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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24. 2020

2017년 기록들

폐암투병 3년차

<2017년 1월 11일>
남편은 2주 연속 간수치(ALT)가 300대. 주치의 선생님께서  간암센터 협진 요청. 임상약은 지난주부터 중단된 상태. 걱정은 접어두고 여기가  다시 출발점.

<2017년 1월 18일>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에서 입원 대기중이예요. 상황을 보니 병실 날 때까지 며칠 걸릴 수도 있는 분위기인데...병실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열려라 참깨!

<2017년 1월 24일>
입원할 때마다 나이롱 환자(?)라고 놀렸더니만 남편님 어제 기흉으로 흉관 삽입. 곧 좋아지겠지만... 앞으로는 일관되게 나이롱환자 합시당. 폐야 얼른 펴져랏!!!

<2017년 1월 26일>
진짜 새해,  설이 오고 있어요. 남편과 저는 이번 설은 병실에서 보내게 되어요.

<2017년 1월 31일>
내일 퇴원해도 되겠다는 이 반가운 말씀씀씀쓰음~

<2017년 2월 12일>
저녁에 막내랑 통화를 하는데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어서 집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지난 12월과 1월도 거의 병원에만 있었던 터라 아직 어린 우리 막내에게는 빈자리가 많아 쓸쓸한 날들...마음이 짠하다.

<2017년 3월 6일>
내일과 모레 남편 검사와 진료가 있어서 일산에 올라왔는데 일기예보에 눈소식

<2017년 3월 8일>
음... 내성 판단이 되어 오늘 남편은 임상약하고 완전히 이별을 했고요. 다음주 월요일에 입원해서 새로운 항암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봄이 오고 있으니 봄기운을 믿어야겠지요? 꽃샘 추위가 지나면 봄 봄 봄이 올꺼예요

<2017년 3월 14일>
어제부터 진통제 용량을 늘였는데도 통증이 잘 잡히지 않아 남편이 몹시 아파하다가 방금 전에 잠이 들었다.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바라보고 옆에 있을 뿐이다. 13번째의 달(13월)이라는 시에 끌려 일부러 챙겨온 에리히 케스트너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자는 중에 허공으로 자꾸 올라오는 남편의 손을 본다. 마음이 아리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그래야하고 말고.

<2017년 3월 28일>
지난 5일간 이야기
남편이 지난주 월요일에 퇴원을 했는데 하루종일 통증에 시달리고, 먹지도 앉지도 눕지도 서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 간호사이신 P언니의 조언과 도움으로 의료원에서 영양제를 맞았고 늦은 저녁 J씨가 데리러 와주었다. 이 기운 덕에 조금이라도 몸을 추스릴 수 있었고, 지난주 금요일 아이들 고모부가 울산에서 장수까지 와서 함께 병원으로 올라왔고 다시 입원을 했다.
M선생님께서 보따리 가득 보석같은 밥이며 정갈한 반찬들, 빵과 크림꿀, 공정무역 커피와 통곡물가루 등 먹을 것을 정성스럽게 챙겨다주셨다. 남편은 일요일 저녁부터 선생님이 주신 반찬으로 하루 세번 꼬박 꼬박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모두 다 맛있게 먹지만 특히 토종오이지무침과 배추 장아찌를 맛있어한다.
일요일에 남편이 좋아하는 동료들이었던 L님과 Y씨, M씨가 찾아와주어 근 한달만에 남편이 통증을 잊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는 시아버님께서 평창에서 올라오셔서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셨고, 같은 병실에 계셨던 S어르신 내외분께서도 병문안을 와주셨다. 어제 남편은 일어나 앉아서 한동안 이야기도 하고 병원 복도를 부축없이 자기힘으로 거닐었다. 이제 혼자 잘 걷는다.
날마다 찾아와 우리 조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시던 시이모님께서도 어제 저녁 남편을 보시고는 살아났네 하셨고 남편이 손수 시이모님께 커피를 드렸다.
여전히 통증이 있고 진통제 양을 더 많이 늘여 잠자는 시간이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은분들의 좋은 기운 덕분에 남편이 기운을 차렸다.  앞으로 하루하루 더 나아지리라.

