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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Jan 06. 2019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열었다, 생일 파티

조금의 무모함으로 행동하기 

아, 생일 파티해야겠다!

생일 파티의 유일한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집에서 친구들을 불러놓고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팔구십 년 생들이라면 한 번쯤 받아보았을 문구세트를 받으며 고맙다고 한 게 전부다. 처음으로 했던 생일 파티 주인공 자리가 불편하고 재미없어서 그 후로 생일파티를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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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를 중국에서 시작하며 인도와 태국을 거쳐 10월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바쁘게 지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부족했고 그 점이 늘 아쉬웠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얼 하든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리웠다. 이참에 파티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몇 초간의 생각이 지나가자마자 곧장 초대 메시지를 만들고 생각나는 사람들한테 돌렸다. 정식으로 초대하기 전에 먼저 설문조사를 통해 일시와 장소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생일 파티인 만큼 '축의금 안 받는 결혼식'처럼 모든 걸 해주고 싶었으나 주머니 사정상 회비도 얼마 정도 낼 수 있는지 사전 조사를 했다. 그렇게 2019년 1월 6일 생일 한 달 전인 12월 초에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케이크로 파티 공지를 했다. ⓒ 진슈루 브런치
어라? 생각보다 많이 오네

사교적인 편이지만 깊은 관계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깊은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방어적이고 조심스럽다. 이번 파티에 초대한 사람들은 오랜 시간 또는 그만큼 깊게 본 사람들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이들은 중학교 친구부터 사회에서 만난 친구 그리고 교수님까지 20명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들이 나를 생각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없어서 초대 메시지를 보내고도 7명 정도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15명이나 참석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여러 명보다 한두 명씩 만나는 걸 선호하고 여러 명 앞에서 말을 해야 할 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데 15명이나 온다고 하니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스무 명을 초대해놓고 무슨 모순되는 감정인지 주인공으로 파티를 주최하는 게 부끄럽고 오버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무모하게 행동하면 행복할 것 같아서 주인공이 돼보기로 했다!

파티 초대장 ⓒ 진슈루 브런치
준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더이다

무턱대고 초대를 하긴 했는데 회사 초년생으로 매일 집에 늦게 들어왔다. 주말이면 요가는커녕 집에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아픈 몸을 이끌고 대관 장소를 알아보다가 집에 와서 복통으로 드러누워 가며 조금씩 준비는 했지만 내가 구상한 만큼 움직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티 전전날에는 자정에 퇴근해 집에 가서 토를 하고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이대로 파티를 취소해야 하나 싶었지만 한 달 전부터 공지해왔고 무엇보다 나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오는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벼락치기 준비 완료

다행히도 파티 전날에는 병원에 다녀오며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파티 당일이 되어 불안한 마음에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이것저것 준비 물품을 사고 아빠 카메라와 삼각대를 빌린 짐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준비를 하고 있으니 몇몇 친구들이 먼저 와서 도와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지만 행복하게 무사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다 알지만 너희들은 서로 모르지?

시간이 되자 한 명 두 명 모였고 우리는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기다렸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어떤 관계인지를 포함한 자기소개를 들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일부러 눈을 피했다. 마주치면 울 것 같아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그들의 마음이 전달되었고 너무 고마웠다.

주인공은 나야 나 

내 생일 파티라고 정말 내 마음대로 했다. 나에 관한 퀴즈를 내고 선물을 주면서 인증사진도 찍었다. 선물도 나와의 티타임권, 나와의 식사권, 내가 그린 유화 그림, 내가 좋아하는 문구제품 등 내 위주의 선물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싶을 만한 선물보다 내가 주고 싶은 선물을 주고 그것도 나에 관한 퀴즈를 맞혀야 준다니 정말 주인공 마음대로 파티다. 나를 안다는 유일한 공통점을 가진 그들을 낯선 환경에 모아놓고 이야기하라고까지 했으니 파티 주최자만 편한 파티였다. 그들 덕분에 나는 몸 상태가 좋고 나쁜 걸 모두 잊은 채 정말 행복하게 웃으면서 파티를 마칠 수 있었다. 

스튜디오 사장님이 찍어주신 유일한 단체사진!
아쉬움은 언제나 남는다

주인공으로 행세하며 많이 웃고 즐겁게 보낸 파티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 음식이 많이 남았다. 조금 남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많이 남았다.
 음식이 많이 남았으니 꼭 가져가야 한다고 강요 아닌 강요까지 해야 했다.
 손도 못 댄 음식도 여러 가지였고 결국 많이 버리게 되었다.

-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공통된 주제를 끌고 갈 수 없어서 소규모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그래서 근황을 공유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


아쉽게도 사정이 생겨 자리에 함께할 수 없게 된 친구들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고맙다. 주인공을 만들어준 그들 덕분에 눈물 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금의 아쉬움 덕택에 다음 파티에서는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작 생일 당일인 오늘(1/6)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 내일 출근을 위해! 


만약 당신도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무모하게 열어보세요, 생일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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