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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Jan 27. 2019

삶을 쓴다

힘을 꽉 주어 글자를 토해낸다


입보다 손으로

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쏟아낸다. 입을 통해 외치면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적는다. 손으로 적는다. 적다 보면 손바닥이 저려온다. 연필을 쥔 손을 놓지 않는다. 힘을 더 꽉 주어 적는다. 글자로 토로한 내 감정이 오롯이 종이 위에 놓인다. 내 감정을 내려다본다. 그제야 감정이 누그러진다.


롤러코스터보다 심한 감정 기복


위키백과 Corkscrew


상당히 깊고도 높은 내 감정에 관해 눈치챈 건 유난히 어릴 때였다. 눈물이 너무 많고 낯을 가려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걱정이 어린 나에게도 느껴졌고 어떻게든 눈물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과 선생님은 나를 좋아라 했고 주변에는 사람이 항상 많았다. 그러나 태어나기를 내성적으로 태어나서인지 군중 속의 고독처럼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이걸 어린 내가 표현할 방법이 없어 답답했다. 그때부터였다. 일기를 매일같이 적었다. 방학 동안 가장 귀찮다는 일기 쓰기 숙제는 단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다. 물론 진짜 일기장은 따로 있었지만. 


화가 날 때도 쓰고 기분이 너무 좋을 때도 쓴다 

좋은 건 보여주고 싶고 나쁜 건 감추고 싶었다. 그래서 화는 최대한 참았고 기쁜 마음은 온몸으로 표현했다. 점점 사람들은 내가 밝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나만 기대했다. 진짜 문제는 나 스스로도 밝은 나만 원한다는 거였다. 화를 내는 나는 있을 수 없고 거절하는 나는 낯설고 짜증 내는 나는 밉기까지 했다. 일기에서 조차 화나는 걸 최대한 억누르고 적었다. 그러다 어느 날 폭발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가 가둔 틀에 갇혀있던 복잡한 마음을 풀기로 결심하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화가 나는 감정을 빼곡히 과감 없이 나만의 성스러운 일기장에 적기 시작했다. 글로 적었을 뿐인데 엉커 버린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유독 화가 날 때도 글로 풀어버린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희로애락이 적힌 일기장은 당연히 나 빼고는 아무도 몰라야 했다. 나의 지질함까지 모두 적혀있는 일기장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관리했다. 노트에 적어둔 일기와 비공개로 블로그에 적어놓은 글을 주기적으로 버리고 삭제했다.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앞에 누구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게 존재했다. 그렇게 내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었고 가끔 친구들에게 살짝 공개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15년 여름에 유럽 여행을 갔고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해둔 일기장에 매일 손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소중히 일기를 적어갔다. 꿈같은 여름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 8주간 적어놓은 일기장이 곁에 없었다. 매일 찍은 사진이 모두 날아간 것만큼 상실감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브런치를 시작하다

그래서 겨울 유럽을 갈 때는 노트북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일기를 공유해주기 시작했다. 유럽 여행을 물어보는 친구가 늘어나자 브런치를 시작했다. 링크를 보내주면 되니까, 이제 없어질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세상에 열어놓게 되었다. 


생각보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겉으로는 일기장에 적던 브런치에 적던 별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에는 나만 보려고 적었다가 친구들도 보니 설명을 덧붙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내 언어를 확장하고 싶었다. 서툴지만 조금씩 연습하자 낯선 사람들이 반응했다. 내 생에 가장 큰 변화였고 가장 느린 변화이기도 했다. 이 변화가 고맙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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