<2017년 4월 6일>
병실 없어서 일단 어제 1인실로 올라오긴 했는데... 돈도 바닥났는데 왜 5인실로 옮겨달라고 하기는 싫은걸까요. 남편이 5인실로 옮기자고 궁시렁, 눈치보지 말고 자기 마음놓고 아프라고 그런다고 나도 궁시렁. TV 있는데 곧 옮기겠지만 여기 있을 때 역적 재방송이나 많이해랏. 아침드라마 저녁 드라마도 다 보고말테다. 마누라 1인실에서 돈 팡팡 써보며  TV 시청해보게 남편 아프지마시오 흑흑

<2017년 4월 10일>
어제는 남편이 저녁 8시에 병실 불을 꺼달라고 했다. 나도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려서 여덟시부터 잠을 잤다. 열시쯤에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언제 집에 오냐고 막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도 너무 보고싶다고 말해주는 것 말고 달리 달래줄 방법이 없다. 할머니와 누나 셋이 사랑을 듬뿍 주어도 엄마 아빠가 주는 사랑이 그립고 그리운가보다. 큰딸이 얼마전에 막내가 아빠 다 나으면 목마태워주냐고 물어봤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남편에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은 요즘 식도나 위에 문제가 생겼는 지, 종격동에 전이된 암세포가 식도나 위를 누르고 있는 지 물 먹는 것도 힘들어한다. 환자식으로 죽을 시켰는데 그마저 먹지 못해서 내가 먹게된다. 어제는 우유에 바나나라도 갈아 먹이려고 작은 믹서기를 사왔다. 반이나 먹었으니 성공한 셈이라고 생각해야지...178cm에 62.5kg 여기서 더 빠지면 안된다는데 60 이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어야할텐데 걱정이다. 오늘 PET CT를 다시 찍는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하루하루가 귀한 날이다.

<2017년 4월 29일>
며칠전 수요일에 퇴원을 했고 예정대로라면 5월 10일 입원이었는데  남편은 어제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응급실로 다정한 주치의 선생님도 오시고, 병동에 올라왔더니 늘 좋은 병동 간호사선생님이 보고싶어서 오셨지요 하시고, 알수록 따뜻한 간호사선생님은 3일만에 다시 온 우리에게 외출했다 오셨네요 하시고, 우리가 퇴원할 때 비번이셨던 착한 간호사선생님도 저 없을 때 몰래 퇴원하시더니 오셨네요 하시면서 다들 웃으며 반겨주셔서 마음이 푸근해져서 같이 웃었다.  (나는 날마다 주치의선생님과 담당 의사선생님들, 폐암병동간호사선생님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그분들의 판단과 손길이 우리같은 환자들에겐 너무 귀한 일이고 또 여러번 입원하면서 보니 그분들의 감정노동과 노동강도도 엄청나다.)
연휴가 길어서 시어머님과 아이들이 어제 올라왔다. 그런데 입원하느라 아직 아이들 얼굴을 못보았다. 아빠가 도로 입원을 해버려서 아이들이 살짝 당황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2017년 5월 2일>
아주, 오래간만에, 부자 상

<2017년 5월 4일>
남편하고 함께 사전투표 했어요^^ 저희는 관외지역. 걷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걸어가서 투표하는 남편 감격 감격. 이대로 쭉 갑시당~~


<2017년 5월 11일>
요즘 저희 부부는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어요. 집을 마련한 것은 아니고요 너무 병원을 자주가게 되어 시이모님께서 이모님댁에서 지낼 수 있게 배려를 해주셨어요.
어제는 병원에서 항암을 하는 날이었어요. 병원에서 지난 3일 퇴원할 때 다시 입원해서 항암을 하자고 했었는데 입원없이 하기로 되었어요.

