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많은 청년들
어젯밤, 요즘 주말마다 보고 있는 사회에 대한 토론 프로그램을 지난주 보지 못했어서 보기로 했다.
시골에서 적은 돈을 받거나 아예 돈을 안 받고 치료하는 의사들과, 그런 의사들한테 치료받고 잘 된 환자들이 모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의사들을 볼 때 눈알이 촉촉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만의 책임감도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가끔 학교비 내기 어렵거나 숙소비 내기 어려운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20, 30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하지만 그 돈은 인도에서는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죽어도 명품 브랜드 가방은 못 멘다. 100만 원 이상의 가방 하나 살 바에 나는 3명 공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내 동료들이
“아니, 네가 왜 돈을 줘? 그분들 부모가 준비를 해야지.”
이럴 때가 있는데, 내가 도와주는 정말 그 조그마한 금액도 내기 어려워하는 집안 환경의 분들이다.
나는 지금 이 수준에 좋은 위치에 있다면 그건 교육의 기적이다.
내 교육 과정 뒤에는, 집안 환경이 어려웠을 때 시험비를 내준 친구도 있었고, 아빠가 사고를 당했을 때 숙소비를 반만 내도 된다고 허락해 준 학교도 있었다.
그 숙소에 살다가 감정적으로 힘들어했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살아도 된다고 해 준 친한 이슬람 친구의 가족분들, 그리고 슬리퍼 하나 사는 것을 부담으로 느껴 핀을 달고 다녔을 때 아무 말 없이 슬리퍼를 내 방에 두고 간 선배 이런 분들의 은혜가 있다.
그런 천사 같은 사람들 덕분에 내 대학 과정이 너무나도 수월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은혜를 누군가에게 베풀 책임은 나에게 무조건 걸려 있는 것 같다.
교육은 누군가에게 닿기 어려워지는데, 그걸 보고도 무시한 채 지나간다면, 그건 내 삶의 의미를 잃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 모두를 도와주려고 내가 태어난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나가다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들리면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언젠가 나에게 도움을 받던 분들이 돌려주길 바라지 않는다.
대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 함께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