감고

그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어라? 지금 내 자세가 딱 그 새끼 원숭이 같은데?

이노카는 완벽한 집중력으로 내 머리를 샅샅이 뒤지고 있고,

나는 숙인 채 어미 원숭이에게 몸을 맡긴 새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이 잡기의 세계에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인가.


그러던 찰나, 갑자기 옆집 아주머님이 등장했다.

이 희한한 광경이 웃겼는지,

휴대폰을 꺼내들고 연신 버튼을 눌렀다.

"이거 너무 웃기지 않니? 너네 표정 봐!"


그러고 보니 이노카는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 잡기의 세계에 푹 빠진 듯,

진정한 프로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는 단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남은 건 머릿속을 샅샅이 공개한 부끄러움과…

배꼽 잡고 웃은 시간.


그런데…

근데 왜 아직도 머리가 근질근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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