<2017년 5월 16일>
키가 178cm인데 몸무게 56kg이예요...남편은 오늘 다시 병원에 입원했어요. 며칠 반짝 조금 먹는다 싶었는데 다시 못먹네요. 얼마전에 항암주사 맞은 뒤로 통증 관리가 잘되어 기뻤는데 이렇게 살이 빠지니 걱정이예요. 잘맞는 항암제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다시 못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제가 대신 먹어줄 수도 없고, 대신 아파줄 수도 없어서, 많이 안아주고, 자주 손잡아주는 것으로 그저 저는 남편에게 제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아프지 말고 살도 좀 찌우고 우리 행복합시다.

<2017년 5월 23일>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면 잡지에 실렸던, 혹은 작가분이 찍어주셨던 남편의 사진이 있다.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날마다 기도를 한다. 얼마전까지는 남편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는데 며칠전부터 남편이 다시 농부가 되어 땅을 경작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뭄무게가 56kg에서 58kg이 되었고, 통증관리가 잘 되어 진통제 용량을 줄였다. 어제 퇴원을 해서 머물고 있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한참이나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다시 경작하는 남편이 되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해본다. 감자를 심고, 녹두를 따고, 우리가 꾸러미를 보내던 그 때, 우렁이를 논에 풀고, 정미소로 향하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해본다.

<2017년 5월 26일>
남편이 장모님밥이 먹고 싶다하여 오늘 부천에 있는 엄마집에 왔어요. 한동안 병원밥과 매식으로 끼니를 먹다가 진짜 오래간만에 집밥 같은 집밥을 먹었더니 너무 좋네요^^ 마음이 노곤노곤하고 유랑하는 것 같은 기분이 사라졌어요

<2017년 5월 30일>
친정엄마가 예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 사신다. 요며칠 우리 부부는 친정에 머물고 있는데 하루에 한번 남편과 천천히 동네를 걷는다. 우리가족이 이 동네를 떠난 지 9년이 되었어도 동네로 나서면 구석구석  아는 곳이다. 분식점 사장님도 그대로 계셔서 어쩐 일로 왔냐고 물어보신다.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시 이사왔냐고 물어보신다. 남편이 현기증이 심해서 동네 병원에 들어가 혈압 한번만 재어주십사 했더니 간호사선생님이 시골가셨으면 건강하셔야지 아프면 어쩌냐고 하시면서 언제든 지 혈압 재러 오시라고 살뜰하게 말씀해주신다. 딱 보아도 환자같았는 지 동네골목에 나란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은 손잡고 걸어가는 우리 부부를 지나갈 때는 안쓰럽게 보시더니 오는 길에는 둘이 다니는 모습이 예쁘네 예뻐 하신다. 부천과 서울의 경계, 그야말로 서민들이 사는 동네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의 모습이 곱다. 남편이 친정엄마 집이 편한 것은 밥 뿐만이 아닌 것 같다.
계획하기로는 남편이 요며칠 밥을 반공기씩 먹었던 터라 이대로라면 장수 집에 다녀와보자 했는데 그제부터 도로 못먹고 있다. 오늘 동네 병원에서 혈압을 재면서 달아본 남편의 몸무게는 55kg, 저울이 좀 적게 나온다고 하신 간호사선생님 말씀을 감안해도 56kg~57kg 사이. 당분간은 또 집에 내려갈 수 없을 것 같다.
겨울옷을 입고 왔는데 초여름같은 날이 되었다. 집을 오래 못가니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렇고 통장재발급도 받아야하는데 도장도 없고 가지고온 여름옷도 없는 사소한 문제도 생긴다. 그렇지만 오늘 남편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 집에 가고 싶은  욕심을 버렸다.
지난 몇개월간 병원비를 많이 써서 강의요청이 오면 강의를 가고 일거리가 오면 받아야지 했는데 최근에 들어온 강의요청도 TV 대담같은 인터뷰도 모두 거절을 했다. 뭐 다 잘되지 않겠는가. 오늘도 좋은 생각을 해본다.
요즘에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고 싶다.

