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뒤켠에 큰 감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키는 훌쩍 커서 하늘 속으로 창창하게 뻗었고 가지를 벌린 넓이는 장장 열 명도 넘게 들어앉을 만큼 넓었다.
봄이면 연초록 새순을 곳곳에 틔우고는 이내 하얀 감꽃을 흐드러지게 밀어 올렸고, 여름에는 품 가득 시원한 그늘을 길게 늘여놓고, 가을이면 알록달록 청홍색 잎사귀와 함께 연주홍빛 감을 가지가지마다 매달아 내고는 했었다.
그 감나무는 계절 따라 놀잇거리도 다르게 내주었다. 봄에 핀 감꽃으로는 목걸이를 만들어서 옆집 예쁜 동생에게 걸어주고는 했다. 여름날 짙은 잎사귀로는 딱지를 접어 그늘 아래서 딱지치기를 했고, 그러다 배고프면 소금물에 담가놓은 떨감(떫은 감)을 먹으며 고픈 배를 달래기도 했다. 가을에는 또 긴 대나무 장대에다 주머니를 엮어서 가을 햇살을 받아 말갛게 빛나는 홍시를 따내리느라 하루해가 짧았다. 무서리 내리는 겨울 들머리에는 또 또래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감을 깎아 처마 밑 그늘진 곳에다 꼬챙이로 꿰어 매달아 놓고는 겨우내 맛있는 주전부리로 먹었다.
당시에는 먹을 게 부족했던 터라 감이 하나라도 아쉬울 때였지만, 우리 동네 어른들은 까치밥 두세 개는 꼭 남기라 이르고는 했다. 그러면 우리는 우듬지에 있는 제일 따기 어려운 감 두세 개만 남기고는 각자 대나무 장대로 감나무를 탈탈 털고는 했었다.
어릴 적 까치밥은 '단순히 까치가 겨울에 먹는 밥' 정도로만 이해가 되었다. 까치밥을 남기는 그 마음결은 알지 못한 채 단지 '까치 먹이'가 아니라 '까치밥'이라는 것에만 신기해했을 뿐 그 속뜻은 깊이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김남주 시인의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를 읽고는 비로소 까치밥에 스민 속뜻과 따뜻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조선의 마음'이라니. 까치-홍시의 연결을 통해 '조선의 마음'이라는 커다란 상징을 끌어낸 김남주 시인의 시적 상상력에도 감탄했거니와, 어릴 적 아는 정도로만 지나쳤던 '까치밥'의 의미를 새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였다.
그것도 일상에서 주변 어른들의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자라오던 터였기에 그 느낌을 통해 전달된 울림은 크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나도 까치밥 같은 조선의 마음을 가져보리라 그렇게 다짐도 했었다.
그리고는, 도시에서의 바쁜 삶을 좇으면서, 물질적 빈곤에서 풍요로의 수평(?)적 상승을 위한 몸부림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까치밥'은 저만큼 잊혀 갔다. 사람과 거리 두기를 배우고,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해타산을 따지고, 수직적 서열에 의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지배하는 그런 통상의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정일근 시인의 <<경주 남산>>이라는 시집에 실려있는 <까치밥>이라는 시를 만났다.
까치의 밥을 위해 사람들은
버릇처럼 감나무에 감 두어 남겨두지만
이제 이 마을에도 까치는 없다
늘 낮게 내려와 있는 시큼한 하늘
싸늘히 식어가는 까치밥
겨울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울산광역시 공해 전광판 같은
경고의 붉은 시그널로 남아
철야하고 돌아오는 공단 사람들의
휑한 눈빛으로 남아서
'싸늘히 식어가는 까치밥'을 까치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이제 내가 사는 이 마을에도 까치'가 돌아왔으면 했다. 그런 생각으로 여러 해를 살다 동네책방을 만났다. 마치 그 속내 따뜻했던 '까치밥'인 듯, 김남주 시인의 가슴을 후벼 팠던 '조선의 마음'인 듯 동네책방을 만들고자 했다.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 '까치밥'의 따순 마음을 나누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 다시 옛 '조선의 마음'으로 자라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마음 자락에 기대어, 이 동네책방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