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마음

늑대와 조우하다

by 홍시궁

파르스름한 보름달 빛이 온 동네에 스미는 밤이었다. 풀벌레 소리가 찌르 찌르륵 동네 골목에 감돌았고, 초가을 밤 사위는 챙 소리가 날 듯 서늘했다. 본격적인 가을로 들기 전의 그 무렵에는 곡식들은 알차게 몸피를 키웠고, 과실들에는 단물들이 잔뜩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밑에작은집 문간방에 모였다. 그날 밤에 벼르고 벼르던 단감 서리를 작정한 터였다. 매부리코 할배의 앞마당에 있는 단감나무가 목표였다. 그 집 단감이 제일 맛있다고들 했을뿐더러 평소에는 그 할배가 너무 무서워서 서리는 엄두도 못 내던 터였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는 꼭 서리하고 말리라 다짐도 여러 차례 두었었다. 그러다 또래 친구들 중에 심장이 제일 두터운 세 놈이 작당을 해서 그날 모였다.

며칠 전부터 그 집 주위를 맴돌며 사전 정탐을 했었다. 담장 어디가 허술한지, 담장에서 단감나무까지는 어떻게 다가갈지, 들켰을 경우에는 어디로 토껴야 할지 등등 나름 세세하게 살폈다. 밤에는 그 할배가 몇 시에 자는 지까지도 머리에 넣어두었다.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8시쯤에 일찌감치 모였다. 내가 주도해서 작전회의를 했다. 감나무에는 두상이(7촌)가 올라가고 경일이(5촌)가 감을 받고 내가 망을 보기로 했다. 들켰을 경우에는 각기 세 방향으로 달아날 것이며, 잡히더라도 절대 나머지 두 명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기로 주먹맹세까지 했다. 삶은 햇고구마를 몇 개 집어먹으며 몇 번이나 오늘의 계획을 곱씹었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 드디어 집을 나섰다. 골목에는 달빛이 교교하게 내려앉았다. 바닥에 있는 짱돌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밝았다. 우리는 담벼락 그늘을 따라 고양이처럼 날쌔게 움직였다. 그 할배 집에 다가갈수록 심장은 휘몰이장단으로 두근거렸고, 콧김은 더 뜨거워졌다.

그 할배 집에 도착해서 10분 정도 안팎으로 살폈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할배가 주무시는 방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우리는 뒷마당 담장을 타 넘고 들어가 앞마당에 있는 단감나무로 스르륵 접근했다. 초가을 바람이 사르르 불어서 우리의 더운 숨을 식혔다. 이윽고 두상이가 나무에 오르고 단감을 따서 내리기 시작했다. 30여 분 지나자 우리 세 명은 배불뚝이가 될 정도였다. 그때까지도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다.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앞담장을 넘어 골목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달빛은 더 환하게 마을을 비추었지만 마침내 서리에 성공했다는 쾌감이 세 명의 가슴으로 흘렀다. 웃옷 안에는 아직 물이 덜 찬 단감이 한가득이었고, 내일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랑할 생각에 입이 근질거렸다. 조용조용 무용담을 즐기며 밑에작은집 문간방으로 향했다. 10여 분 후에 골목을 꺾어 돌면 바로 스무 걸음 앞에 밑에작은집 삽짝이었다. 삽짝 앞으로는 조그만 도랑이었고, 삽짝을 지나 열 걸음쯤 더 가면 도랑 위를 가로지른 돌들로 복개를 해서 큼지막한 공터가 있었다.

골목을 돌아서 양철대문에서 불과 열 걸음쯤에 이르렀는데, 공터가 끝나는 도랑 위쪽에서 시커먼 물체가 하나 보였다. 자세히 보았더니 그 물체는 마술이라도 부리듯 두 개로 쪼개졌다. 뭘까 싶어 다시 살피다가 우리 셋은 일순 얼어버렸다. 달빛이 워낙 밝아서 그 물체의 실루엣이 확연히 그려졌는데, 개를 닮아 있었지만 덩치가 개보다 더 크고 두 귀가 쫑긋하고 꼬리가 바닥에 끌렸다. 어른들한테 말로만 듣던 늑대의 형상 그대로였다. 몸과 정신이 일순간에 꽁 얼어버렸다.


그 상태로 2~3분 지났다. 늑대도 움직이지 않고 우리 쪽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양철대문에서 멀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상이가 팔을 흔들어 어떻게 해보라고 채근했다. 두상이한테 한껏 눈총을 쏘고는 바닥에 있는 돌을 슬쩍 주워서 늑대한테로 던졌다. 그 놈들은 꿈쩍도 안 했다. 더 큰 돌을 들고 살살 다가가며 위협해봤지만 여전히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열 걸음 남은 지점에서 양철대문을 사이에 두고 마냥 대치하고 있었다. 밤은 더 깊어갔고 골목에는 우리의 밭은 숨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여 분. 우리 쪽을 경계하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던 그 놈들은 슬금슬금 도망을 가버렸다.


다음날 어른들은 난리가 났다. 늑대가 오랜만에 산에서 마을로 내려왔다고, 마을 순찰을 돌아야겠다고 모이기만 하면 늑대 이야기였다. 그중 한 아재의 얘기를 듣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우리가 셋이 아니고 둘이었으면, 늑대가 덤벼들었을 거라고. 우리가 세 명이고 늑대는 두 마리여서 늑대가 덤비지 않았단다. 늑대는 자기들보다 숫자가 같거나 많으면 한참 경계심만 보이다가 그냥 사라지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도발을 하면 그런 습성에 상관없이 덤빈다고 하는데, 우리가 돌을 던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고로 무식하모 용감한 기라”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놈들이 실제 늑대였는지는 모르지만, 평소 노리고 있던 서리의 성공에 취해서 흥청망청 밤길을 걷던 우리에게 그 놈들이 준 공포는 실로 가공할 만했다. 그 놈들과의 조우가 그리 유쾌하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오랜 시간을 넘어 멀리서 들려오는 정겨운 추억 한 소절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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