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초기 투병의 기록
<2015년 8월 25일>
남편이 계속 등이 결리고 아프다고 하고 기침을 하길래, 제발 병원에 좀 다녀오라고 했어요. 제가 일하는 사이, 제게 말도 없이 혼자 병원에 다녀왔는데 abnormal findings on diagnostic imaging of lung, 10x8.5cm mass like lesion 이라고 적힌 소견서, 그리고 큰 병원으로 가시라는 의사의 말을 가지고 왔네요. 그래서 내일 일찍 전주에 있는 병원에 나가 보려고요. 병은 소문내는 것이라길래. 별일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해봅니다... 저도 10여년 전에 폐암 의심 소견으로 병원에 갔다가 폐동정맥기형 진단 받고, 폐에 동맥과 정맥을 가르는 핀 하나 꽂고 있거든요... 폐암병동에 저만 혼자 폐암이 아니고 다들 폐암이셨는데 갑자기 그 때 느꼈던 암울한 분위기가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남편 앞에서는 담담하게 있는데 종양 크기가 커서 속으로는 걱정이 좀 많이 됩니다... 별일 아니기를 ...
<2015년 9월 1일>
남편이 무척 가라앉아 있다. 오늘 이장회의도 있었는데 다른 분께 부탁해서 대신 가시게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오늘까지는 가고, 내일 병원 다녀와서 판단하겠다고 하더니 이장회의 다녀와서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하더니 내리 누워만 있다. 후각도 감퇴하는 지 아주 코끝에 대지 않으면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등이 결리는 것 같이 아프다고 하기도 한다. 말 시키는 것도 대답할 기운없이 귀찮아 한다. 힘내자고 힘내자고!
<2015년 9월 10일>
내일부터 남편의 N암센터 진료가 시작됩니다. 대전으로 다니던 병원도 의료진들도 모두 친절하고 감사했습니다. 병원을 옮길 결정을 내리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을 옮기는 결정이 옳을까... 항암과 방사선은 해야할까... 대체의학은 가능할까... 앞으로 수많은 결정의 과정들이 남편과 제 앞에 놓여있지요. 여느 부부처럼 사랑하고 사랑해서 닭살돋던 날들도 있고 남편과 아웅 다웅 다투기도 했고 냉전을 치룬 날들도 많았습니다. 남편의 폐암 진단 이후 늘 제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해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보다 제가 남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제 이야기만, 제가 하고 싶은 일만,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만 남편에게 말해왔어요. 늘 제가 중요하다고 말해온 일들을 힘껏 함께 해주었던 남편이기에 제 이야기만 해온 날들이 너무 미안합니다.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하고 당신 이야기에 더 귀기울일께요. 앞으로 힘든 날들이 더 많겠지만 사랑하는 남편 우리 잘 이겨내요 손 꼽잡고 같이 걸으면서요 낭군님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순간 순간 하루 하루 지치지 말고 잘해냅시다!
<2015년 9월 21일 >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끔 뇌와 뼈전이를 걱정했는데 림프절 전이만 있습니다. 양쪽 폐 모두에 암세포가 퍼져 있고 림프절 전이로 수술도 불가하지만 타세바라는 항암약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부작용과도 싸워야하겠지만 말이예요. 남편이 폐암진단을 받은 뒤에 우리는 공기 좋고 깨끗한 마을에 살면서 논밭으로만 다녔지 마을을 산책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마을 산책도 하고 족욕도 하고, 우리가 농사지은 것들도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먹기로 했습니다. 명상도 하고 음악도 듣고 많이 웃기도 하기로 했어요. 내일 집에 내려가고 모레부터 항암 시작입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 하겠습니다!
<2015년 10월 17일>
몇달만에 잠을 푹 잤다. 남편 목에 멍울도 잡히고 턱도 부어서 인후두나 침샘쪽 전이가 된 것은 아닌 지 며칠 동안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 병원에 와서 아니라고 결론난 것은 없으나 우선 항암부작용일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그래도 한시름 놓아본다. 잘먹고 놀고 쉬어야하는데 지난월요일과 화요일에 오래간만에 내가 꾸러미를 보낼 준비를 하니 남편이 혼자 꾸러미 준비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작업장에 들락날락 박스에 테이프도 붙이고 사과도 봉지에 담고 수확한 농산물도 날라다주고, 우리 쌀을 수확해야 해서 논도 나가고 우리 토마토를 정리해주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들어했다. 일하지 않는 것이 영 불편한가보다. 서서히 일을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다음 달에 다시 PET CT 찍고 전이검사 또 하기로 했으니 남편이 맘놓 고 쉬려면 나도 같이 놀아야겠다. 놀자 놀자 놀자!
<2015년 10월 21일>
남편과 발가락이 제일 닮은 딸 선발대회를 열었다. 막내는 발이 아직은 오동통하기만 하므로 선수에서 제외^^ 모두 모여 사진을 판독하는 등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우승의 영광은 큰딸이 차지했다. 축하한다! 너는 아빠랑 발가락이 닮았다ㅋ 소소한 일상 그게 재미있고 평온하면 행복하다. 누군가의 노래처럼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2015년 10월 30일>
걱정말아요 그대. 걱정은 훌훌 털어버리고 가족들이랑 오늘 우리가 행복하면 되는 거지요. 잘될꺼예요 다 잘될꺼예요
<2015년 11월 16일>
암 크기는 줄었는데 폐암환자에게 가장 무섭다는 폐렴이 왔네요. 폐렴약 들고 다시 집으로 갔다가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으로 와야해요.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꼭 그리되도록!
<2015년 12월 29일>
남편이 성탄절에 갑자기 다리가 저린 것이 풀리지 않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더니 그 뒤로 오른쪽 다리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아프다고 했다. 열심히 하던 산책도 1분이 못되어 포기한다.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증세를 말씀 드리고 진료일을 앞당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대응이 늦어지게 되니 진료일 변경보다 응급실로 오는게 지금은 필요한 때라고 응급실로 와야한다고 병원에서 대답한다. 폐암카페에 같은 증세를 경험해본 분이 계신 지 물어본다. 척수전이, 뇌전이 댓글들이 달린다. 우리는 응급실을 가기로 결심을 한다. 걷기를 어려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는데 그런 문제와 마주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속으로 여러번 생각한다.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다가 깨서 여섯살 동찬이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늘 우리가 병원에 가는 일이 기민하게 대처한 일이 되기를... 그러하기를... 전이가 아니라 어떤 부작용이기를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