<2017년 6월 3일>
2004년부터 페스코 단계의 채식주의자였는데 그동안 두번 소고기를 먹었다. 한번은 2010년  막내 임신했을 때 그리고 어제.
남편이 며칠전부터 소고기를 구워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먹어야지 했는데 한점도 못먹을 수도 있는데 고기를 사는걸 주저해서 자기가 진짜 고기 먹을 수 있으면 나도 먹겠다고 큰소리 빵빵쳤다. 고기를 구웠고 남편이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먹었다. 둘이서 채끝 200g. 페스코 채식은 앞으로도 계속 하겠지만 남편이 소고기 먹고 싶어할 때면 나도 같이 먹으려고 한다. 스스로 해왔던 약속을 몇번 어기게 되겠지만 남편이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내가 지금 뭐든 못하겠나 싶다.

<2017년 6월 8일>
남편님. 요즘 자꾸 저에게 불쌍하다고 하고 힘들거라고 물어보시는데 말입니다. 저에게는 당신을 잡아줄 손이 있고, 당신과 걸어줄 다리가 있고, 당신이 잡고 걸을 어깨가 있고(내 키가 작은게 얼마나 다행인가요^^), 나름대로 아직까지는 잘 회전해주는 머리도 있고, 당신과 나를 닮은 애들도 넷이나 있고 주변에 우리편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불쌍하지도 않고 힘도 하나도 안드옵니다. 돈은 원래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니 그런 걱정도 말고요. 그러니 힘을 내서 오늘 검사를 다 잘받아봅시다. PET-CT부터 오늘 검사 시작! 아자아자아자!

<2017년 6월 9일>
남편의 폐와 간과 여기저기 뼈와 곳곳의 임파선에 있는 암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어요. 흉수도 사라졌고요. 특히나 간에 있는 녀석들은 정말 많이 도망갔더라고요!
그런데 백혈구 수치가 낮아서 오늘 항암은 못하고 다음주에 입원해서 항암을 하기로 했어요. 결과가 좋지 않아서 항암주사를 바꿔야하는 상황이 되면 더 이상의 항암은 하지 않고 호스피스로 옮기자고 둘이서 미리 이야기 나누었는데  독한 항암주사가 일을 잘 해주어서 다시 맞기로 했습니다.
이제 잘먹고 백혈구 수치를 올려야 항암주사도 맞고 또 항암제가 일을 해줄텐데 여전히 잘먹지 못해서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지난 2년여간 고꾸라질 듯 하다가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왔으니 이번에도 잘해낼꺼예요. 오뚜기 낭군 화이팅 잘먹자!

<2017년 6월 26일>
남편은 오늘 퇴원할 수 있었고 저희는 드/디/어 3개월만에 내일, 우리집으로 내려갑니다.  사진에 글씨 보이시지요? 감소 감소 감소.. 최근 검사 결과가 너무 감격스러워요!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하늘만 아시겠지만 희망을 차곡차곡 쌓아가겠습니다 야호!


<2017년 7월 6일>
남편 항암 일정이 다시 시작되므로 일요일에는 일산으로 가야한다.

<2017년 7월 11일>
다 지나갔으니 이제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남편에게도 겨우 얼마 전에 이야기해주었었는데, 불과 몇개월 전에 이번 항암이 맞지 않을 경우 남은 기간은 이정도 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차마 말해주지 못하고 펑펑 울었었는데, 가끔씩 병원 구석으로 가서 혼자서 울곤 했는데 기적처럼 항암주사가 효과가 있었고 진통제도 계속 줄여가고 있다. 왼쪽팔은 아예 움직일 수 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아주 짧은 거리지만 10분거리 학교까지 운전도 할 수 있다. 남편은 어제 항암주사를 맞았고 다음주 한번 더 주사를 맞고 나서 별문제가 없으면 행복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내려간다.  잘 이겨왔고 잘되어왔고 또 잘되리라

