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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Feb 17. 2016

외면했던 마음

간직하고 싶은 마음 

일상이 된 여행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오늘은 어디를 갈지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다. 트램을 타고 그냥 무작정 아무 곳에서나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우연히 아시아 마트를 발견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친구들이 원하는 소불고기를 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었던 터라 신나서 들어갔다. 음식은 이틀 후 저녁에 해주기로 했는데 혼자 하는 요리는 처음이라서 긴장하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마트는 들어가자마자 향신료 냄새가 너무 강해서 나오고 말았다. 

출처: 독일산 남자 유튜브
사고 싶어 보이는 것이 많은 상점들


길을 걸으며 상점 구경을 했다. 가격 대비 괜찮은 물건이 많아서 욕심이 났지만 가지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불편할 것 같다. 장난감 가게가 있어 들어가 보니 인형부터 시작해서 각종 보드게임으로 가득했다. 할리갈리도 네 종류로 다양하고 독일에 와서 매일 같이 하는 Memory 게임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나는 할리갈리를 사서 우리의 보드게임 시간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들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보건실에서 하던 할리갈리가 생각난다. 또 걷다 보니 유명한 마리엔 광장이 나왔다. 쇼핑의 거리답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름은 모르겠으나 유명해 보이는 건물들을 많이 지나쳤다. 나는 구글 맵을 찍어서 피나코텍 미술관으로 향하였다. 지도에서는 30분이라고 하였지만 자꾸 경로를 이탈하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냐 1시간쯤 걸린 것 같다.   



음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을 보고 나도  사 먹고 싶었으나 점심을 먹었기에 나중에 오고 싶어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다시 갈 수 있을까? 무슨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을 것 같다는 촉이 왔다. 유럽에서 아름다운 성당을 너무 많이 방문했기 때문에 모두 비슷해 보여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결국엔 항상 들어가 보게 된다. 들어갈 때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살짝 기도도 하고 나온다.


뮌헨 골목

뮌헨의 골목은 하이델베르크의 골목과는 다른 느낌이다.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크고 깔끔하지만 클래식함이 느껴진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근엄한 느낌까지 든다는 건 내가 뮌헨을 너무 좋게 보고 있는 걸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차려입어서 왠지 모르게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매우 남루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내 마음이 소설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 같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도 잘 차려입고 1년 치 교통권을 끊어 아파트에 살면서 요리하는 저녁을 맞이하고 싶을까?


노란 벽의 카페
카페는 따뜻해

기온도 낮은 데다 비도 부슬부슬 내려 미술관에 가기 전에 잠깐 몸을 녹일까 싶어서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조그마하여 보였는데 들어가 보니 차 마시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노란 벽과 빛이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 준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였는데 젊은 층의 손님은 가끔 와서 테이크 아웃을 하고 할아버지 두 분이 카페 공간에 앉아계신다. 카페가 작아도 손님이 많아 잘되는 것 같다.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시며 말을 거신다. 독일에 있을 때 느끼는 건 독일에 사는 노인 분들은 여유롭고 낯선 여행객인 나에게 대화를 스스럼없이 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런 분들만 만난 것일 수도 있지만 몇 번 만나고 보니 독일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렇다.

독일은 프레즐!

프레즐은 쫄깃하고 담백해서 맛있다. 만드는 지역과 사람에 따라서 가운데 부분이 달라지는데 나는 거의 딱딱하다 싶을 만큼 바삭한 것을 선호한다. 튀빙겐은 바삭한데 뮌헨은 부드럽다고 K랑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카페에서 파는 프레즐은 내가 선호하는 바삭한 식감이라 만족스럽게 먹으며 에너지를 채웠다. 커피와 프레즐을 먹고 난 후 그제야 처음 집을 나설 때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총 11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중 3개를 관람하려는 목표가 있었으나 한 군데만 관람하는데도 3시간 가까이 걸려서 다음에 다시 오려고 한다.

감탄스러운 공간

들어가자마자 감탄한 것은 건물 그 자체였다. 깨끗하고 넓은 느낌을 이름에 걸맞게 모던하게 담아내어 그림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나도 늙는다면 이렇게

Fritz Winter이 작업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다가오셔서 할머니를 안고 앉으셨다. 놀랐다. 내가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함께 감상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 사진을 살짝. 그리고 한 시간쯤 더 보다가 지하에 전시장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있으셔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담았다. 나도 늙었을 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나에게 초월성을 느끼게 해주는 예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는데 몇 가지 작품들은 다른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어 겹치기도 한다. 나는 유럽에서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피카소가 이렇게나 다양한 화풍을 가졌는지 처음 알았다. 세계 곳곳에 걸린 그의 그림을 발견할 때면 한눈에 피카소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도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그를 천재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Jawlensky와 Heinrich Maria Davringhausen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비루한 나의 그림 실력으로 모작이라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는 예술이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 전시도 눈에 띄었고 건물의 빈 공간은 허용하지 않는 듯이 구석구석에 숨겨진 영상도 많았다. 나는 그중에 어느 영상을 보고 울컥하는 감정에 눈물을 흘렸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이해는 못한 예술인데 나에게 많은 감정을 쏟아내게 해주어 고마웠다. 지금까지는 그냥 아름다운 예술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맞은편에 뮌헨 공대와 그 옆에 알록달록한 외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도 전시를 하는 듯싶었지만 피곤해져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다시 걷지 않고 그냥 트램을 두 번타고 갔다. 나는 10회권을 샀는데 오늘로 다 써버렸다. 트램을 타고 가는 중에 불시에 검사를 하였다. 처음 본다. 나는 날짜와 시간이 찍힌 트램권이 있었지만 긴장을 하며 보여주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표가 없는 듯하였는데 결국 아저씨는 욕을 하며 벌금을 냈다. 



집으로

놀랍게도 길을 잃지 않고 한 번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서 조금 쉬다가 배가 고파 라자냐와 호박 수프를 데워먹었다. 혼자 먹으니 빨리 먹게 되었다. 배가 너무 부른데 이상하게 열이 났다. 몸은 차가웠고 머리는 뜨거웠다. 평소에도 아픈 것을 잘 못 느끼는데 이번에도 급하게 먹은 저녁에 열이 올랐겠거니 하고 외면하였다. 그런데 갈수록 심해져서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친구는 출장을 가서 집에는 D와 나만 있었다. K보다 친하지 않은 D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K에게 약이 어디 있냐고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냥 잠을 청하려 하였지만 잠도 쉽게 잘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D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는 성심성의껏 내 몸이 회복되도록 도와주었다. 치킨 수프까지 끓여주며 옆 자리를 지켜주었다. 아플 때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되었고 정말 감사했다.


뮌헨 시내를 구경하며 전시를 관람하며 병간호를 받으며 외면했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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