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마음

아부지가 영어를 하다

by 홍시궁

"맹일아. 어여 일나라. 아부지한테 가야제."

한 발 디딜 때마다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황홀한 꿈을 꾸는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가 침입했다. 무참히 깨어진 백만장자의 꿈을 아쉬워하며 이불속에서 뒤척거렸다. 엄마는 하필 그때 깨울 게 뭐람.

"아부지가 7시까지 못둑으로 오라 캤다 아이가. 빨리 가거래이. 아부지 또 경 치신대이."

아침 6시 반이었다. 이런 신새벽에 이게 무슨 난리람.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직 정신이 미처 돌아오지 않은 채로 지게를 지고 삽짝을 나섰다.

골목에 나서자 된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집집마다 아침으로 된장을 끓이는지 윗집 아랫집 건너작은집 작은집 너나 할 것 없이 된장 냄새가 뭉근하게 떠돌았다. 신새벽의 파르스름한 공기와 어울려서 더 달게 코끝으로 스몄다.

"맹이리 아이가? 이래 아침부터 오데 가노? 지게도 졌네?"

"아부지가 꼴 베논 거 지로 간다 아임미꺼."

"그래? 맹이리는 이래 부지런네. 그라이 공부도 잘하재. 갱이리는 아직도 디비잔다. 니 좀 배아야 할 낀데..."

지나가던 동네 아지매한테 “잘 드가이소” 인사를 하고 동구 밖을 벗어났다. 옆산 산허리를 따라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옆산 어귀쯤에 까마중이가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벌써 새까만 열매를 달고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한 줄기 훑어서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열매가 알알이 터지면서 달콤삽싸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아침을 아직 안 먹은 터라 허기는 조금 달랠 수 있었다.

옆산을 빙 돌자 못으로 향하는 산길이 보였다. 못은 옆산 너머 골짜기가 끝나는 곳에 있어서 옆산을 넘어가기보다는 산허리를 따라 돌아가는 게 수월했다. 산길에 접어들자 산비탈에 만든 밭에는 쇠비름, 돌나물이 잔뜩 돋았다. 산길 옆으로는 엉겅퀴며 토끼풀이며 방가지똥 등 산들풀들이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었다. 도꼬마리는 아직 해가 안 떠서 그런지 축 늘어져서 가시에 찔려도 따끔하지도 않았다.


발목에 이슬이 감기는 상큼한 느낌을 즐기며 가는데, 저 멀리 못둑 위에 두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아버지인 거 같았는데, 다른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먼발치로도 아버지보다 키도 훌쩍 크고 허우대도 멀쩡했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재미나게 얘기하고 있었다.


못 옆으로 난 수로를 따라가서 못둑으로 올라섰다. 아버지와 그 사람은 못둑 중간쯤에 있었는데, 악수를 하며 헤어지고 있었다. 피부가 거무튀튀하고 키가 훌쩍 컸다. 마치 시커먼 괴물이 사라지듯이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누군데예?"

"누구? 아, 절마?"

아버지는 턱짓으로 그 사람을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올따라 와 이래 빨리 왔노. 쫌 천천히 오지. 절마하고 이바구 좀 더 할라 캤더마는..."

다른 때는 맨날 늦게 온다고 난리치시더니...괜히 뾰로통해졌다. 아부지는 나 때문에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오래 못한 걸 못내 아쉬워하셨다.

"그 사람 흑인인 거 같던데, 미국 사람임니꺼?"

"우예 알았노? 텍사스에서 왔는데, 평택 미군부대(KATUSA)에서 근무한다 카더라. 온천 하러 왔다가 아침에 산뽀 나왔다 카대."

"근데, 아부지하고 그 사람이 우째 이야기를 함니꺼? 영어도 모르잖아예."

"이 자슥이... 이래 봬도 아부지가 카추샤 출신 아이가. 쪼매이 할 줄 안다."

카추샤가 뭔 지는 몰랐지만, 아부지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엄청 놀랬다. 이런 깡촌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아부지가 다시 보였다.

"아부지가 평택 카추샤에서 하우스보이로 근무했는데, 그때 아부지 상관이 미국 남부 아라바마(앨라배마)에서 왔다 카더라. 그래서 그 사람한테 미국 남부 영어 쪼매이 배웠재. 절마도 남부 사람이라 그나마 쫌 통하더라."

나는 저 멀리 사라지는 그 사람한테 쫓아가서 아부지의 말이 사실인지 묻고 싶었으나, 영어를 못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도깨비에 홀린 기분은 하루 내내 계속됐다.

오후에 친구들과 산으로 소꼴을 먹이러 가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이런 깡촌에 그 흑인이 온 것도 희한한 일인데, 아부지가 그 흑인과 이야기를 했다는 걸 은근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헛소리 말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니는 순진하구로 아부지 말을 믿나. 그냥 우리말로 말한 기겠지. 영어로 한 기 아이고."

"절마 저거는 평소에는 똑똑한데, 이럴 때 보모 반핀이란 말이여. 순진한 기가, 바보가?"

오후 내내 이런 핀잔을 들었다. 하기야 나라도 그런 상황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에 집에 와서 엄마한테도 확인했지만, 아부지의 카추샤는 사실이었다. 엄마와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바로 군대로 들어가셨댔다.


아버지의 영어 사건 이후로 잠시 아버지는 나의 우상으로 있었다. 그리 길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아버지의 실루엣은 영어와 함께 지금도 내게 가장 투명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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