<2017년 7월 18일>
퇴원. 집. 진심으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


<2017년 8월 18일>
이번달로 남편이 폐암4기로 투병을 시작한 지 만2년이 되었다. 이제 3년차가 되었다. 그동안 유전자변이에 따른 표적치료제 항암, 임상시험 항암을 했었고 지난 4월부터는 소위 표준항암이라고 부르는 주사항암을 해왔는데 오늘로 남편이 표준항암 5사이클을 마쳤다. 이번 사이클에는 유독 구역이 심하고 더욱 기력이 없다. 살은 조금 더 빠져서 178cm에 55kg.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은 우리가 별말씀을 안드려도 에어콘을 끄시고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목적지에 데려다 주시려고 하고, 모두들 환자인 병원에서도 우리를 보면 자리를 양보해주신다. 마을분들은 귀한 시간을 쪼개어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병원을 오가는 우리를 위해 대전역에 데려다 주시고 또 데리러 와주신다. 그 동안 남편과 우리 가족을 응원하고 토닥여주신 분들은 너무 많고 그 감사함 또한 말로는 어찌 표현할 수가 없다.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왜 항암을 하냐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우리도안다. 항암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암환자와 가족들은 다 안다.  그러나 항암을 하지 못하는 기간에 남편이 죽을 고비를 넘겼던 고통의 시간들은 당사자와 그 가족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남편이 55kg이 되었어도 통증을 느끼지 않고 지내는 시간들이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붙이고 주사로 맞는 일을 동시에 해야만 한숨이라도 잘 수 있었던 시기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지금은 비록 여전히 많은 양이지만 먹는 진통제로만으로도 통증 조절이 되고 있으니 감사하게 여긴다.
걱정을 미리 하지 말자. 우리 부부는 늘 서로에게 말한다. 뭐든 어떤 상황이던 그때가 시작이라고 생각하자. 행복하자.
마음한켠에는 두려움도 있고 아이들 얼굴을 보면 웃고 있어도 한없이 마음이 아프다. 남편이 잠들면 물끄러미 남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만 2년. 이제 3년차. 하루하루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내가 더 살면 너만 더 힘들지 이런말은 절대로 하지 말고 남편님 앞으로 또 잘 가봅시다. 담담하고 담대하게!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2017년 8월 31일>
남편과 함께 어제 병원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 가벼운 발걸음. 앞으로도 가벼워라 우리 둘 발걸음 수리수리마수리 얍얍얍~


<2017년 9월 13일>
요즘은 진통제 용량을 늘여야했으므로 남편의 병이 더 진행되었다는걸 남편도 나도 알고 있었다. 오늘 진료실에서 주치의 선생님은 병이 더 진행되었다고 하셨고 우리는 예 선생님 저희도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개의치 않고 마음 편하게 잘 지냈어요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실제로 이 보다 더 했었는데 이쯤이야 땡큐지 하고 지내고 있다. 더 나빠지기도 하고 더 좋아질 때도 있으니 남편과 나는 안절부절할 필요도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본다. 이런 시간도 저런 시간도 남편과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다 소중하니 우리는 그저 일상을 열심히 꾸려본다. 내일 검사 때문에 남편이 열두시간 금식해야 하니 금식해야할 시간 오기 전에 맛있는거 먹어야겠다.

<2017년 9월 20일>
남편은 오늘 입원을 했다.
되도록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한 하루였다. 오늘은 솔직히 펑펑 울고 싶기도 했는데 울고 싶을 땐 울어야지 암암! 내일은 펑펑 울어야지 실컷 울테다 하고 다짐을 했다. 오늘은 이런 날. 아프지 말고 좋아져서 집에 가자. 사랑하는 낭군님!

<2017년 10월 19일>
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아보이는데?
오! 오늘은 머리카락이 새로 나는것 같아.
바뀐 항암제 때문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박박 밀어버린 남편에게 여덟살 우리 막내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마다 해주는 보석같은 말이다. 세상은 이런 맛으로 사는건가 보다.

<2017년 10월 30일>
토요일은 무척 기쁜 날이었어요. 항암주사 맞고 내려오는데 남편이 다리에 힘이 붙은 것 같다고 했고요, 그래서 아주 씩씩하게 집에 내려왔어요.

<2017년 11월 2일>
오늘 새벽에 내 손을 남편이 꼭 잡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옆에 없는 건 싫은가보다. 며칠 전에 막내가 아빠에게 글라스데코를 사달라고 하다가 너무 해맑게 아 맞다. 엄마 아빠 돈을 안벌고 있지 하면서 안사줘도 된다고 했다. 남편이 아니야 글라스 데코 사줄 수 있어 했는데 우리 둘 다 막내가 이런 말을 할 줄 생각도 못했던 터라 당황을 했다. 너무 해맑게 말해서 그렇지 안그러면 엄청 슬플 뻔 했다. 병원에 왔다갔다 하느라 둘 다 일을 안한 지가 햇수로는 3년이다. 남편 컨디션이 그래도 괜찮을 때 내가 움직이려고 하는데(앞으로도 그래야할텐데.)부디 이 기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더도 말고 딱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

<2017년 11월 13일>
요녀석 우리 막내. 돌봄선생님께 며칠 전 들은 이야기. 엄마 아빠 병원가고 집에 없을 때 갑자기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눈물을 터뜨리곤 했대요. 지난주 학예회 요녀석 보려고 중학생 누나들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온가족이 학예회로 총출동했어요.

<2017년 11월 15일>
기분이 좋음 룰루랄라. 어제 찍은 펫시티 결과를 오늘 봄. 남편의 원발암 녀석은 꿈쩍도 안한 것 같기는 하지만 간 부신 뼈 에 있는 다른 녀석들은 몸집을 줄이거나 어디론가로 가버렸음. 이번 항암은 부작용도 거의 없고! 더 바라는거 없으니 요렇게만 유지되어주기를! 사랑하는 남편님 천년만년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히히힛!

<2017년 11월 24일>
앞으로의 내 삶을 지탱해줄 어제 남편과의 이런 대화. 간병이라기 보다는 사랑을 깨닫게 해준 시간들. 앞으로도 이렇게 사랑하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힘들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용감한 자랑!



<2017년 12월 23일>
남편이 입원할 때마다 병원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분들이 언제부터인가 내 인간관계의 한 축이 되었다. 지난주에 한분이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셨다. 투병 기간이 우리가 더 오래되어 그저 먼저 경험해보았음을 이유로 내가 전했던 말들. 위로의 이야기들이 스쳐가는 바람처럼 부질없고 먼지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삶이란 공장처럼 똑같이 찍혀나오는게 아닌데 내가 전했던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2017년 12월 25일>
빰빠라라라밤 경축! 몸무게 60kg 달성!
성탄절 아침을 맞아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2년 넘게 남편 투병 시작한 이후에 살이 늘 빠지기만 했어요.
70kg에서 55kg까지요. 한 때는 너무 아파서 식사는 물론이고 물도 못마셨었고 여명이 얼마 정도 남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절도 있었는데 탁솔 카보 조합으로 항암 시작한 이후 먹는 것이 조금 나아지더니 감격스럽게도 어제 60kg이 되었어요.
수개월 동안 57kg이어서 목표가 이 몸무게 유지였는데 60kg이 되니 너무 기분이 좋네요^^ 광화문 한복판에서 춤추라고 하면 출 수도 있겠어요ㅎㅎㅎ
투병시작한 이후 표적치료제부터 시작해서 임상 그리고 표준항암...
표준항암에 대한 여러가지 걱정을
잘 넘기게 되어 참 감사한 한해입니다.
호스피스로 전과하려던 저희를 아직은 아니라고 환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시며 잘 잡아준 주치의선생님인 국립암센터 한지연 선생님과 함께 울어주신 간호사선생님들께 감사한 한해입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삽니다. 투병도 그저 일상으로 평범한 삶으로 받아들이며 지내는거지요^^
그리고 올해 가톨릭 예비신자가 되어 기도하는 기쁨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한해이고 감사한 성탄절 아침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17년 12월 28일>
어제는 검사 때문에 일산에 올라온 뒤 남편과 둘이서 '1987'을 보았어요.
오늘은 검사 끝나고 '강철비' 보려고요. 어쩌다보니 영화주간^^ 떨리는 검사와 진료 일정이지만 연말을 즐겁게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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